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관, 여태 못 본 역사를 마주하는 순간 [21WRITERS①] 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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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재밌는 점이 있다. 허생의 섬은 “기존의 문자 위에 구축된 문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곳은 “문자와 책이 없는 사회”이자, “타자를 지배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서의 지식이 없는 사회”이다. 게다가 “허생은 자신이 내린 지식에 대한 정의에 입각해 지식인인 자신을 섬에서 배제”한다. 같은 논리라면 강명관 역시 아무리 피지배층의 유토피아를 그려낸다 한들, 허생처럼 결국 그곳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만일 문자라는 이데올로기가 없는 곳이 유토피아라면, 그렇기에 문자를 다루는 지식인은 결코 유토피아에 다다를 수 없다면 강명관의 작업은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지식이 가진 어떤 폭력성을 말하고 싶었어요. 지식이란 게 인간을 무지로부터 해방하는 도구가 돼야 하는데, 지식에는 항상 이데올로기가 묻어 있잖아요. 폭력성을 가진, 다른 사람을 지배하기 위한 지식. 그런 지식의 폐기를 의미하죠. 누구를 위해서, 어떤 목적을 향해서 문자로 지식이 구성되는가 그걸 반성해보자는 겁니다. 내가 한 작업 중에서 제일 인상적인 책을 꼽으라면 나는 <열녀의 탄생>을 생각하는데, 조선시대에 수많은 <열녀전>이 만들어지잖아요? 그건 기본적으로 말하자면 겉으로는 여성을 찬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성의 성을 수탈하기 위해서 만든 작품들이죠. 그 언어들은, 여성을 지배하겠다는 의지가 뚜렷한 거죠. 내부에, 그 이면에. 그러니까 <열녀전>과 <열녀전>을 바라보는 글은 서로 좀 다른 거죠.”
실제로 그는 집요하리만치 이념이 갖는 폭력성과 억압성을 파헤쳐왔다. 그런 강명관의 작업에서 독특한 예외가 있다. <신태영의 이혼 소송 1704~1713>이다. 조선 여성 신태영은 가부장제의 언어로 가부장제에 저항한다. 자신이 시부모에게 불효한다며 남편인 유정기가 이혼을 종용하자 그의 모든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한편, 역시 유교의 윤리인 효를 무기로 양아들인 유언명의 불효가 문제의 근원이라고 되받아친다. 가부장에 맞서 스스로 가부장이 된 문제적 인물, 신태영에 대한 강명관의 평가는 복잡하다.
“평가가 참 어려워요. 신태영은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준 거잖아. 자식은 저항을 못하니까, 자기 친자식도 아닌데. 과연 가부장제에 저항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게 옳은 일인가. 그래서 맨 끝에 내가 썼어요. 가부장제가 여성을 삼켰는데, 삼켰으면 쑥 내려가서 소화돼야 하는데 안 되고 목에 박혀버렸다고. 그러니까 이걸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나도 굉장히 곤란하더라고. 참 어려운 문제 같아. 그러니까 문제는 뭐냐, 가부장제가 여성을 안 삼키면 되는 건데.(웃음)”
아마도 강명관은 ‘근대’라는 개념을 역사에 적용하는 데 신중한 학자 중 한 명일 것이다. 불가피하게 그런 말을 써야 할 때면 “나는 이 용어를 쓰기 싫지만 지금 형편으로는 대신할 방도가 없기에 임시로 사용한다”고 따로 각주를 달 정도다.
그럼에도 그의 책에선 간혹 서구 근대를 준거로 한국 역사를 평가한 대목을 찾을 수 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중세를 붕괴시켰지만, 조선의 금속활자는 중세를 고착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평가한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가 대표적이다. 물론 이는 결코 강명관의 학문적 불성실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어떤 암시, 그러니까 근대를 가장 철저하게 비판해온 그조차 근대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의미로 읽힌다.
“근대를 비판하면 자연히 근대라는 것을, 계속 갖고 오게 되지요. 갖고 오니까 거기서 빠져나갈 순 없어요. 우리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어도 언어를 빌릴 수밖에 없는 것과 똑같죠. 그런 차원에선 할 수 없는 것 같고. 우리가 과거에 생각한 지점이 뭐였냐면 우리 역사에서 어떻게 하면 근대적 자본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발견할 것인가라고 생각했단 말이죠? 나는 그게 문제의 시작이다, 그것이 결국은 이 자본주의적인 어떤 시장경제를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냐. 그러니까 그게 곱게 보이지가 않았던 거지. 그걸 비판한 거고.
내가 지금 학자로서 종반전에 들어간 셈인데, 난 좀 절망적이에요, 절망적이야. 그러니까 나는 처음에 젊어서 공부할 때는,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면 뭔가 넘어갈 길이 있지 않겠냐고 생각했는데,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던 거지. 노력은 끊임없이 해야겠지만, 길은 잘 안 보일 거다. 근대를 넘어설 수 있는 길은 잘 안 보일 것이다. 특히 소비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길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깊이 들어요.”
그러나 강명관이 완전히 낙담한 것은 아니다. 요즘 그는 <이타와 시혜>라는 책을 쓰고 있다. 근대 이전, 시장경제로는 환원되지 않는 베풂과 나눔에 대한 이야기가 뭉텅이로 존재하더라는 것이다. 그런 비합리적이고 비경제적인 행위가 나온 문화적 배경을 재구성해 조선 사회의 새로운 단면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강명관은 여전히, 비(非)근대로의 탈출구를 모색 중이었다.
과거로부터 어디까지 읽어낼 수 있는가는 모든 역사가의 고민이지만, 강명관에겐 유독 무겁게 다가오리라 지레짐작했다. 강명관이 다루는 언어인 한문은 명백히 지배자의 언어이지만, 그의 관심사는 뚜렷하게 그 바깥의 사람들에 있기 때문이다. 강명관은 의외로 낙관적이었다.
“근본적으로 남아 있는 문헌을 통해서 과거 사람의 생각을 읽어내는 덴 한계가 있어요. 왜냐면 과거 문헌, 텍스트는 수많은 문법, 자체의 문법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옛사람의 생각을 정교하게 드러낼 수도 없고, 또 그 밑에 있는 내밀한 욕망을 다 드러낼 순 없어요. 사족들은 자기가 가진 언어로 자기를 표현할 수 있으니 그나마 낫죠. 그런데 그 이하 층은, 정말 힘들어요.
하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에요. 일단 <승정원일기>처럼 자료군(群)이 많아졌어요. 우리가 큰 자료군 하면 <승정원일기> 말고 <실록>을 드는데, <실록>은 이미 선택된 자료잖아요. 그런데 자료군이 <승정원일기>에 워낙 많기 때문에 그 많은 더미 안에는, 자료가 의도하지 않은 낙수가 너무나 많이 떨어져 있는 거죠.
우리가 조선시대 포도청에 일반 민중이 잡혀 들어가는데 그 구성이 어떻게 되느냐, 어떤 사람들이냐를 잘 모르잖아요. 그런데 <승정원일기>를 읽어보면 그런 것들이 막 나온단 말이에요. 물론 이게 육성은 아니죠. 근데 요즘 보면 그 자기공명영상장치라고 있잖아요. 살아 있는 사람 뇌를 열어볼 수는 없으니까 밖에서 활성화된 뇌의 부위를 보고 그 안의 상황을 짐작하잖아요. 그것처럼 이런 자료에서 사람들의 동태, 그다음에 생각, 전략 등을 읽어낼 가능성이 커요.
지금 초고로 탈고한 글 중 하나가 <노비와 쇠고기>라는 책이에요. <실록>에는 그런 자료가 별로 안 나오는데, <승정원일기>엔 성균관 노비들에 대해서 방대한 자료가 나와요. 그 자료를 계속 읽다보면 이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성균관에, 혹은 국가에 지배당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거죠. 왜냐하면 이 노비들이 성균관에다 운영자금을, 엄청난 돈을 댄단 말이에요. 그걸 이용해서 성균관을 움직이고 자기 의사를 관철하려는, 그런 움직임이 많이 나온단 말이죠? 우리가 물론 그 사람을 붙들어서 육성으로 들으면 제일 좋겠지만 그게 안 되니까.(웃음) 그런 방법을 통해서도 짐작은 할 수 있어요.”
강명관은 ‘어중개비’(어정잡이의 경남 사투리)의 역사를 쓰고 싶다고 했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튀는’ 구석 없이 모호한, 그렇지만 재밌는 이야깃거리를 남긴 사람들의 기록을 훑노라면 아무도 없는 숲길을 혼자 걷는 기분이 든다고 한다. 문득 전혀 다른 곳에서, 지금까지 전혀 보지 못한 것을 마주하는 순간. 강명관은 그런 순간이 참 즐거우면서도 어떨 때는 고적(孤寂)하다고 했다.
‘쓰는 사람’ 인터뷰를 준비한단 얘기에 친한 친구가 보인 반응이 기억에 남는다. 쓰는 사람을 말하게 한다니, 되게 오묘한 기획이라고. 정말 그렇다. 인터뷰날 아침 강명관에게 제법 빽빽한 질문지를 보냈더랬다. 오후 3시 그의 집으로 가 인사를 나누고 짐을 푸는데, 두툼한 종이뭉치를 건네받았다. 질문지를 미리 뽑아준 것인가 싶어 살펴봤더니 이게 웬걸, 그 짧은 시간 각 질문에 대한 답을 타이핑해놓았다! 지극히 ‘쓰는 사람’다운 자세였다. 이럴 거면 기획에 걸맞게(?) 서면 인터뷰로 진행할걸 그랬나, 잠깐 후회했다. 그래도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이어갔기에, 글에선 드러나지 않는 강명관의 웃음과 고민, 수줍음과 머뭇거림을 담을 수 있었다. 다시금 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말이야말로 ‘쓰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글을 오롯이 보게 해주는 수단이었던 것일까.
유찬근 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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