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를 뽑는다. 싹을 자른다. 근절한다. 뿌리 깊다. 싹을 밟는다. 싹이 없다. 싹이 노랗다.
풀을 뽑다보면 농사와 관련된 말이 많다는 걸 깨닫는다. 풀은 주로 뿌리를 뽑는데,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뿌리를 뽑아 고랑에 던져놓으면 비가 오거나 날이 구질구질 습하기만 해도 슬금슬금 머리를 들고 다시 살아난다. 그래서 근절, 뿌리를 자른다는 말이 있나보다. 풀뿌리를 뽑고 싶은데, 하도 뿌리 깊어 싹만 뜯어내는 경우도 꽤 많다. 보통 작물은 싹이 잘리면 그걸로 생장이 멈추는데, 풀은 어림없다. 잘 자라주길 바라는 작물만 정성 들인 마음도 모르고 싹이 노랗게 되곤 한다.
애써 풀을 싹 뽑아놓고 다음주에 가보면 다시 무성해져 있다. 풀과 싸워 이기는 것보다 인간이 잡초를 먹도록 진화하는 게 빠를 것 같다. 우리 밭을 점령한 풀이 궁금해 관련 책을 몇 권 샀다. 놀라운 사실 몇 가지를 알게 됐다.
하나는 풀은 뽑을수록 늘어난다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풀을 뽑을 때 풀씨 발아가 촉진된다. 풀씨는 한꺼번에 발아하지 않고 조건이 될 때까지 길게는 몇 년 동안 땅속에서 호시탐탐 싹을 틔울 기회를 노린다. 풀을 뽑으면 땅속 씨앗 입장에선 그늘을 드리워 빛 쬐기를 방해하던 경쟁 식물이 사라지는 것이다. 먼저 자란 개체가 사라진 빈 땅에서, 빛을 마음껏 쬔 씨앗은 쏙쏙 싹을 내밀고 다시 땅을 점령한다. 풀을 맬 때 호미로 땅을 파보면 콩나물이나 새싹채소처럼 생긴 발아한 풀 씨앗이 빽빽하게 들어 있는 곳이 있다. 스탠바이하고 있는 이 녀석들에겐 인간이 풀을 매는 게 큐 사인인 셈이다.
그렇다면 뽑지 않고 베면 어떨까? 풀은 베어도 다시 자란다. 생장점이 잘린 풀은 옆 가지를 더 많이 뻗어내 풀씨를 더 많이 만든다. 간혹 생장점이 아래쪽에 있는 풀은 위쪽을 잘라내도 그냥 쑥쑥 자란다. 그러니 예초기도 제초제도 효과가 일시적이다. 잘린 풀은 다시 자라고 제초제에 내성이 생긴 풀이 또 생기기 때문이다.
풀에 관한 또 다른 놀라운 점은 풀이 강한 식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뽑아도 뽑아도 계속 나는 풀이 사실은 약한 식물이라고요? 잡초는 나무 같은 다른 식물에 비해 생존경쟁에 약해서 다른 식물이 자라기 어려운 곳에 자리잡는다. 길가나 자주 김매는 논밭에 풀이 자라는 이유이다. 예측 불허의 불안정한 환경에서 어떻게든 적응해 번식하는 것이 풀의 생존법이다.
흔히 ‘잡초’ 하면 강인한 생명력을 떠올리는데, 개체 하나하나가 강하다기보다는 엄청나게 뿌려둔 씨앗이 언제 어디서든 올라오는 것이다. 풀은 번식에 진심이다. 오직 번식하기 위해 자라는 것 같다. 풀을 관찰하다보니 풀은 싹을 틔우고 자리를 잡으면 바로 꽃부터 피워 씨를 맺는 걸 알게 됐다.
이것은 ‘시골 생활의 불편사항’ 하면 풀과 함께 연관검색어로 같이 떠오르는 벌레도 마찬가지인데, 이 녀석들도 성체가 되면 짝짓기부터 한다. 자동차 보닛이고 툇마루고 장소 가리지 않고 쌍으로 기어다닌다. 인간이 아무리 벌레 퇴치기를 걸어놓고 모기향을 피워도, 불빛에 몰려드는 이유는 저 쌍으로 붙어 돌아다니는 날벌레, 땅벌레가 끝없이 생산해서다.
졌다. 출산율 0.8의 인간은 당해낼 수가 없다. 풀과 벌레가 싫은 자는 도시로, 도시가 싫어 시골로 도망친 자는 적응밖에 답이 없다.
참고한 책
<유쾌한 잡초 캐릭터 도감>(이나가키 히데히로, 한스미디어)
글·사진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농사꾼들: 주말농장을 크게 작게 하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한겨레> 김완, 전종휘 기자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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