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안국동사거리 서울공예박물관 벽면에는 ‘모두의 공예 모두의 박물관’이라고 쓰인 커다란 간판이 붙어 있습니다. 글귀에 걸맞게 건물을 둘러싼 담장도 일부 허물어 삼청동을 오가는 누구나 마당에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습니다. 마당을 오가는 노부부, 엄마와 딸, 젊은 연인을 보고 있자면 ‘모두의 박물관’이라는 말이 실감 납니다.
이 간판이 유난히 눈에 띈 건, 이곳이 실은 오랜 세월 ‘모두의 공간’이 아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선시대 세종은 아끼던 아들 영응대군을 위해 이곳에 집을 지었고, 고종은 순종의 혼례를 위해 ‘안동별궁’을 지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땐 왕가의 척족이자 친일파인 민영휘 가문이 이곳을 사들여 풍문여자고등학교를 세웠습니다. 2017년 서울시가 부지를 사들이고 학교는 이전하면서 2021년 7월 지금의 박물관이 들어섰습니다.
2022년 1월15일 낮, 서울공예박물관 앞마당 풍경은 이런 박물관 부지의 역사와는 이질적이었습니다. 예닐곱 살 된 아이들은 서울공예박물관에 달린 어린이박물관을 방문했다가 학교 운동장을 닮은 넓은 마당에서 모래를 차며 뛰어놀았습니다. 마당 한편엔 거대한 조약돌 같은 분청의자가 줄지어 있는데, 아이들은 도예가 이강효의 작품인 줄도 모르고 서슴없이 앉고 만지고 끌어안았습니다. 어른들은 ‘예술품인가, 의자인가’ 헷갈려하다 차마 앉지 못하고 돌아서기도 했습니다. 의자를 만든 이 도예가는 이런 모습을 예견이라도 한 듯 “작품이란 게 귀한 것인가보다 생각하는데, 그런 것보다 앉고 만지고 쓰다듬고 잠깐 앉아 쉬면서 제 작품을 감상해줬으면”이라고 전시관 영상 속에서 말합니다.
서울공예박물관 곳곳에는 이 도예가를 포함해 현대 작가 9명의 공예품이 숨어 있습니다. ‘쓰임이 있으면서 예술적 가치가 있는 물품’이라는 공예품의 사전적 정의와 어울리게 이들의 작품은 의자로, 안내데스크로, 외벽 장식과 천장 장식으로 스며들었습니다. 박물관 1층 로비 벽면에는 이들이 공예품을 만드는 과정이 흘러나오기도 합니다. 방문객들은 웃으며 로비에 들어섰다가 흙을 밟는 장인의 발, 대나무를 엮는 장인의 손, 돌을 깨는 장인의 몸짓을 보고 잠시 침묵 속에 걸음을 멈춥니다.
이들의 작품이 안국동사거리에 자리한 건 우연이 아닙니다. 고미경 서울공예박물관 학예사는 “조선시대 서울에 소속된 장인을 ‘경공장’이라 불렀는데, 이들의 가장 중요한 수요자는 왕실이었다”며 “시장은 자연스레 경복궁 인근에 들어섰고, 경공장으로 불린 장인들이 북촌 일대로 몰려왔다”고 설명했습니다. 한때 광화문 대로 시전에서 자태를 뽐내던 이름 없는 장인의 물건들은, 이제 전시실 안으로 들어와 박물관 한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은 닫아도 마당은 열려주말 낮 이곳엔 삼청동에 놀러 온 연인과 가족이 주를 이루지만, 평일 밤에는 안국동 주민들이 나와 산보를 즐긴다고 합니다. 박물관이 문을 닫아도 담장이 없어, 박물관 앞마당만은 열려 있는 덕입니다. 시대에 따라 이곳에 전시된 공예품의 쓰임이 달라졌듯, 이 땅의 쓰임도 이렇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서울=손고운 <한겨레>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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