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를 짓겠다고 강원도 진부에 본격적으로 다닌 지 3년이 되었다. 왜 하필 진부냐 하면 “땅이 거기 있어서” 말고는 답할 말이 없다. 만일 주말농장을 하자고 땅을 알아보러 다녔다면 강원도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강원도라고 해도 외가가 있는 평창읍이나, 남편이 마음의 고향이라 주장하는 정선 같은 곳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이전에 진부에 온 것은 오대산 월정사를 가려고, 혹은 정선을 목적지로 영동고속도로 진부IC를 빠져나와 지나간 정도가 다였다.
그랬는데, 겨울 빼고는 한 달에 적어도 두 번 진부에 드나들며 농자재 사러 농협경제소를 가고, 오며 가며 밥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진부 시내에서 장을 보고, 장날을 꼽아 기다렸다가 구경하고, 그러다보니 정이 들었다. 단골 밥집이 생기고, 단골 편의점이 생기고, 새로운 가게가 생기면 가본다. 철물점 사장님과도 곱창집 사장님과도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다. 지난 주말엔 이웃 어르신이 저녁 초대를 하셔서 장작불에 종일 곤 소머리 고기와 수십 병의 소주를 대접받았다. 소소할지언정 진부에서 돈을 쓰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조금씩 애착을 키워간다.
농사 시작한 첫해, 한창 재미있어서 머지않은 미래에 진부로 이주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기도 했다. 그러다 2년차에 욕심을 부려 큰 농사를 시도했다가 처참히 실패하고는 역시 농사짓고 살 수는 없겠다 결론을 내렸다. 인구 8천 명의 진부면에서 무엇을 해야 먹고살 수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게다가 ‘지역 주민 피셜’ 겨울이 6개월인 날씨를 겪어보니 정말 정착엔 큰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그래도 한 지역을 자세히, 오래 보다보니 애정이 생긴다. 진부에 들어서면 내비게이션을 끄고 구석구석 잘 찾아다니고, 어느 골목에 어떤 가게가 있는지도 안다. 진부 사람 다 됐네 싶다. 이게 지역과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관계 인구’로 살아간다는 걸까?
농막에서 잠을 자도 된다는 주장을 하려고 사설이 길었다. 귀촌 커뮤니티에서는 농막에서 숙박해도 된다, 안 된다 갑론을박이 많다. 누군가는 주거용이 아니기에 하룻밤만 자도 단속이 된다 하고, 누군가는 주위에 피해만 주지 않으면 괜찮다 한다.
농지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농막의 범위는 이렇다. “농작업에 직접 필요한 농자재 및 농기계 보관, 수확 농산물 간이 처리 또는 농작업 중 일시 휴식을 위하여 설치하는 시설(연면적 20㎡ 이하이고, 주거 목적이 아닌 경우로 한정한다.)” ‘주거 목적’에서 해석이 갈린다. 주거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한 곳에 머물러 사는 것이다. 그러니까 농막을 주 거주지로 삼지 않으면 괜찮다는 게 내 생각이다. 주말에 농사지으러 가면 보통 1, 2박은 하는데 이를 ‘농작업 중 일시 휴식’으로 보아도 되지 않을까?
일시 휴식을 위한 농막에 법적으로 상하수도, 전기, 정화조까지(지자체마다 다름) 허가해주었다. 그렇지. 쉬려면 화장실도 가야 하고, 여름엔 선풍기도 돌리고, 휴대전화 충전도 해야 하고, 밥도 좀 해먹고… 편의를 개선하다보니, 면적이 좁을 뿐 집이나 다름없이 멋지게 만든 농막도 많이 생겼다. 이렇게 해놓고 잠을 안 잔다고? 주말에 집에서 1시간 이상 차로 이동해 농사짓다가 낮에는 농막에서 쉬고 밤엔 근처 모텔에서 자야 하나? 낮에 자는 건 괜찮고 밤에 자는 건 안 되나? 따지고 들면 결론이 나지 않는다.
간혹 주객이 전도돼 농사는 뒷전이고 우르르 몰려가 고성방가에 이웃에 폐를 끼치는 사람들이 있어 지역 주민의 원성을 사고, 민원으로 행정처분을 받기도 한다. 또 아예 전원주택 단지처럼 농막 단지를 조성해 세컨드 하우스로 분양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논외로 치고, 내가 생각하는 답은 이렇다. ‘적당히 하자.’ 지방 소멸을 막는다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관계 인구’로 조용히 스며들어 어울리는 게 맑은 공기와 좋은 경치, 따뜻한 인심을 내주는 지역에 대한 예의인 것 같다. 그러니까 예의 있게 1박 괜찮겠지요?
글·사진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주말농장을 크게 작게 하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한겨레> 김완, 전종휘 기자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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