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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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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이름에게

부피와 시간이 압도하는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를 지은 강호의 식물 고수들
등록 2021-09-11 11:14 수정 2021-09-14 03:07
식물 책으로 가득한 조민제 변호사의 방에 모인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 저자들. 왼쪽부터 지용주, 조민제, 최동기.

식물 책으로 가득한 조민제 변호사의 방에 모인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 저자들. 왼쪽부터 지용주, 조민제, 최동기.

“아이고 이거 들키면 안 되는데요.” 한 번만 나온 게 아니다. 들키면 안 되는 게 너무 많다. 책값을 들키면 안 되고 일하는 동료가 알면 안 된다. 가족에게 반절로 책값을 깎아 불렀고, 옆자리를 누가 비우면 딴짓을 하기도 했다.

한 줄 한 줄이 인고의 여정

한 페이지 32줄, 1928쪽, 출전 원전 298종, 참고 문헌으로 나열된 책 1007종, 가격 12만8천원. 숫자가 먼저 압도하는 이 책은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심플라이프 펴냄). 가만히 놔뒀으면 더 큰일 날 뻔했다. “원래 2천 페이지가 넘었는데 출판사에서 그렇게 되면 책이 찢어진다고 해서 주로 생태 해설과 참고 문헌을 뺐어요.”(최동기) 저자들의 면면도 심상찮다. 조민제는 변호사, 최동기는 가전·전기전자 제품 유통사 대표, 최성호는 아시아산림협력기구 국제협력 사업 담당 전문관, 심미영은 페이스북 동아리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운영위원, 지용주는 조경업 종사자, 이웅은 식생과 식물상 조사자. 30대 이웅씨 외에 식물 이름 유래를 알기 위해 고서적을 뒤적거릴 만한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2021년 8월28일 조민제, 최동기, 지용주 세 저자를 경기도 성남시에서 만났다(방역수칙 준수를 위해 3인이 나왔다).

숫자 다음으로 시간이라는 또 다른 숫자가 보인다. 준비하는 데 5년6개월, 편집 과정에 3년이 걸렸다. 원래 저자들은 강호의 식물계에서 꽤 알려진 고수들로, 조민제 변호사의 “<조선식물향명집>을 따라 식물 이름의 유래를 정리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덥석 물었다.

2012년 공동으로 책을 쓰는 기능이 있는 네이버 카페를 열었다. 부제로도 적힌 <조선식물향명집>(이하 향명집)은 1937년 일제강점기 정태현, 도봉섭, 이덕봉, 이휘재 식물학자 4명이 근대 생물학의 분류법에 따라 식물을 나누고 이름을 조사한 책이다. 이름은 학명, 일본명, 조선명 순으로 1944종을 정리했다. ‘Selaginerlla involbvens Spring イハヒバ 卷栢·長生草·萬年松 Buchóson 부처손’ 식으로 177쪽에 이름만이 설명 없이 나열된다(名集).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는 이 향명집 표제대로 따라가되, 표제별로 자세하게 풀어썼다. 177쪽이 1928쪽으로 변신한 것이다.

“卷栢(향약집성방, 1433), 卷栢(세종실록지리지, 1454), 卷栢/부텨손풀플(구급간이방언해, 1489), 卷栢/부텨손(동의보감, 1631)” 식으로 원전에서 표제의 식물을 일일이 확인한다. 부처손 항목에는 14개 원전이 있다.

그러니 한 줄 한 줄이 인고다. 표제어 밑 학명의 정리는 이런 식이다. “향명집이 막 근대 식물학이 전래된 시기에 저술됐기에 여러 가지를 참조”(최동기)했는데, 서울대학교 식물분류학연구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 일본 Y리스트, 중국식물지, 영국왕립식물원(Kew)의 자료를 찾고, 앵글러, 크론퀴스트, 에이피지(APG· Angiosperm Phylogeny Group) 분류체계를 두루 살폈다. 국내 식물 분류학자들의 식물도감도 참조해 크로스체크했다. 일본명, 중국명도 정리하고 참고에 북한말도 찾아 넣었다.

“회사일 아니면 필수적인 거 외에는 한눈을 못 판다. 공동작업이니 상대방 눈치가 보이게 된다. 자신이 일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작업을 못하니까 끌려가게 되더라. 오히려 그게 추진력이 됐다.”(최동기) 도저히 시간을 못 내어 미안한 마음에 저자에서 빠지겠다며 스스로 손들고 나간 사람이 3~4명 된다. “그래서 전공이나 학식 정도 상관없이 전력투구해야 하는 사람만 남게 됐다.”(최동기) 직장-집-직장-집의 생활이 이어졌다. 서로 인터넷으로 연결된 채 집에서 꼼짝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밤 10시쯤 퇴근해서 새벽 2시까지 규칙적으로 했다. 골프가 취미였는데 쳐본 적이 없다.”(조민제) “주말에 다른 일정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지용주) “기존 돌아다니는 자료도 있으니까, 원래는 길어야 1년 정도면 끝날 줄 알았다.”(조민제) 하지만 “자료가 자료를 물고 와서 끝이 없이 이어졌다.”(최동기) 그렇게 6년이다.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

8월15일 광복절 휴일이 인쇄일인 이유

문헌 비교가 일이기에 책이 경쟁력이었다. “책값만 해도 차 한 대 값이다. 자전류, 물명류, 일제강점기 사전류 등을 구비하려 애썼다.”(조민제) 간송미술관 훈민정음도 구해서 살폈다. “딱 19종 식물 이름이 나오더라.”(조민제) 1970년대 <한국문화사대계>에 식물 이름이 나올 것 같아 한 질을 사서 훑어보았는데 참조할 만한 식물 이름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1980년대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를 또 훑어보았지만 역시 마찬가지로 식물 이름은 거의 없었다. “문화사 등에서 식물 이름을 정리하는 일이 거의 없다. 식물학자를 참여시키지 않았더라.” 최동기는 한 권이 웬만한 직장인 월급인 네 권짜리 책 세트를 회사와 집에 각각 두었다. “책이 무거워서 들고 다닐 수가 없”어서다. 작업 초기에 표준국어대사전, 이희승 사전, 조선어사전, 북한어사전까지 국어사전을 다 구비했다. 뒤에 알고 보니 인터넷사이트가 훌륭하게 구축되어 있어서 필요가 없었다. “사전 등을 훑어본 결과 사전들이 향명집 영향을 받아 사전을 정리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지금은 절판된 이우철의 <한국식물명고>가 중고 시장에 나오자 저자들끼리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향명집의 이름 기재는 ‘사정’(査定·조사해서 정함) 원칙이었다. 향명집의 177쪽 이름만 나열된 책 뒤의 분주함은, 조선어학회 기관지 <한글>에 투고한 ‘조선산 식물의 조선명고’라는 글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글은 국화과 139종의 식물명을 모은 과정의 기록이다. 흡사 영화 <말모이> 장면과 비슷하다. 영화에서 사전 편찬자들은 팔도의 인물들을 한자리에 모은 뒤 ‘가위’ ‘고추장’을 보여주며 지방말들을 수집한다. 함께 모여 무엇을 표준말로 할지에도 열띤 토론이 벌어진다. 비슷하게 향명집에서도 지방명을 수집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이후 표본 대조를 통해 종을 확인했다. 비슷한 빈도로 쓰이는 경우 괄호로 병기하기도 했고 표본 확인이 완벽하지 않은 경우 생략했다. 그래서 당시 생물학적으로 확인된 것보다 적은 1944종만 기록됐다.

보통 휴일을 인쇄일로 하지 않는데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는 인쇄일이 8월15일 광복절이다. 애초에 책의 집필 의도가 향명집의 명예회복에 있다. 일부에서는 제1저자인 정태현 선생이 일제강점기 공무원이었고 일본 식물학자의 보조를 해가며 학문을 익혔다, 일본명이 먼저 나온다, 일제강점기 합법적 출판물이라는 점 등을 들어 ‘수탈에 부응하기 위’한 일제의 부역이라며 향명집을 한쪽으로 밀어놓는다. 저자들은 향명집에 오류와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부역이라기보다는 민족운동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향명집은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맞춰 식물명을 정하는 등 조선어학회의 노력과 발을 맞추었다. “동식물의 각 지방 명칭을 조사해 통일시키고 장차는 지금까지 조선말로 이름이 없는 동식물에는 따로 조선 이름을 제정”한다는 것이 향명집 저자들이 소속된 조선박물연구회의 창립 이유였다.

저자들은 옛 문헌을 참조해 과감한 추론도 전개한다. 당연히 저자들은 치열하게 논쟁했고, 그것은 90년 전 조선박물연구회와 비슷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저자들은 옛 문헌을 참조해 과감한 추론도 전개한다. 당연히 저자들은 치열하게 논쟁했고, 그것은 90년 전 조선박물연구회와 비슷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가시 박힌 엄나무로 아이를 훈육한다?

이런 주장도 있다. 향명집이 선택한 개불알꽃, 복수초, 광대나물, 벼룩나물, 벼룩이자리, 호랑버들, 쑥부쟁이, 망초, 담배풀, 곰취, 제비꽃 등을 일본 영향을 받은 말이니 바꿔야 한다. 예를 들어 광대나물 같은 경우 나물로 먹었다는 기록이 없다며 일본명을 번역했다고 한다. 저자들은 “<조선의 구황식물>, <조선산야생식용식물> 등에서 구황식물로 이용”했다고 근거를 대 광대나물이 고유의 말이라고 한다. 망초, 개불알꽃 등이 비루한 말, 일본식 명명법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한다. “망초는 망국의 서러움을 표현한 말”이며, 상스러운 게 일본식이라는 것도 할미꽃이나 닭의장풀 등의 옛 이름에서 보듯 동의할 수 없다. 그 주장은 받아들여져 향명집에서 개불알꽃으로 기록한 것을 국가표준식물목록, <원색한국식물도감> 등에서는 복주머니란으로 바꿔 추천한다. 복수초라는 말은 일본말의 번역이지만, 이를 얼음새기꽃으로 바꾸자는 주장 역시 찬성하지 않는다. 얼음을 뚫고 나오는 꽃을 즐긴 것 자체가 일본 문화의 흔적이라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모든 풀이 이름이 있었던 것처럼 여기고, 우리말 이름이 있던 풀들이 일본말의 번역어로 바뀌었다는 식으로 주장한다”고 말한다. “농사에 이득이 없는 베어야 하는 풀은 모두 그냥 잡초였다. 약용이나 식용 또는 종교용 등으로 쓸모가 있을 때야 식물은 이름을 갖는다.”(조민제) 이름이 없는 경우 번역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향명집 방식으로 식물 이름을 찾아가는 것이 우리의 방법론”(조민제)이라고 말한다. 이런 방법론으로 저자들은 과감한 주장도 전개한다. 엄나무 이름의 유래를, 뾰족하게 난 가시를 아이를 엄하게 키우는 데 사용했다고 하는 종래의 설명이 있다. 저자들은 “엄나무로 아이 때리면 큰일 난다”며 유래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저자들은 문헌 비교를 통해 ‘엄’자를 여러 한자로 표기하고 ‘아목’(牙木)으로 부른 경우도 있는 것에 착안했다. 새싹을 뜻하는 ‘움’의 옛말이 ‘엄’인데 새싹을 먹는 식물이라는 뜻이 아닐까 추론한다. 저자들은 “이것이 모두 맞는다는 게 아니라 설득력 있게 추정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추론에 대해 “충분한 토론과 새로운 반론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의외의 원조도 있었다. 책에 들어간 사진은 감수자인 이우철 박사가 제공했다. 정태현 채집본 중 한국에 보존된 것은 6·25전쟁으로 소실됐다. 이우철 박사는 일본 도쿄대학 근무 시절 기증된 채집본을 일일이 슬라이드 사진을 찍었다. 이우철 박사를 만나니 그가 슬라이드 사진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했다. 글자만으로 빡빡한 책에 대한 고민이 한꺼번에 해결됐다.

3년 동안 100여 번 모였던 90년 전 식물학자

이유미 국립세종수목원 원장은 이 책을 두고 “감히 위대한 시작이라 말하고 싶다”고 했다. “조선박물연구회 식물부 소속의 연구자들은 (…) 장소를 옮겨가며 3년 동안 100여 회 함께 만든 작품이 <조선식물향명집>이다.”(<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 6명의 저자는 어쩌면 90년 전의 열정을 능가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들은 두꺼운 책을 두고 여전히 겸손하다. 책의 머리말은 이렇게 끝난다. “<조선식물향명집>과 그 탄생 과정에 깃든 노고에 감사한 마음을 새삼 새기며.” 이것이 아마추어 정신이다.

글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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