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도서관에 자주 올 수 있는 삶이 ‘좋은 삶'이라는 기준이 있다. 정신없이 바쁠 땐 필요한 책이 있어도 택배로 주문하지 도서관에서 검색해볼 여유조차 없으니까. 감사하게도 요즘 동네 도서관에 자주 간다. 집에서부터 천천히 걸어 언덕 위에 있는 도서관에 도착하면 몸도 머리도 적당히 달궈진다. 이 도서관은 층마다 야외 등나무 벤치로 이어지는 신기한 구조로 돼 있다. 과장하면 영화 <천공의 성 라퓨타>가 떠오르는 분위긴데, 해 질 녘엔 분홍빛 노을을 감상하며 약밥을 뜯어먹기도 좋다.
<도서관은 살아 있다>(도서관여행자 지음, 마티, 2022)라는 책에는 “도시의 거실”로서 공동체를 형성하는 세계 곳곳의 도서관 이야기가 등장한다.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자연스럽게 마주치고, 책뿐만 아니라 악기와 공구를 빌려주고, 홈리스에게는 안식처가 되며, 서가에서 시끄러운 콘서트를 열기도 하는 도서관들. 이런 내용을 읽으며 내가 거쳐온 도서관들도 떠올렸다. 초등학생 때 처음 내 이름으로 된 대출증(이자 첫 신분증)을 만들고 숙고해서 고른 책들을 당당하게 빌려본 순간 두근거렸던 기억이 난다. 중고등학교 도서실과 차원이 다른 규모의 대학 도서관에 입장했을 땐 그곳이 도서관의 이데아로 느껴졌다. ‘생활도서관'이라는 개념을 알기 전까지 말이다.
생활도서관은 도서관을 일상생활의 가운데로 데려오자는 운동이다. 가장 먼저 생긴 고려대 생활도서관은 아직 금서가 존재하던 1990년에 중앙도서관에는 들일 수 없던 책을 모아 자유롭게 읽고 토론하는 공간으로 시작해서, 학내의 다양한 구성원과 지역 주민에게 열린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이들은 이화여대 학생들과 함께 대학 도서관을 지역 주민과 공유하자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친구들과 생활도서관을 만드는 활동을 시작했다. 적당한 공간을 따내기는 쉽지 않았다. 2010년은 학내 공간의 상업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던 때이기도 했고, 학교 쪽은 공간을 취업 준비에만 쓸 수 있다는 논리로 일관했다. 회의실로 쓰던 작은 방을 도서관으로 꾸미고 운영했지만 늘 아쉬웠다. 주축이던 멤버들이 차츰 졸업하며 결국 생활도서관은 문을 닫았다. 우리는 결국 실패한 걸까.
2023년 5월 대학의 5·18 민중항쟁 열사 추모제에 초대받았다. 누가 우리 활동을 알고 초대장을 보냈을까. 10년 전 생활도서관 활동을 기록한 교지를 읽은 재학생들이었다. 기록이 우리를 이어줬구나. 생활도서관이 학생 자치 활동의 아카이브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던 게 새삼 기억났다.
별 성과 없이 흩어져버렸다고 생각한 일을 궁금해하는 이들을 만나고서 솔직히 꽤 감격했다. 그 힘으로 오래된 상실감을 걷어내고 활동을 돌아보던 중 한 장면이 떠올랐다. 학생회 대표자들이 모인 회의에서 생활도서관은 이용자 수가 적으니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폄하당했던 순간. 그 말에 분노하면서도 다른 학교들처럼 멋진 장서를 갖춘 번듯한 공간이 있었다면 달랐을까 생각했던 나.
도서관이 단지 책만 있는 공간이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공동체성을 상기시키는 공간이라면? 우리가 영화제, 강연회, 세미나와 연대활동을 부지런히 기획하며 작은 방을 넘어 움직이는 도서관이 되려고 한 활동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었다고 봐도 될까. 특히 최근 도서관의 다양한 사회적 기능을 간과한 채 관련 예산을 삭감하고 나아가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 ‘플랫폼피’를 ‘일자리센터'로 바꾸려는 서울 마포구를 보면서 더욱 느끼는 바다. “지혜로운 인간들은 도서관을 건립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은 도서관을 파괴한다.”(<도서관은 살아 있다> 154쪽)
김주온 BIYN(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활동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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