
2025년, 일출을 보며 했던 다짐들은 모두 어디로 흩어졌을까요. 삶은 되돌릴 수 없어도 글은 다시 돌아가 고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요. 2025년 1월 강원도 강릉 경포해변에서. 박은지 제공
12월입니다. 만나고 헤어지고, 울고 웃고, 기뻐하고 헤매고, 사랑하고 미워하던 한 해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2025년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돌이킬 수 없는 순간과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겹쳐 옵니다. 아쉬움과 후회가 스치고, 환희의 장면이 떠오릅니다. 아직 삶의 비밀을 다 알지 못하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삶은 고쳐 쓰는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지나간 순간은 닫혀 있고, 우리는 그 순간을 품은 채 앞으로 나아갈밖에요. 지나간 시간을 잘 떠나보낼 때 삶이 더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회귀가 허락된 영역이 있습니다. 예상하셨겠지만 바로 글입니다. 삶은 고칠 수 없지만, 글은 고칠 수 있습니다. 글로 돌아가 문단을 손보고 문장을 다듬는 동안 ‘나’를 다시 들여다보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새해를 맞이하기 전, ‘고쳐 쓰기’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2026년에는 고칠 수 없는 삶 앞에서는 담담해지고, 고칠 수 있는 글 앞에서는 용감해지고 싶습니다.
글을 고칠 때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제 막 멋지게 완성한 초고에 손대야 하니까요. 초고가 최종본인 글은 좋은 글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반드시 고쳐야 합니다. 마음을 다잡고 적어도 세 번은 고쳐보세요. 글 전체 수준, 문단 수준, 문장 수준에서 글을 검토하고, 나아가 단어까지 살피면 더 좋습니다.
초고는 ‘나’와 함께 썼다면, 고칠 때는 ‘너’와 함께 써야 합니다. 실제로 다른 사람을 불러오라는 뜻은 아닙니다. 쓰는 사람의 자리에서 읽는 사람의 자리로 이동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고쳐 쓸 때는 ‘나’를 잠시 내려놓고, 글을 읽게 될 ‘타자’의 눈을 빌려야 합니다. 나에게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말이, 다른 이에게는 낯설거나 불친절할 수 있습니다. 내 문장을 세상의 문장으로 바꾸는 과정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타자의 눈이 비판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정한 타자도 있으니까요. ‘이 문장은 너무 갑작스럽지 않을까’ ‘이 표현이 불필요하게 독자를 멀어지게 하지 않을까’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세요. 다정하고 정확한 타자의 시선으로 끈기 있게 고쳐 쓸수록 글은 더 많은 사람에게 닿습니다. 독서를 통해 타자의 눈을 키우는 노력도 도움이 됩니다.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다듬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글과 멀어질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공들이고 싶은 글, 중요한 글부터 고쳐보세요.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나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 중요한 발표문이나 자기소개서처럼 목적이 뚜렷한 글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글의 분량이 너무 길면 수정 과정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시간이 부족하면 더 그래요.
그럴 때는 글의 도입 부분, 첫 문단에 집중해보세요. 도입은 독자의 눈을 사로잡고 글 전체 방향을 결정하므로 잘 고쳐놓으면 이후 수정이 훨씬 수월해집니다. 도입에 익숙해졌다면 결론으로 나아갑시다. 이렇게 영역을 넓혀가다보면 글 전체를 고치는 일도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차근차근 해나가자고요. 우리는 언제나 과정 중에 있으니까요.
초고를 썼다면 출력하세요! 프린트는 생각보다 매우 중요한 수정 단계입니다. 화면에서는 놓치는 것이 많기 때문인데요. 스마트폰과 컴퓨터 화면은 글자를 빠르게 읽고 정보를 휙휙 받아들이도록 학습된 환경입니다. 눈이 자연스럽게 빈틈을 메워주기에 실수를 발견하기 쉽지 않습니다. 반면 종이는 스크린보다는 덜합니다. 그렇기에 출력해서 한자 한자 똑바로 읽어가야 합니다.
종이에는 고유한 힘이 있습니다. 컴퓨터 화면으로 볼 때는 엉망인 것처럼 보이는 글도 종이에 인쇄해서 보면 묘하게 안정적으로 읽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글이 종이와 만나 물성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내 글을 만지고 손에 쥐는 경험은 글쓴이에게 자신감을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중요한 글은 꼭 출력해서 만져봅니다. 여러분께도 이 방법을 추천해요.
프린트를 마쳤다면 소리 내어 읽을 차례입니다. 소리 내어 읽는 것은 전에 말했듯이 문장 수정에 탁월한 방법입니다. 글의 시작 부분만이라도 여러 번 소리 내어 읽어보길 권합니다. 문장의 리듬을 느껴보세요. 쉼표가 너무 많거나 숨이 찰 정도로 긴 문장은 소리 내어 읽을 때 어색합니다. 그 문장부터 고쳐보세요.
고쳐 쓰기에는 글 전체, 문단, 문장, 단어 수준이 있는데, 무엇을 먼저 하든 상관없고 모든 영역을 동시에 수정해도 좋습니다. 글 전체를 검토할 때는 목적을 달성했는지, 주제가 선명하게 드러나는지 확인해보세요. 흐름을 방해하는 내용은 없는지, 주제를 전달하는 데 꼭 필요한 내용인지도 판단해야 합니다. 나에겐 재미있지만 글의 흐름을 방해하거나 주제를 전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이라면 아깝더라도 과감히 덜어내야 합니다. 그 자리에 더 필요한 내용을 채워주세요. 근거가 부족하다 싶으면 자료를 더하고, 예시를 제시하거나, 비교·대조를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문단을 볼 때는 하나의 문단이 하나의 중심 생각을 담고 있는지, 그 생각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지 확인하세요. 문장 수준에서는 틀린 문장이나 어색한 표현이 없는지 살피고, 더 적절한 단어가 있다면 바꿔보세요.
반복에도 주의를 기울이세요. 반복에는 표현의 반복과 내용의 반복이 있는데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표현의 반복은 눈에 잘 띄어 고치기 쉽습니다. 같은 문장이나 문구, 단어를 되풀이한다면 다른 표현으로 바꿔주면 됩니다. 예를 들어 “밥을 먹었는데 김치찌개가 맛있었다. 설거지를 했는데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보일러를 살펴봤는데 고장이었다”에서는 ‘~했는데 ~다’가 반복되고 있지요. 무심코 구조를 반복하는 경우가 있는데, 의도하지 않은 이상 피해야 합니다.
내용의 반복은 글쓴이가 생각을 충분히 밀고 나가지 않았다는, 생각을 게을리했다는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학생들의 글에서 자주 보이는 예인데요. A4용지 1장 분량의 과제를 제출해야 할 때, 절반 정도 쓰고 할 이야기가 떨어지면 앞서 쓴 내용을 조금 바꿔 다시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고는 분량을 다 채웠다고 초고를 최종본으로 제출하죠. 분량은 채웠지만 깊이를 확보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럴 때는 반복을 지우고 기존 내용에서 질문을 다시 만들어 생각을 한 단계 더 밀고 나가야 합니다. 물론 강조를 위한 반복은 효과적입니다. 반복은 잘 사용하면 글의 힘이 됩니다.
고쳐 쓰기에는 이 밖에도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더 자세히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거예요. 앞의 사항들을 염두에 두시고 자신만의 고쳐 쓰기 방법도 찾아보길 바랍니다.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고쳐 쓰기가 벅차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그럴 때는 하나씩 해보는 겁니다. 이번 글은 출력해야지, 이번 글은 소리 내어 읽어봐야지, 이번 글은 반복만 찾아봐야지 이렇게 하나씩요. 고쳐 쓰기에 익숙해지면 주제와 문장을 넘나들며 단어와 문단을 세심하게 챙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삶도 그런 것 같습니다. 고칠 수 없는 것 앞에서 쉽게 두려워하지만, 하나씩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면 되겠지요. 새해에는 글에서처럼 삶에서도 천천히 나아가는 나를 만나길 바랍니다.
박은지 시인·‘여름 상설 공연’ 저자
‘나의 단골집’을 주제로 두 편의 글이 도착했습니다. 정선님의 글은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작은 동네 미용실에서 시작해 ‘이야기가 통하는 관계’로 확장되는 흐름이 자연스럽고 매력적이었어요. 일상의 장면을 포착하는 솜씨가 돋보였습니다. 숙연님의 글은 생활의 고단함과 작은 해방이 빨래방이라는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대비되며 감동을 남깁니다. 특히 “마른빨래를 갤 때 손에 전해지는 따듯함과 뽀송뽀송한 감촉” 같은 문장은 촉각이 살아 있어 독자가 즉각적으로 장면 안에 들어가게 합니다. 두 편 모두 관찰이 살아 있는 글이었습니다. 그 공간이 떠올려질 만큼 표현을 잘해주셨고, 묘사가 감정과 자연스럽게 연결돼 글의 분위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좋은 글을 읽어 기쁜 마음이네요. 숙연님의 글을 읽으며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신세계를 선물한 빨래방(정숙연)
빨래방은 내가 동네에서 애용하는 곳이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그곳을 간다. 다른 데는 돈을 쓸 때 몇 번씩 생각하지만, 빨래방은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다섯 가족이 벗어놓은 옷가지를 세탁하여 말리는 것이 일이었다. 여름에는 하루만 지나도 냄새가 나거나 마른 듯해도 꿉꿉해서 빨래를 왜 했나 후회를 했다. 빨래를 하는 것은 내 의지대로 되지만 말리는 것은 날씨의 소관이었다. 그렇다고 냄새에 절어 쉰내 나는 옷을 마냥 쌓아둘 수도 없는 일.
그러다 빨래방이 등장했다. 세탁은 집에서 하고 말리는 것은 빨래방에 가서 해오면 한갓지고 빠르게 말릴 수 있었다. 마른빨래를 갤 때 손에 전해지는 따듯함과 뽀송뽀송한 기분 좋은 감촉, 살짝 남은 향이 좋아 숨을 길게 마시면 기분이 날개를 단다. 개서 가져와 서랍에 넣어주기만 하면 되니 빨래의 고민에서 해방되었다. 24시간 365일 개방하는 무인 빨래방의 등장은 나에게 신세계를 선물했다.
우리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건너편 상가 오른쪽 끝에 빨래방이 있다. 간판이 작아 멀리서는 잘 보이지 않고 가까이 가야 그곳이 빨래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큰 가방에 넣어 어깨에 메거나, 이불 빨래처럼 조금 부피가 크면 수레에 올리고 툭하면 건너갔다 온다. 될 수 있으면 조용한 분위기를 찾아 주말을 피해서 낮에 이용한다. 이용하는 사람이 적어 낯선 사람들과 마주침이 적고 기다리지 않아도 되어 좋다.
빨래가 마르기를 기다리며 TV가 켜져 있으면 보기도 하지만 벽에 부착된 책꽂이를 살펴보고 마음에 드는 책을 읽기도 한다. 편한 등받이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거나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린다. 최대한으로 공간을 활용하여 자판기와 안마의자, 읽을거리와 TV, 테이블 세트까지. 조금이라도 지루하면 안 될 것처럼 고객에 대한 서비스가 마련되어 있다.
물론 돈은 들지만, 그 돈에 비해 내가 마음으로 느끼는 가격 대비 만족도는 최고다. 세탁 가방을 둘러메고 돌아오는 길, 마치 내 마음을 세탁한 것처럼 가볍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데, 고민 끝 행복 시작이 될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할까.
여러분의 글을 보내주세요
2025년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아쉬움은 잠시 접어두고 가장 빛났던 순간 하나를 떠올려 글로 써봅시다. 초고를 빠르게 쓴 뒤, 최소 두 번 이상 고쳐 쓰기를 해보세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2025년, 글에서는 반짝이길 기대합니다.
주제: 2025년 최고의 순간
분량: 1천 자 정도
마감: 2025년 12월28일
보낼 곳: han21 @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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