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우 시인 제공
이동우 시인(사진)은 기후위기와 재난, 동물권 등에 두루 관심 갖는 시인이다. 2023년 3월10일 시집 <서로의 우는 소리를 배운 건 우연이었을까>(창비)를 출간해 제41회 신동엽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기후위기에 관심 있는 독자들의 단체대화방 ‘한겨레21 지구를 지켜라’의 일원이기도 하다. 시를 통해 고통받는 약자를 만난다는 이동우 시인에게 ‘요즘 쓰는 시’의 주제를 물었다.
“수상작 선정 소식에 다시금 신동엽 시집을 꺼내 들었다. 이번에는 유독 ‘뼈섬’ ‘뼛죽’ ‘살뼈’ 같은 시어가 눈에 들어왔다. 그의 시를 읽으며 얼마 전에 본 허철녕 감독의 다큐멘터리영화 <206: 사라지지 않는> 속 은폐된 뼈들을 떠올렸다. 한국전쟁 때 무고하게 희생된 민간인들의 유해를 찾아나선 시민발굴단의 활동을 담았다. 총상에 훼손된 뼈를 보며 안타까워하고 아이의 뼈를 발견하고 울음을 터트리는 그들의 모습이 숭고해 보였다. 혼란한 시대 한복판에서 신동엽 시인이 하나하나 시어를 고르던 일이 흙 속에서 유골을 찾는 시민발굴단의 활동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쑥 뭉쳐 꿀꺽이며 압록강으로 제주도로 바다로 골짜기로 반만년 쫓기던 민텅구리 죄 없는 백성들의 터진 맨발을 생각하여 보아라’라는 신동엽 시인의 시 구절을 기억하겠다.”
“제목은 ‘Victim blaming’(피해자 비난)이다. 시 전문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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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 침몰했다/ 건져낸 골목은 좀처럼 마를 줄 몰랐고/ 팽목과 골목 사이는 미로였다/ 눈물을 뭉쳐 벽에 던지자 굵은소금이 쏟아졌다/ 딛는 곳마다 쓰라렸다/ 뽑히고 뜯긴 은행나무 잎들/ 벽면 가득 손글씨는 살려는/ 살리려는 손톱자국/ 따개비 같은 흉터가 즐비했다/ 주검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지난밤/ 골목을 뜯어내 으슥한 곳으로 옮기려는 자들/ 영정도 위패도 없이 표류하는 분향소는 난파선이었다/ 천막 밖 사박스런 확성기 소리에 찢긴 몸/ 심장을 꺼내 단 붉은 담쟁이들이 밤을 기어올랐다
서울광장 분향소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손을 맞잡은 이태원 유가족을 보고 마음이 착잡했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골목이 세월호 참사의 난파선 모습과 겹쳐 보였고 사회의 대응도 그때의 재연 같았다. 그래서 시도 그렇게 썼다.”
“3월 발간된 첫 시집엔 살처분된 동물들과 골령골에 묻힌 여순과 4·3 양민들, 세월호와 수장된 목숨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여전히 이 땅의 소외되고 그늘진 곳에 시선을 두려 한다. 요즘은 ‘아이들’에 관한 시를 많이 쓰게 된다. 난민 아이, 무국적 아이, 그림자 아이, 불법 입양된 아이 그리고 동물의 새끼들까지. 혹독한 상황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존재가 가장 약한 아이들이다. 관련된 보도를 <한겨레21>에서 자주 접했다.”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 예산이 삭감되고 블랙리스트 작성 논란 인사가 서울국제도서전 홍보대사로 위촉되고, 과거 정권 인사가 새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앉는 등 문화예술계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비록 척박한 토양이나 <한겨레21>은 잘 헤쳐나갔다. 문화예술계뿐만 아니라 사회, 정치, 생태, 출판 등의 이슈를 깊이 있게 취재하고 분석했다. ‘나의 지구를 지켜줘’(제1444호)부터 ‘우리 안의 후쿠시마’(제1481호)까지 다양한 쟁점을 제때 제대로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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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한겨레21>에 바라는 점이 바로 ‘이대로’다. 제1479호 ‘윤석열 정부 공영방송 장악’ 보도에서 보듯이 진보 매체가 나아가기 힘든 시기가 됐다. 지금처럼 ‘이대로’ 날 선 펜촉을 들어주길 바랄 뿐이다. 독자로서 응원한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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