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송은 제공
(지난 글 요약: 1300평의 언 밭을 여섯 명이서 호미 들고 일구고 있는데 동네 어르신이 트랙터를 몰고 나타나 밭을 갈아주겠다고 했다.)
기계의 힘은 대단했다. 트랙터는 딱딱하게 굳은 땅을 파헤치며 전진했다. 역시 농사는 장비가 좋아야 하는구나. 남편과 나와 언니는 머리를 맞대고 뭘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궁리하다가 아는 방법이 돈밖에 없어서 각자 지갑을 털어 나온 현금을 모아 10만원을 드렸다. 순식간에 밭을 다 간 어르신은 우리에게 어떻게 농사지을 건지 물었다. 200평 정도에만 감자를 심어보려 한다고 하니, 그럼 유기질과 계분을 사다가 뿌리라고 했다. 비료 뿌린 곳을 표시해두면 다음번에 오기 전까지 이랑도 만들어주겠다 하셨다.
농협경제사무소는 토요일에도 문을 열었다. 비료를 사겠다고 하니 직원이 평수와 작물 종류를 묻고 친절히 필요한 양을 알려줬다. 20㎏짜리 10여 포대를 승용차 트렁크에 실으니 차가 묵직해졌다. 이제 다음 고비는 비료를 옮기는 일. 우리 밭은 앞서 말했다시피 길이 없는 맹지다. 차가 진입할 수 없는 오솔길을 50m쯤 걸어간 다음, 남의 밭을 하나 지나야 들어갈 수 있다. 등짐을 지는 수밖에 없었다. 20ℓ짜리 생수통을 가는 여자라고 자부하는 나였지만, 등에 진 비료 포대는 걸음을 옮길수록 무거워졌다. 장비가 없으면 힘이라도 좋아야 하는 게 농사인가. 세 포대 옮기고 나니 등이 쪼개지는 느낌이었다. 그다음에도 쉴 수가 없다. 이번엔 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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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 전에 200평은 어디부터 어디까지냐? 200평이면 200 곱하기 3.3 하면 660㎡. 그럼 가로세로 몇m지? 여섯 개의 머리를 모아도 직렬연결이 아니고 병렬연결이라 성능이 좋아지지 않는다. 집단지성은커녕 헷갈리기만 한다. 힘도 장비도 없으면 머리라도 좋을 것이지. 휴대전화 계산기를 들고 짐작되는 숫자를 여러 번 넣어 곱해보니 가로 22m에 세로 30m면 되겠다. 줄자도 없어 대충 한 걸음에 1m라 치고 22걸음, 30걸음 걸어 꼭짓점마다 막대기를 꽂아 표시했다.
비료를 어찌저찌 뿌리고 동네 막국숫집에 갔다. 시원하게 한 사발 하고 둘러보니 ‘귀농 전원주택지 상담’이란 전단과 함께 전화번호가 붙어 있다. 알고 보니 식당은 마을 이장님 사모님이 운영하는 곳이고, 귀농 상담 전화번호는 이장님 것이었다. 펜션에 매번 묵는 게 비싸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해서 혹시 빈집이 있을까 물어보니, 마침 이장님이 외국인 일꾼들 빌려줄까 싶어 지어놓은 집이 비어 있다고 한다. 내친김에 바로 집 구경을 갔다. 막국숫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였다. 부엌을 겸한 거실 하나, 방 하나, 화장실 하나. 앞뒤로 마당이 있고 주차 공간도 넉넉하다. 이장님이 월 30만원 달라는 걸 25만원으로 깎았는데 바로 오케이 하셨다.
아, 뭐지? 진부 사람들 왜 이렇게 친절하지? 장비도 힘도 머리도 없이 농사에 뛰어든 우리인데, 인복은 있는 건가? 뭐가 이리 훈훈해. 그러나 이것은 2주차 농사꾼의 섣부른 판단이었으니…. (계속)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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