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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지극히 평범했으므로

<세계를 향한 의지>에서 보여주는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작품을 쓴 원동력
등록 2021-11-18 16:28 수정 2021-11-19 03:14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민음사 펴냄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민음사 펴냄

예나 지금이나 천재는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우월한 능력과 탁월한 성취, 무엇보다 노력으로 얻을 수 없는 ‘선천적인’ 재능이란 점이 동경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 괴팍한 성격과 강한 자의식, 요절 정도만 추가하면 천재의 스테레오타입이 완성된다. 실제 많은 천재가 그랬고 말이다.

그 점에서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확실히 독특한 천재다. 자의식이 넘치기는커녕 개인적 기록이 너무나 적어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음모론이 끊이지 않는다. 착실하게 재산을 불려 40대 후반이라는 이른 나이에 은퇴하고 평온한 여생을 보내는 등 요절이나 궁핍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불멸의 고전이 되어 지금까지 전세계 사람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스티븐 그린블랫의 셰익스피어 전기 <세계를 향한 의지>(Will in the World)는 이런 평범함이야말로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작품을 써내는 원동력이 됐다고 이야기한다. 동료이자 경쟁자이던 크리스토퍼 말로나 로버트 그린이 방탕하고 오만한 ‘전형적인’ 천재였다면, 셰익스피어는 생계형 작가 혹은 전문 직업인에 가까웠다. 시골 중산층의 아들로 태어나 무료 라틴어 문법학교를 다닌 게 학력의 전부였고, 동료들에게 남의 깃털로 치장한 이솝우화 속 까마귀일 뿐이라는 모욕을 받기도 했다. 물론 그가 영리한 까마귀이긴 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가 가져다쓴 깃털은 ‘옥스브리지’(옥스퍼드대학+케임브리지대학) 출신 천재들이 아닌, 그를 둘러싼 세계로부터 뽑아온 것들이었다. 세계야말로 그의 무기였던 셈이다.

마치 먹성 좋은 애벌레처럼, 셰익스피어는 자기 앞에 펼쳐진 세계를 부지런히 소화해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가톨릭과 국교회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종교갈등, 여전히 민중을 지배하던 미신적인 축제와 의례, 유럽 최대 도시로 성장하던 런던의 역동적인 에너지 등 엘리자베스 시대의 영국이 그의 작품에 오롯이 담겨 있었다. 집안이 몰락한 뒤 지역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한 경험이나 그리 행복하지 못했던 결혼생활, 유일한 아들 햄넷의 죽음 등 개인적 경험 역시 여실히 녹여냈다. 한 나라의 여왕에서 하찮은 견습 직공에 이르기까지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즐길 수 있었던 건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셰익스피어가 세계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여왕의 유대계 주치의 로드리고 로페스가 정쟁에 휘말려 런던탑 앞에서 처형당할 때 대중이 그에게 보냈던 잔인한 야유와 웃음을 기억하고 있었고, 이를 <베니스의 상인>에서 그대로 돌려줬다. 연극에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제 꾀에 넘어가 재산을 잃고 강제로 개종당하지만, 관객은 무대에 울려 퍼지는 비웃음 소리에 묘한 불쾌감을 느끼며 오히려 그에게 연민을 갖는다. 책의 중의적인 원제가 보여주듯 셰익스피어는 세계 속에 있었던 동시에 세계를 향해 자신의 의지를 내보이기도 했던 것이다.

예리한 독자라면 본문만 600쪽이 훨씬 넘는 이 두꺼운 책이 대부분 “~수도 있다”나 “~지도 모른다”와 같은 추측성 문장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에 눈길이 갈지도 모른다. 실제로 책을 읽다보면 셰익스피어가 세계를 통해 작품을 창조한 게 아니라, 지은이인 그린블랫이 거꾸로 셰익스피어 작품을 통해 세계를 창조한 건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과 지은이의 해석이 너무나 아름답게 교차한다는 점이야말로 이 책의 매력이라고 한다면, 지나치게 나이브한 생각일까?

유찬근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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