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한 장의 사진이 있다. 바로 서울어린이대공원에서 탈출한 얼룩말 세로가 골목길에서 배달노동자와 마주 보는 장면이다. 말과 인간 모두 이 낯선 상황에 적잖이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세로에게 현실이란 좁은 울타리 안 사육장이었다. 그에게 생애 처음 박차고 나온 동물원 밖의 사물과 지형들은 초현실적이었을 것이다. 반면 촌각을 다투는 배달 노동 중 마주한 한 마리 얼룩말은 그 목격자에게 유니콘을 본 것과 맞먹는 환상적인 풍경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 사진이 근래 우리 시대의 가장 초현실적인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운전자 없이 자율주행을 하고, 쏘아 올린 로켓을 안전하게 수거하고, 인공지능으로 죽은 가수의 목소리를 살려내는 시대지만 상식과 전망을 완전히 벗어나 일상의 사물과 존재들을 평소에 인식한 모습과는 다르게 인지할 계기가 실은 우리에게 없기 때문이다. 동물은 동물원이나 사육장에 있어야 하고, 도시 속 인간은 끝없이 노동해야 한다. 이 견고한 생각의 감옥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기에 세로의 탈출은 울림이 있었다.
역사적으로 20세기 초 초현실주의자들의 생각도 이와 비슷했다. 그들은 초현실을 단순히 비현실적인 경험이나 상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분명히 현실 안에 존재하지만, 전혀 감지하지 못한 수많은 구멍을 감지하고 그 잠재성을 일깨우는 일에서 초현실을 마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초현실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순수한 관점에서 오히려 경험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초현실은 현실의 반대말이 아니라 오히려 증강된 개념이 된다.
홀로 자라 스트레스를 받았던 세로는 여전히 분노와 속상함으로 가득 차 있을까? 아니, 그마저도 인간인 나의 오지랖으로 넘겨짚는 생각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세로의 탈출을 응원하면서 우리가 실은 우리 자신을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세로가 마취총에 의해 잠들어 동물원으로 돌아가자 누리꾼들은 세로가 달리는 모습을 편집해 인터넷 밈으로 퍼다 날랐다. 비록 세로는 원하지 않았지만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나아가 누리꾼들은 인공지능 이미지 생성기로 미래 도시를 질주하는 사이버펑크풍 세로, 우주복을 입고 달 위를 달리는 우주말 세로, 인간과 말의 관계가 역전돼 인간을 통제하는 세로, 상점과 지하철을 느긋하게 이용하는 세로, 맥도날드에 가보는 세로 등을 생성해냈다. 이 비현실적인 이미지들은 세로가 잠시나마 경험한 초현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만들어졌다.
이로써 그전까지 실험이나 장난 수준에서만 사용된 인공지능 이미지 생성기는 거의 처음으로 인간의 진지한 욕망을 담은 표현 도구가 되는 순간을 맞았다. 우리는 온갖 ‘비현실’을 창조할 수 있는 인공지능 시대를 사는데도 대낮에 출현한 얼룩말의 ‘초현실’에 놀란다. 그리고 비현실의 도구를 통해 초현실을 응원한다. 아마도 훗날 ‘세로의 탈출’은 단순히 한때 유행하는 인터넷 밈이 아니라 진지하게 다른 삶을 살기를 바라는 욕망을 담은 인간의 무의식 언어로서 기억될지 모르겠다.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는 인공지능 시대가 만능이 아니다. 비현실에 도취하기 전에 초현실부터 경험해야 한다.
오영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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