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갈래로 나누어진 환상 아래 숨 쉬는 난 그저 인간이란 말야” 여성 래퍼 재키와이의 을 듣다, 이 가사에 한참 생각이 머물렀다. 여성을 성녀(Maria1) 아니면 창부(Maria2)로만 바라보는 기독교의 이분법을 비판하며, 진리와 가치를 전도하는 새로운 예수가 되겠노라 선언하는 재키와이의 노래는 여성에게 종교란 무엇인지를 묻게 한다. 곡이 실린 앨범 《Neo EvE》에 짙게 깔린, 기독교를 향한 분노와 환멸은 그 대답일 테다.
시계를 돌려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이와는 전혀 다른 여성과 종교의 만남을 마주하게 된다. 1918년, ‘글 쓰는 여자’ 나혜석은 자전적 소설 <경희>에서 자신이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인 이유를 “하느님의 딸”이기 때문이라 이야기한다. 똑같이 하느님이 만든 인간인 이상, 여성도 남성과 같이 “보이지 않는 험한 길”을 찾아나설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박효근의 <여성, 종교개혁과 통하다>는 격동의 종교개혁기,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했던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다. 통념과 달리 여성은 종교개혁을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이기만 한 객체는 아니었다. 이들은 남성 개혁가가 부과한 원칙과 규율에 완강히 저항했고, 이를 교묘히 이용했으며, 심지어 창조적으로 전유해감으로써 저마다의 방식으로 종교개혁과 통(通)했던 적극적인 주체였다.
지은이는 여성에게 종교개혁이 결코 균질적이고 단일한 사건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시대에 ‘저항’했던 16세기 주네브(제네바)의 두 여성은 이를 잘 보여준다. 열성적인 종교개혁가 마리 당티에르는 자신을 재밌는 이야깃거리 정도로 취급하는 ‘남성연대’에 맞서 여성도 신에게서 재능과 은총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따지고 보면 예수를 팔아넘기고 배반한 것도, 수많은 이단과 사교를 만들어 퍼뜨리는 것도 다 남성이 아니냐는 그의 일갈은 지금도 통쾌하게 느껴진다.
물론 우리의 또 다른 주인공, 성 클라라 수녀원의 잔 드 뒤시 수녀에게 당티에르는 전혀 ‘저항의 아이콘’ 따위가 아니었다. 중세 수녀원은 남성 중심 지배질서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나, 여성이 가정에서 벗어나 사회적 역할을 맡은 몇 안 되는 공간이기도 했다. 잔 드 뒤시 역시 수녀원의 기록 담당 서기수녀로 임명되고 주네브의 여학교에서 교육받는 등 평범하게 결혼했다면 절대 얻지 못했을 기회에 나름대로 만족했던 듯하다. 그런 만큼 수녀는 갑작스레 수녀원에 들이닥쳐 일장연설을 늘어놓던 당티에르를 “배배 꼬인 여자”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지은이의 박사논문 주제이기도 한, 프랑스의 위그노(신교도) 여성 샤를로트 아르발레스트는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다. 저명한 위그노 사상가 필리프 뒤플레시스 모르네의 아내인 그는, 여성들의 연대를 이용해 정보를 공유하고 위그노 공동체의 결속을 다졌다. 남편이 위그노를 찍어 누르려는 함정이나 다름없던 논쟁에 뛰어들자 그 부당함을 알리는 글을 앞장서서 인쇄·유포하는 등 ‘바깥양반’ 역할까지 맡았다. 마치 인재근과 김근태처럼, 아르발레스트와 모르네는 종교개혁이라는 대의를 위해 투쟁하는 동지였다.
끊이지 않는 교회 내 성폭력이 보여주듯 여성에 대한 종교의 억압과 착취가 여전한 지금, 이 책을 읽는 게 어떤 의미일지 자문해본다. 여성과 종교의 다양한 관계맺음, 이로부터 비롯된 해방과 통제의 가능성을 두루 살피는 일. 지은이가 애정을 담아 그려낸 종교개혁기 여성들은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유찬근 대학원생
*유찬근의 역사책 달리기: 달리기가 취미인 대학원생의 역사책 리뷰.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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