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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같은 현실을

등록 2021-07-03 23:36 수정 2021-07-04 11:17
tvN 제공

tvN 제공

편견을 깨부쉈다. 1회 첫 장면, 대저택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전개는 뻔하지 않은가. 재벌가의 권력 암투가 소재인 흔한 막장 드라마. 결국 범인이 누구이냐에 이목이 집중되리라는 상투적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6월27일 종영한 tvN 드라마 <마인> 얘기다.

극중 주요 인물은 하나같이 사회적 편견 안에 있다. 재벌가에서 나고 자라, 재벌가 장남과 혼인한 정서현(김서형)은 레즈비언이다. 국제영화제에서 상 받을 정도로 잘나가는 배우 서희수(이보영)는 ‘새엄마’다. 이혜진(옥자연)은 홀로 아들을 낳은 싱글맘이다. 그리고 엠마 수녀(예수정)는 요정의 예인 출신이다. 낙인찍힌 여성들은 각자의 소중한 것인 ‘마인(mine)’을 지키기 위해 세상의 편견에 정면으로 마주한다.

효원가가 ‘마인’인 서현, 낳지 않은 아들이 ‘마인’인 희수를 공격하는 지점은,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안다. 성정체성 그리고 핏줄. 소수자를 일정한 ‘프레임’에 가두는 방식으로 ‘정상성’을 확보하는 다수의 폭력은 너무 익숙해서 상투적이기까지 하니까. 서현의 연인으로 출연한 배우의 남편은 “한 사람이 그 상황에 고뇌를 겪다가 결국 정상으로 돌아가게 되는 내용이다. 저희 부부는 동성애를 반대한다”며 ‘정상성’ ‘찬반 여부’를 언급해 ‘다 된’ 드라마에 재를 뿌리기도 했다. 아동학대 가해자의 72.3%가 친부모(‘아동학대 주요 통계’, 보건복지부, 2019)라도, 이슈화되면 가장 먼저 소환되는 이가 ‘새엄마’인 게 현실이다.

편견에 편견에 편견을 더해서 드라마는 편견을 깬 주인공들이 ‘마인’을 지키는 것으로 끝났지만 현실은 여전히 ‘편견적’이다. 제20대 대선 후보로 나선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6월28일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여성이라고 꽃처럼 대접받기 원한다면 항상 여자는 장식일 수밖에 없다”고 말해 ‘반페미니즘’ 논란에 불을 붙였다. ‘꽃처럼 대접’ ‘기회 공정’ ‘특혜’를 언급한 추 전 장관의 발언은 페미니즘과 공정 담론을 연결한 것으로, 최근 20대 남성들이 주장하는 소모적 논쟁의 연장선에 불과했다.

찜찜한 구석은 또 있다. “여자니까 먼저 내빼는 게 아니고 (중략) 사적 사정이 절박하더라도 공적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강조해왔다.” 추 전 장관의 발언은 ‘꾀를 부리는 여성’ ‘내빼는 여성’ ‘여성은 가정일을 우선순위로 둬 같이 일하기 힘들다’는 사회적 편견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맞벌이 가정조차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3시간7분으로 남성(54분)보다 3배 이상 많은 현실(‘2020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은 지워졌다. 언론도 편견을 거들었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와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추 전 장관의 발언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지적하자, 여성 정치인이 ‘추 전 장관 때리기’에 나섰다고 보도한다. 전형적인 ‘여적여’(여성의 적은 여성) 프레임이다. 편견은 여전히 편견을 먹고 큰다.

논란이 일자 추 전 장관은 “원래의 페미니즘은 이렇지(남성 배제적 페미의 극단화) 않다”며 ‘진짜’의 자격을 물었다. 이준석의 ‘가짜 페미니즘’ 발언과 비슷한 결이다. 하지만 현재 일어나는 젠더 갈등은 추 전 장관이 말하는 ‘원래의 페미니즘’이 아닌 ‘가짜 페미니즘’ 때문인가, 아니면 성별에 따른 차별과 폭력에서 오는 것인가. 드라마는 여성연대를 통해 편견에 균열을 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는 수사보다 ‘드라마 같은 현실’을 기대하고 싶은 건 무리일까.

장수경 <한겨레>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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