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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에게 한없이 가벼웠던 ‘국가’

역사사회학자 이진아의 〈네이션과 무용〉
등록 2021-12-25 13:51 수정 2021-12-26 00:05
이진아 지음, 도서출판 선인 펴냄

이진아 지음, 도서출판 선인 펴냄

“헉!” 얼마 전 엠넷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검색하다 깜짝 놀랐다. 같은 방송사 보이그룹 오디션 프로에서 우승한 남자 아이돌이 포스터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출연하는 여성 댄서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여유롭게 팔짱을 낀 자세는 무언가를 평가하는 모습이기에 더욱 불편할 수밖에 없다.

여성, 그중에서도 춤추는 여성에겐 언제나 남성의 시선이 따라붙는다. 때로는 성적 흥분을, 때로는 예술적 영감을, 때로는 민족적 자긍심을 기대하며 남성들은 ‘무희’의 몸짓을 재단하고 또 탐닉해왔다. 하지만 이런 기대를 이용함으로써, 여성은 오히려 남성의 시선을 훌쩍 뛰어넘어 아무도 예상치 못한 영역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캣파이트’(여성끼리의 싸움)를 기대했을 제작진의 의도를 보란 듯이 무시하고 자신들의 진짜 이야기를 대중에게 처음으로 보여준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댄서들처럼 말이다.

역사사회학자 이진아의 <네이션과 무용>은 한국무용사의 신화인 최승희로부터 이러한 전유의 가능성을 엿본다. 우수한 성적으로 숙명여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무용을 배운 ‘모던 걸’이었지만, 최승희를 세상에 알린 건 서양무용이 아닌 조선무용이었다. 1933년 얼큰하게 술에 취해 건들대며 팔자걸음을 걷는 조선의 한량을 묘사한 독무 <에헤라 노아라>를 발표하며, 최승희는 조선과 일본을 막론하고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제국 일본의 남성은 최승희의 조선무용에서 ‘근대화된’ 일본이 오래전에 잃어버린 토속성과 원시성을 발견했다. 반면 식민지 조선의 남성에게 최승희는 민족의 자부심인 동시에 일본 남성과 같은 위치에 있다는 착각을 심어주는 이중적인 존재였다.

최승희 또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최승희에게 조선무용이란 진지한 탐구와 계승의 대상이라기보다 제국의 문화장(場)에 진입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그 점에서 그는 자신을 후원하는 남성들과 다르지 않았다. 네이션(국가)을 수단으로 여기는 이러한 ‘가벼움’은 최승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줬다. 1940년대 최승희는 중국과 만주에서 전선 위문공연에 나선다. 제국의 선전에 동원된 이런 경험은, 역설적으로 최승희가 조선과 일본을 넘어서는 동양, 남성의 시선에서 벗어난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자각하는 계기가 됐다.

최승희가 중국에서 열어젖힌 작은 틈새는, 그러나 월북 이후 급격히 닫히는 듯 보였다. 새로 들어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최승희는 다시금 조선무용으로 돌아갔고, 딸 안정희와 함께 ‘조선의 어머니와 딸’을 연기했다. 하지만 동시에 최승희는 남성의 시선에서 바라본 여성이 아닌, 남성처럼 강인한 여성 혹은 아예 이상적인 남성이 됨으로써 성별을 초월한 인민으로 나아가기도 했다.

조선과 일본, 중국, 북한이라는 복수의 네이션을 넘나든 최승희의 삶에서, 지은이는 2016년 개봉한 영화 <아가씨>를 떠올린다. 히데코(김민희 분)는 이모부 코우즈키(조진웅 분)에 의해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하는 표상으로 ‘박제’된다. 하지만 음란서적을 낭독하던 히데코의 모습을 죽기 직전까지 회상한다는 점에서, 진짜 박제된 건 이들 남성이다.

최승희를 후원하던 남성들 역시 그를 일본의 딸, 조선의 누이, 북한의 어머니로 고정하려 했다. 하지만 최승희는 이들의 시선에 맞추는 듯하면서도, 어느새 다른 역할로 넘어가버리며 역으로 남성들을 고정해버렸다. 확고한 정체성을 갖기보다는 그런 정체성을 끊임없이 선택함으로써, 남성의 시선에 전적으로 순응하거나 거부하기보다는 이를 이용함으로써 주체로 거듭나는 삶. 비단 최승희나 히데코뿐 아니라, 많은 여성 예술가의 삶이 그러할 것이다.

유찬근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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