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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매일 써야 할까? 쓰지 않는 시간도 쓰는 시간이다

새해 결심은 새벽 5시의 글쓰기?… 우리에겐 ‘지속 가능한 글쓰기’가 필요해
등록 2026-01-08 21:51 수정 2026-01-14 19:17
2026년 1월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아무것도 쓰지 않았던 날, 전시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 적군의 언어’를 보았습니다. 쓰고 싶지 않은 날 가보시길 권합니다. 수많은 말을 마음에 담아 돌아올 수 있을 것입니다. 박은지 제공

2026년 1월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아무것도 쓰지 않았던 날, 전시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 적군의 언어’를 보았습니다. 쓰고 싶지 않은 날 가보시길 권합니다. 수많은 말을 마음에 담아 돌아올 수 있을 것입니다. 박은지 제공


새해 첫 안부를 전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한 한 해 보내시길 바랍니다. 새해 덕담은 다소 상투적으로 느껴질지라도, 나누면 나눌수록 그 온기가 불어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번, 새해 복 듬뿍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갓생’처럼 매일 쓰면 ‘채우기 위한 기록’ 될라

맞습니다. 새해입니다. 저는 새것을 참 좋아합니다. 깨끗하고, 매끄럽고, 반짝이지요. 신발을 새로 사면 한동안 새 신발만 주야장천 신어 가족에게 놀림받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좋았어요. 새 신을 신고 폴짝 뛰는 일은 생각만 해도 즐겁습니다.

새해도 참 좋습니다. 2026년 역시 깨끗하고 매끄럽고 반짝입니다. 이 좋은 시간을 잘 통과하고 싶어 계획을 세웠습니다. 계획을 세우는 일은 언제나 마음을 들뜨게 하지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지내기, 매일 읽고 쓰기, 두 번째 시집 내기, 논문 완성하기, 운동 꾸준히 하기, 술 줄이기…. 계획을 세우고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서로 격려를 아끼지 않으며 한 해를 시작합니다.

새해가 되면 ‘갓생’이라는 단어가 유독 자주 눈에 띕니다. 글쓰기 역시 그 흐름에서 빠지지 않습니다. ‘매일 쓰기’나 ‘미라클 모닝’을 통해 글쓰기를 루틴화하라는 조언을 쉽게 접합니다. 저도 비슷한 계획을 세운 적이 있습니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가장 맑은 정신으로 글을 쓰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몇 주 동안은 졸린 눈을 비비며 새벽에 글을 썼지만 예상하셨다시피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실패한 자신에게 실망까지 하고 싶지는 않아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글을 꼭 매일 써야 할까?

물론 매일 쓰는 행위는 도움이 됩니다. 정해진 시간에 자리에 앉아 일정 분량을 채우는 연습을 반복하면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글 쓰는 몸이 만들어지면 생각의 속도도 빨라지고, 주제를 포착하는 감각도 예리해집니다. 문장은 조금 더 유연해지고, 감각 역시 살아납니다. 매일 쓰는 것만으로도 실력이 는다니, 이보다 확실한 훈련법도 드물 것입니다.

하지만 ‘매일 쓰기’라는 계획이 언제나 긍정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다짐이 오히려 글 쓰는 사람을 압박하기도 합니다. 그 압박 때문에 글 안쪽으로 충분히 들어가지 못하거나, 하루를 채우기 위한 기록에 머무는 경우도 생깁니다. 쓰지 못한 날의 자신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해 위축되기도 하지요. 자신이 게으른 사람처럼 느껴지거나, 누군가는 지금도 열심히 쓰고 있을 텐데 하는 조바심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글쓰기와 멀어지고 맙니다. 그렇다면 쓰지 못하는 상태는 정말 실패일까요?

쓰지 않을 때 내 안에 쌓이는 문장

글쓰기는 단어를 연결해 문장을 만들고, 문장을 모아 문단을 구성하며, 문단을 이어 글을 완성하는 생산 활동으로 볼 수 있습니다. 동시에 감각과 사유, 정서가 축적돼 글쓴이의 의도와 만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글을 쓰지 못한 날에도 우리는 여전히 글쓰기라는 여정에 머무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글을 쓰지 않는 날,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작은 선물을 주고받았습니다. 친구들의 말을 유심히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습니다. 산책도 했지요. 목련의 겨울눈을 보며, 그 안에 숨어 있을 꽃눈을 떠올렸습니다. 깊은 잠에 빠질 때도 있었습니다. 꿈속에서 바다를 오래 바라보다가 반지를 잃어버리기도 했지요. 그 시간 동안 글은 문장이 아닌 다른 형태로 우리 내면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습니다.

문장이 되기 전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많은 것이 남을 때도 있습니다. 서둘러 쓰려다보면 말이 평평해지고 감정이 단순해지기 쉽지만, 아직 말이 되지 않은 상태를 견디다보면 이전에는 만나지 못했던 낯설고 귀한 언어를 마주하기도 합니다. 말이 되기 전의 감정,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생각, 언어로 옮기기에는 이른 장면들이 느리게 쌓입니다. 이 과정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이나 ‘글쓰기에 실패한 시간’으로 취급되기 쉽지만, 글쓰기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가장 많은 준비가 이뤄지는 구간에 가깝습니다.

다만 이 시간은 편안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쓰고 있는지 분명하지 않고, 이 시간이 과연 의미가 있는지 확신하기도 어렵습니다. 효율적이지 않지요. 챗지피티(ChatGPT) 같은 ‘인공지능(AI) 저자’가 등장한 이후 글쓰기의 속도와 효율은 눈에 띄게 높아졌는데 말입니다. 질문을 입력하면 곧바로 문장이 생성되고, 빈 화면 앞에 오래 머무는 일도 없습니다. AI는 망설이지 않습니다. 안정적이고 빠르게 글을 씁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간의 글쓰기는 AI와 달라집니다.

망설이고 못 쓰는 시간은 인간 고유의 것

이재기 교수는 논문 ‘AI 시대, 인간 글쓰기의 위상과 글쓰기 교육의 지향’에서 “어떤 존재가 사고를 하는지의 여부는, 그 존재의 행위에 ‘멈춤’이 있는지를 보고 판단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멈추지 않는다는 것은 고민하거나 궁리하거나 회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지요. 인간은 머뭇거리고, 망설이고, 때로 아무 말도 떠올리지 못한 채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이 ‘멈춤’의 시간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경험을 다시 통과하고, 감정을 재배열하며,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확인합니다. 글을 쓰지 못하는 시간은 글쓰기의 결함이 아니라 인간적인 글쓰기의 고유한 조건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저는 글을 생산하지 못한 날의 나 자신을 함부로 미워하지 않으려 합니다. 모든 시간을 생산으로 채우려다보면 삶과 글은 쉽게 소진되고 말 거예요. 우리 삶이 글의 재료라면, 잘 쓰기 위해서라도 잘 멈춰 서서 삶을 충분히 통과할 필요가 있습니다. 2026년에 우리가 붙들 수 있는 글쓰기 방식은 이 느린 구간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오래 쓰지 않고 있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이 대목에서 슬쩍 웃어주세요.) 오늘 몇 줄을 썼는지, 며칠 연속으로 썼는지를 세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자리에 다시 앉아야 합니다. 멈춤은 글쓰기의 일부이지만, 영원한 멈춤은 글쓰기가 아니니까요. 잠시 멈췄을 때 오늘 어떤 상태를 지나왔는지, 무엇이 말이 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지를 돌아보며 지속 가능한 글쓰기를 향해 갑시다. 빠르게 쓰는 능력이 기술이라면, 멈출 수 있는 능력은 태도일 테니까요.

깨끗하고, 매끄럽고, 반짝이는 새 신도 시간이 지나면 군데군데 때가 묻고 밑창이 닳습니다. 그런데 막상 버리려고 하면 너무 아깝습니다. 그 신발을 제 발 모양에 꼭 맞게 길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낡은 편안함이 더 멀리 걷게 합니다. 2026년도 묵은해가 되겠지요. 군데군데 상처가 남고 눈물 자국도 생기겠지만, 돌아보면 나에게 꼭 맞게 잘 닳은 한 해이기를, 그래서 보내기 아쉬운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독자 글

‘2025년 최고의 순간’을 주제로 네 편의 글이 도착했습니다. 각기 다른 자리에서 시작하지만, 모두 지금의 나를 만들어낸 움직임을 기록한 글이었어요. 정선님의 물속에서 몸을 믿는 법을 배운 시간, 윤선님의 길 위에서 불안을 설렘으로 바꿔낸 새벽, 이제님의 자기 글을 독자로서 처음 마주한 카페의 오전, 그리고 권호님의 위기를 통과한 관계 안에서 다시 ‘지금’을 선택하는 마음까지 엿볼 수 있어 기뻤습니다. 네 편 모두 글의 완성도가 높았는데요. 그런데도 잔소리를 덧붙이자면 마지막까지 ‘멋진 제목’을 조금만 더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이제님의 글을 함께 읽고자 합니다. 이제님은 처음으로 자기 글을 독자로 마주한 순간을 포착합니다. 재미없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과 그래도 여기까지 온 자신을 다독이는 마음이 솔직하게 드러나며 읽는 이를 끌어당깁니다. 평일 오전 카페에서 ‘작가가 되는 순간’을 함께 경험해보시죠!

 

카페에서 내 글을 읽던 날

 

평일 오전 카페에 갔다. 퇴사 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나는 이날을 매년 나만의 명절로 기념할 작정이었다. 탈출의 기쁨은 그만큼 컸다.

내가 좋아하는 창가 구석 자리에 앉아 가방에서 A5용지 뭉치를 꺼냈다. 그동안 쓴 글을 책 크기로 인쇄해 온 것이었다. 꺼내기는 했지만 눈길을 주기가 두려웠다. 재미없으면 어떡하지? 말도 안 되면 어떡하지? 원고를 엎어둔 채 마음의 준비를 했다. 아무리 별로여도 최대한 호의적으로 읽어보자. 이만큼 쓴 게 어디냐!

난생처음 원고지 500장 분량의 글을 써낸 것이었다. 이 정도면 단행본 한 권을 만들 수 있다. 많이 뜯어고치기는 해야겠지만 드디어 고지가 보이는 듯했다. 빈손으로 집 짓는 상상만 하는 상황과, 벽돌이라도 쌓아놓고 집짓기를 시작하는 상황은 달랐다. 이제 나에게는 재료가 있다.

결국 용기를 냈다. 커피를 한 모금 삼키고 원고를 바로 폈다. 도망치려는 시선을 억지로 붙잡아 읽기 시작했다.

‘어라, 뭐야? 생각보단… 괜찮잖아!’

어느새 슬슬 머리가 돌아가고 있었다. 여기는 좀 고쳐야겠고, 이 부분은 빼는 게 나을 듯하고, 여긴 순서를 바꿔볼까? 이런 생각이 드문드문 떠올랐다. 카페에서 내 글을 읽으며 수정 아이디어를 메모하는 일은 의외로 흥미로웠고, 무엇보다 폼이 났다. 진짜 작가가 된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 많은 일이 있었다. 원고를 고치고 또 고치고, 독립출판으로 책을 내고, 책방에 입고하고, 북페어에 참가했다. 내 글이 비행기처럼 나를 이곳저곳으로 데려다주었다. 이 과정 전체가 뜻깊은 여행이었지만 그중 최고의 순간을 꼽는다면 역시 이때가 아니었나 싶다. 카페에서 책을 읽듯 내 글을 읽던 날.

 

여러분의 글을 보내주세요

글을 쓰지 않았던 시간, 혹은 쓰지 못했던 상태를 떠올려 그 시간을 글로 써봅시다. 그날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문장이 되지 않았던 감정이나 장면이 있나요? 잘 쓰려고 애쓰지 않되, 그 시간을 실패로 설명하지는 말아주세요. 이 과제는 다시 쓰기 위한 멈춤입니다. 너무 오래 멈춰 있지는 마세요.

 

주제: 쓰지 않았던 하루

분량: 1천 자 정도

마감: 2026년 1월25일

보낼 곳:  ha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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