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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구원받는다…‘정순애 식당’

아플 때 할머니의 밥 같은 위로를 주었던 <정순애 식당>
등록 2023-06-23 16:50 수정 2023-06-29 22:46
<정순애 식당>

<정순애 식당>

<정순애 식당>

<정순애 식당>

아르몽 작가의 <정순애 식당>은 2021년 봄에 완결된 웹툰이다. 나는 이 웹툰이 처음 나온 2019년 11월의 1화부터 완결까지 함께 달린 독자다. 2019년 11월은 내가 큰 병을 진단받고 채 두 달이 되지 않아서 격변기라 할 수 있었다. 그때도 나는 매일 빼놓지 않고 웹툰을 봤다. <정순애 식당>에서도 많은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 웹툰의 줄거리는 요약하기 좋게 단순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한 뒤 그 트라우마로 미맹이 된 주인공이 ‘정순애 식당’에서 맛을 다시 느끼고 그 인연으로 다시금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내가 이 웹툰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도외시하는 자극적인 작품들에 비해, ‘관계’ 그 자체를 조명하기 때문이다. 잘 짜인 캐릭터와 악당이 없어 평화롭고 둥글지만 사람마다 가진 애달픔을 존중하는 서사가 이 웹툰에 있다. 쌓인 ‘시간’과 타인을 위할 수 있는 마음, ‘정’이라는 두 가지 재료가 어떻게 관계로 요리돼 따뜻한 밥상으로 사람 앞에 놓이는지, 그래서 그 밥그릇을 싹싹 비운 사람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가 진정으로 사람에게서 구원받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이따금 생각한다.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구원받을 수도 있겠다고.

내가 만난 인생 최대의 행운은 가족이다. 비록 언제나 사이가 좋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내게 해준 것은 나에게 뼈와 살과 힘이 됐다. 그중에서도 어린 시절의 나를 먹여 살린 것은 할머니의 밥이었다. 병원에서 입맛이 없을 때조차 할머니의 반찬과 함께면 밥이 꿀떡 넘어갔다. 그래서 나는 주인공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눈이 번쩍 뜨이는 맛, 그것은 다른 게 아니라 사람의 정성이 듬뿍 들어간 음식이다. 그것도 보통 정성이 아니라 타인을 생각하며 꾹꾹 담아 넣은 정성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마음이 쓰였던 인물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형과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는 어린아이 ‘지후’다. 지후와 형과 할아버지는 식당의 오랜 단골손님이다. 주인공이 식당 옥탑에 머물면서 다 같이 꽃놀이를 갔을 때, 지후가 꽃을 만지고 싶어 하자 주인공은 지후를 어깨 위에 앉혀 목말을 태워준다. 그러자 지후는 주인공의 머리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뜨린다. 이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가수 백아의 노래 <테두리>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꽃남방 정든 훈장을 쥐고/ 세상에 그대 젊음이 울리면 난/ 기억을 잃고 다시 태어난대도/ 머무르고 싶다 떼를 써요” 이 부분을 듣고 나는 이 노래가 자신을 키워준 보호자의 너른 등을 떠올리며 썼다고 생각했다(후반부를 들으면 다른 의견이 충분히 제시될 만하지만). 어리지만 지후에게도 다시 돌아가 머물고 싶은 때가 있었다. 그리고 주인공이 그때를 돌이켜준다. 이 장면으로 인해 식당과 동네의 사람들이 주인공에게 온기를 일방적으로 나눠준 것이 아니라, 주인공 또한 지후에게 곁의 따뜻함을 내어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야기는 쌍방이 된다.

<정순애 식당>이 연재되던 시점은 한창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서로 격리돼 살았을 때다. 학교에 제대로 나가지 못하던 나는 사람이 그리워 많이도 울었다. 과연 사람에게서 내가 기대하는 관계를 얻을지 회의하던 그때 ‘아, 사람들 간의 온기가 이런 거였지, 정을 나눈다는 게 서로를 구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 하고 알려준 것이 이 웹툰이었다. ‘요즘 세상엔 정이 없다’고 투덜거리듯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다고 외칠 수 있는 웹툰이다.

신채윤 <그림을 좋아하고 병이 있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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