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려다보니 벚꽃입니다. 다 적어두지 못한 장면들이 저렇게 남아 있나 싶습니다. 올려다보고, 내려다보며 아직 말이 되지 않은 것들, 시가 되기 전의 장면들을 적어둡니다. 2026년 3월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벚꽃길. 박은지 제공
한두 송이 톡톡 피어나던 매화는 눈 깜짝할 사이 만개하더니 사람들을 불러 모아놓고는, 이제 어서 가라는 듯 꽃을 떨구고 있습니다. 건너편에는 개나리가 웅성웅성 모여 있고, 목련은 커다란 잎을 천천히 바닥에 내려놓고 있습니다. 곧 벚꽃이 우리의 그림자를 덮고, 진달래와 철쭉도 봄을 속삭일 것입니다. 계절이 베푸는 향연에 정신을 못 차리는 요즘입니다.
2026년 3월, 봄과 함께 우리의 시 쓰기도 문을 열었습니다. 시가 데리고 가는 길을 잘 따라가고 계신가요. 무턱대고 첫걸음을 내디뎠기를, 발 닿는 대로 성큼성큼 걸어보셨기를 바랍니다. 지난번에는 일단 시작해보자고 등 떠밀었다면, 이번에는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제가 어떻게 시를 쓰는지에 대해서요. 특별한 비법은 아닙니다. 시에만 적용되는 방법도 아니고요. 그저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안내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평소에 메모를 많이 합니다. 아마 글 쓰는 사람 대부분이 그럴 텐데요. 메모는 글의 아주 중요한 재료입니다. 다만 시를 쓰기 위해 메모한다는 말은 좀 어색합니다. ‘시를 쓰기 위해’라는 생각조차 없거든요. 그냥 하는 거예요. 아, 이 사람 또 일단 메모하라고 하네 하며 지겨워하실 수도 있는데 일단 메모하십시오!(웃음)
무엇을 메모하느냐고요. ‘나’에게 와닿은 순간을 기록합니다. 자꾸 눈이 가는 것, 자꾸 마음이 가는 것, 늘 보는데 어느 날 조금 달라진 것, 귀를 뚫고 들어오는 누군가의 말, 뾰족하게 튀어나온 상황, 불현듯 스쳐 가는 느낌 같은 것 말입니다. 메모를 잘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잘하려고 하지 마세요. 한때 메모를 잘하고 싶어서 좋다는 수첩도 사고, 유용하다는 앱도 이것저것 써봤는데 결국 휴대전화 기본 메모 앱에 정착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선생님은 티슈에도 메모합니다.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보세요. 도구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점은 처음 순간을 남겨두는 것입니다. 그게 이상하고 덜 다듬어져 있어도 괜찮습니다. 멋진 말, 정제된 말로 쓰려 하지 말고, 친구에게 말하듯, 혼잣말하듯 날것의 형태로 적어두세요. 시는 온전한 것을 깨뜨리며, 또는 흩어진 것을 봉합하며 생겨납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시가 될 만한 말을 찾으려 하면 이미 구성된 세계를 더 단단하게 굳혀버릴 수도 있어요. 그래서 최대한 날것으로 메모하고 싶은데 나도 모르게 자꾸 그럴듯한 말로 바꾸고 있다면, 혹은 어떤 말도 생각나지 않거나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라면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놓기도 합니다. 음성 녹음을 할 때도 있어요.
부끄럽지만 제 메모장을 조금 꺼내보겠습니다. 전부 보여드릴 수는 없고요, 짧은 메모 몇 개만 적어보자면 이렇습니다. “가볍다는 기쁨, 뚫린다는 기쁨, 조용히 굴러다니는 먼지” “사람 보는 눈이 없다. 어쩐지 인간 같지 않은 것들만 보이더라니” “무슨 연애를 벼락치기로 해” “나는 이로운 것과 이롭지 않은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이롭다는 말을 해도 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것’이라고 말해도 되는지 알 수 없고, 구분도 못하고 아는 것도 없는 마음이 흘러와” “낙엽이 바닥을 긁는 소리, 젖은 먼지 냄새” “천국의 좁은 문, 구원의 좁은 문, 너무 작은 집에는 숨어들 곳이 없다” 대체로 이런 식입니다. 별것 없죠!
시를 써야겠다 싶으면 메모를 들여다봅니다. 반대로 어떤 메모는 며칠씩 저를 붙들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메모를 한참 바라보면서 거기서 파생되는 생각을 덧붙여 적어둡니다. 그 메모를 남기던 순간으로 돌아가보기도 하고, 거기서 한참을 떠돌기도 합니다. 메모를 읽으며 떠오르는 이미지도 적습니다. 상상도 하고요. 그렇게 한참 머물며 시에서 하고 싶은 말을 가늠합니다. 물론 계획대로 써지진 않지만요. 그래도 생각을 끝까지 밀고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두르지 마세요. 마음을 급하게 먹지 마세요. 급하게 먹으면 체합니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그 생각이 어디까지 뻗어나가는지 지켜봐야 합니다. 이야, 너 잘 간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데까지 가는구나. 그런 마음으로요.
그러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어떤 작은 씨앗을 발견하면 다음에는 이 이야기를 누가 말하도록 할 것인가 고민합니다. 인간일지, 인간이라면 어떤 인간일지, 인간이 아닌 존재일지, 나와 가까운 존재일지 먼 존재일지, 누가 말할지에 따라 시는 다른 길을 걷습니다. 이 화자가 어디에서 말하는지, 누구를 향해 말하는지도 함께 생각합니다. 배경과 거리, 말하는 위치와 듣는 대상을 정하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고민했지만 시를 쓰면서 바뀌는 경우도 매우 많습니다. 시의 길을 잘 따라간 것이지요.
그렇게 시를 쓰다가도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너무나 순조로워서 재미없거나 보여주고 싶은 게 덜 드러났다고 느껴질 때 메모장을 다시 엽니다. 지금 쓰는 시와 가까운 메모일 수도 있고,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뜬금없는 메모일 수도 있습니다. 이질적이고 충돌하는 메모, 하지만 아주 깊은 곳에서는 연결되는 메모를 꺼내어 시에 끌어다 놓습니다. 독자는 갑자기 딴소리한다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그 연결은 시 안에서 환기되기도 하고, 비유나 이미지, 묘사나 진술을 새롭게 열어주기도 합니다.
이제는 메모를 덮고 시를 매만질 차례입니다. 문장이 너무 평범해 보이거나 리듬을 잃은 듯할 때는 문장을 분해하고, 관련 없어 보이는 단어나 표현을 일부러 끼워 넣어보기도 합니다. 연과 행을 여러 번 바꿔보기도 하고요. 이렇게 매만지는 과정에서 어떤 의미가 발생하는지 아니면 어떤 의미로부터 달아나는지, 그것들이 나의 의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핍니다. 분위기와 호흡을 제가 원하는 결에 맞게 조금씩 바꿔보는 것이지요. 그리고 꼭 소리 내어 읽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후에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역시나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작 메모를 쌓아두는 일입니다. 시작 메모가 잔뜩 쌓였다고 너무 빠르게 시로 돌진하지 않는 것입니다. 시간이 없다고 성급하게 밀어붙이면 시도 멀리 가지 못합니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생각을 뚫고 또 뚫고 가야 합니다. 시는 대개 그 끝에서, 혹은 그 과정에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니까요.
쌓아둔 메모는 어느 날 한꺼번에 피어납니다. 매화가 그랬던 것처럼, 개나리가 그랬던 것처럼, 온 산이 철쭉으로 물드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리고 또 어김없이 흩어지겠지요. 하지만 여름이 연둣빛을 몰고 오듯, 메모는 우리를 또 이상하고도 근사한 시의 세계로 데리고 갈 것입니다. 그러니 일단 메모합시다!
박은지 시인·‘여름 상설 공연’ 저자
독자 글
시를 아무도 보내주시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런 고민이 무색하게도 일곱 분이나 시를 보내주셨습니다. 반갑고, 무엇보다 기쁩니다. 다섯 분께 답장을 드리기로 했지만, 첫 시간이니만큼 일곱 분 모두께 답장을 드렸습니다. ‘시 같은 시’를 쓰려 하기보다 자신의 경험에서 출발한 시를 만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에세이를 잘 쓰시던 분들은 시에서도 그 힘이 드러나는구나 하고 감탄하면서요. 3~4행의 짧은 시를 보내주신 분들도 계셨는데, 백일장에 나간 아이처럼 쓱 내밀어주신 마음이 느껴져 웃음이 나기도 했습니다. 다음에는 조금 더 길게 써보셔도 좋겠습니다. 짧은 시가 좋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짧은 시 쓰기가 오히려 더 어려워서 그래요. 몇 줄 안에 생각을 눌러 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거든요. 에세이에서 시도해본 것을 시에서도 이어가보면 좋겠습니다. 말하는 자의 자리를 바꿔보거나, 묘사를 조금 더 밀어붙이는 것 같은 시도들 말입니다.
오늘은 성호님의 시를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여러 감각과 장면이 포개지며 서서히 열리는 시입니다. 꽃봉오리, 자목련, 잎의 촉감과 냄새 같은 구체적인 감각이 이어지며 하나의 정서를 만들어냅니다. 어떤 감정을 직접 설명하기보다 장면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좋습니다. 섬세하게 확장되는 이미지가 돋보입니다.
오랜 생각에서 놓여나기
으앙 마음
쏟던 날엔
그게 자랑이었어
ᅠ
까닭 없이 걷진 않지만ᅠ
걷다 보니
왜인지 영문을 몰라
길 그대로 낯설은 적ᅠ
있는지
맞은편에 앉은
날 떠올리라는데
왜 그이 마주 앉는지
선을 긋고. 칼바람 주워 담는 봄
아이들과 정원 걸으면
있는 줄 모른 것만 가득한 게
나는 꽃봉오리도 안 보고 어찌 살았나
꽃, 이라고만 부른
자목련
꽃눈이 포근해서
미루
잘 밤에 고양이가 덮어주던 이해, 같은ᅠ
잎-볼에 코를 묻으면ᅠ
애기 냄새에 먼지 조금 섞인 냄새 날 듯
익숙한데 모르겠어ᅠ
가득 그리운 이 누굴까,
한참 떠올리다
귀한 모든 건 부드러이 포개어진다
쏟아지던 때에 볕들은 무슨 색이었을까
산책하쟀는데 내 뒤만 가만 따라 걷는 아이들
겨우내 빈 새집
제 살갗 백 년은 포갠 잣나무 비늘
하늘 아래 미끄럼틀
아래 내려와
너는 어떠냐
물끄러미 날 포개는 첫, 눈들
엎어지던 때 떠올리면
새로 살라고 놓인 아침에. 김성호
ᅠ
여러분의 글을 보내주세요
시를 쓰기 전에 메모부터 해봅시다. 이번에는 메모에서 출발해 한 편의 시로 이어지는 과정을 함께 해보려고 합니다. 주제는 자유입니다. 한 줄이라도 좋으니 먼저 메모를 남겨보세요. 눈에 걸린 장면, 마음에 남은 말,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 하나. 그 순간을 붙잡아 적어두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처음의 느낌을 너무 빨리 정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메모가 어디까지 뻗어나가는지 조금 더 지켜봐 주세요. 그렇게 남겨둔 메모를 바탕으로 한 편의 시를 써봅시다. 이번에도 다섯 분의 시에는 개별 피드백을 드릴 예정입니다.
주제: 메모를 기반으로 시 쓰기(자유 주제)
분량: 제한 없음
주제: ( )에게
분량: 제한 없음
마감: 2026년 4월19일
보낼 곳: han21@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특검, 김건희 2심서 징역 15년 구형…“용서 구한다”

이란, ‘전략적 승리’ 선언하며 2주 휴전 수용…호르무즈 통행 허용
![[단독] 윤석열 내란재판만 지연되나…‘3개월 내 선고’ 적용 안 돼 [단독] 윤석열 내란재판만 지연되나…‘3개월 내 선고’ 적용 안 돼](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408/53_17756300447058_20260408502768.jpg)
[단독] 윤석열 내란재판만 지연되나…‘3개월 내 선고’ 적용 안 돼

북 장금철 “계속 까불어대면 재미없다…김여정 담화는 분명한 경고”

이란 외무 “호르무즈 해협 안전한 통항 2주 간 가능”

청, 북 장금철 “개꿈” 담화에 “모욕적 언사는 평화에 도움 안 돼”

“늑대다!”…동물원 흙 파고 탈출한 ‘늑구’, 시내서 포착

홍준표, 국힘 후보 겨냥 “서로 대구시장하겠다고 설쳐 참 가관”

‘지옥문’ 열리기 88분 전 휴전…미·이란 종전까지 산 넘어 산

미군, 소총 주는데…구조된 조종사 ‘권총’ 어디서 구했나










![[단독] 맥쿼리 사모펀드, ‘알짜’ 휴게소서 2천억원 벌어갔다 [단독] 맥쿼리 사모펀드, ‘알짜’ 휴게소서 2천억원 벌어갔다](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403/53_17752212342421_20260403501162.jpg)



![[단독] 휴게소 운영사에게 떼인 28억원… 점주는 세상 등졌다 [단독] 휴게소 운영사에게 떼인 28억원… 점주는 세상 등졌다](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403/53_17752205085641_20260403500019.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