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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꾼들

집 180m 앞에 텃밭이 생겼다

서울에서 벗어나 한 역만 더 가니 밭이 펼쳐진 동네가, 집 계약하기도 전에 밭부터 분양받았는데

제1429호
등록 : 2022-09-05 20:25 수정 : 2022-09-11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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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살 때는 대중교통으로 최소 1시간 달려야 갈 수 있는 텃밭이, 지금은 걸어서 1분 거리에 있다.

“우리 공항철도 타고 딱 한 역만 더 가볼까?”

그렇게 인천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취업길에 상경한 나는 서울에서 일하고 결혼까지 했으니 쭉 서울 사람으로 살 줄 알았다. 하지만 좁은 신혼집에 살림살이가 불어나 이사를 피할 수 없던 시기에 대출 규제가 강화되고 집값이 너무 올랐다. 주말마다 ‘부동산 투어’를 하다 지친 어느 날, 문득 서울을 떠나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렇게 공항철도에 몸을 실은 우리는 서울의 마지막 역인 김포공항역에서 딱 한 역을 더 가 계양역에서 내렸다.

세상에, 전철역 밖으로 나오면 밭이 펼쳐진 동네가 또 있던가. 나름 서울과 닿은 동네인데, 막힘없이 푸르른 하늘 아래 밭이 널려 있는 동네는 처음이었다. 알고 보니 군사보호시설과 그린벨트로 개발이 불가능한 땅이 많은 곳이었다. 그리고 주말농장도 세 곳이나 있었다! 밭이 없어도 동네에서 텃밭을 일구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동네라니. 이 동네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앞으로 우리가 살 동네는 여기 인천시 계양구 귤현동이다.

우리는 집을 계약하기도 전에 동네 카페에 가입해 주말농장 주인부터 찾아 분양받았다. 주말농장은 봄을 놓치면 다음 해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집 매물을 보러 갈 때마다 텃밭에 씨를 뿌리고, 계약금 치르고 중도금 넣을 때마다 모종을 부지런히 옮겨 심었다. 마침내 이사를 마쳤을 때는 밭에 차이브·고수·바질·글라디올러스·딸기·가지가 부지런히 크고 있었고, 감자는 수확할 정도로 자랐다. 놀랍게도 이 텃밭은 집에서 180m 거리다. 서울에 살 때는 대중교통으로 최소 1시간 달려야 갈 수 있는 곳이 텃밭이었는데 지금은 걸어서 1분 거리. 여전히 놀라운 행운이다.

어느덧 귤현동 거주 2년차, 귤현동 주말농장 3년차이던 2021년 겨울에는 뜻밖의 이웃을 만났다. 바로 풀을 찾아 동네를 배회하던 염소. 혹여나 염소가 차에 치이지 않을까 걱정돼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마을의 원주민인 텃밭 주인과 처음으로 긴 통화를 한 나는 염소를 무사히 인계한 뒤 텃밭 주인 할머니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물었다. “혹시 로터리 안 치는 밭은 없나요?”

주말농장은 가을 농사가 끝나면 ‘방을 빼야’ 한다. 밭을 갈기 때문이다. 그걸 농사 현장에서는 트랙터 뒤에 다는 장비의 이름을 따 ‘로터리 친다’고 한다. 흙을 갈면서 생기는 문제가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데, 땅에 가둬진 탄소가 빠져나올 뿐 아니라 토양구조와 토양생물에 영향을 주고, 토양이 침식되거나 다져진다는 거다.

허브부터 꽃까지 다양하게 키우는 도시농부에게 땅을 간다는 건 환경문제도 있지만 다년생식물을 화분에 옮기고 돌보다 매년 다시 텃밭으로 돌려놓아야 하는 성가신 일이 추가된다. 게다가 저장성이 좋은 마늘이나 양파도 못 심고, 토양을 개량해준다는 밀이나 보리를 심으며 돌려짓기할 수도 없다. 그래서 땅을 갈지 않는 밭이 나에겐 꼭 절실했다.

며칠 뒤 텃밭 주인은 내게 밭 귀퉁이를 밭을 안 갈고도 내줄 수 있겠다고 했다. 단, 조건이 있었다. 원래 내가 분양받았던 땅은 10평인데 그 땅은 50평 정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넓은 땅을 30평 가격에 싸게 준다며 인심도 써줬다. 그 땅이 왜 그리 싼지는 임대료를 입금한 뒤 알 수 있었다.

글·사진 이아롬 프리랜서 기자

*농사꾼들: 주말농장을 크게 작게 하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이아롬 프리랜서 기자, 전종휘 <한겨레> 기자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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