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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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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몰랐던 검찰수사의 속살

죄수들이 쓴 공소장 <죄수와 검사>
등록 2021-05-23 13:55 수정 2021-05-24 02:20

‘공익의 대표자’를 자처하는 검찰이야말로 대다수 국민이 접근할 수 없는 최후의 성역이다. 공익을 배반한 사익 추구의 실태는 더욱 깜깜이다.

심인보·김경래 기자가 쓴 <죄수와 검사>(뉴스타파 펴냄)는 ‘대한민국 검찰’의 추악한 민낯을 치밀한 취재와 검증으로 폭로한 책이다. 2019년 8월부터 2020년 11월까지 세 시즌에 걸쳐 방영한 연속보도를 단행본으로 엮었다. 해당 보도는 유튜브 누적 조회 수 1020만 회, 댓글 3만4천 개를 기록할 만큼 폭발적 반향을 낳았다. 이번 책은 기존 보도의 전체 서사를 재구성하고 모든 문장을 새로 썼다. 보도하지 못한 민감한 내용과 뒷이야기도 담았다.

검찰 수사 과정은 주체(검사)와 객체(피의자)가 아니면 내막을 알기 힘든 ‘블랙박스’다. 언론은 검찰이 흘리는 정보에 의존하기 십상이다. 지은이들은 “블랙박스를 들여다보기 위해 죄수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과장과 거짓을 의심하며 검증했다. 그 과정에서 주체와 객체가 바뀌고 “죄수들이 써내려간, 검사들에 대한 공소장”(서문)이 탄생했다. 전 검사 박수종과 금융인 유준원이 결탁해 주가조작과 기업사냥으로 막대한 이득을 얻은 상상인저축은행 사건을 보자. 금융감독원은 내부정보 거래를 의심하고 수사를 의뢰했지만 검찰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되레 유준원의 혐의를 벗겨주는 ‘내사 처분 결과 증명서’를 그가 민원을 낸 지 단 하루 만에 발급해줬다. 취재팀은 박수종의 휴대전화 통화와 문자메시지 3만2천 건을 일일이 대조해 제 식구 감싸기를 폭로했다. 두 범죄자는 구속됐지만 각각 수십 명의 ‘전관’ 변호인단을 선임해 6개월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실적과 출세에 목마른 “검찰의 썩은 꽃” 특수부 검사와, 범죄 수법과 정보에 밝은 ‘브로커 죄수’의 거래는 더 가관이다. 죄수는 검사실에 살다시피 하며 온갖 정보를 물어다주고 수감 중 편의를 받는다. “감옥에 있는 죄수가, 특수부 검사실에서, 검사실 전화로, 다른 죄수의 형집행정지 로비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아보는”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브로커 변호사는 죄수들끼리 3억원이 오간 거래의 집사 노릇을 했다.

첫 여성 총리(노무현 정부) 출신으로 유력한 대선 주자이던 한명숙이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뇌물 사건으로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지은이들은 ‘뇌물 공여자’ 한만호(2018년 사망)가 증언을 뒤집은 비망록을 입수해 보도했다. 검찰은 한만호를 집요하고 비열하게 압박하고 회유하며 ‘사실’을 조작(모해위증교사)했다. “검찰은 단추 하나로 양복도 만들고 바바리도 만들고 코트도 만들었다.”(한만호) 보도 이후 대검 감찰이 시작됐다. 결과는? 책의 에필로그 제목처럼 “그리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지은이들은 “사건 일지는 여기서 마무리되지만 (…) 우리의 공소장은 현재진행형”이라고 썼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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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 시대의 자본주의

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 박세연 옮김, 열린책들 펴냄, 2만3천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미국식 시장경제를 ‘근본’부터 비판한다. 부의 창조는 착취로도 이뤄지는데, 현재 많은 이가 ‘부의 추출’을 성장으로 착각하고 있다. 기업은 정부가 나서기 전까지 어떤 노력도 하지 않기에, 사회의 가장 중요한 공공재는 바로 효율적이고 공정한 정부다.



우울의 바다에 구명보트 띄우는 법

오렌지나무 지음, 혜다 펴냄, 1만4800원
우울증 20년, 은둔형 외톨이 생활 7년, 자살 시도 경력 10년 당사자인 오렌지나무(필명)가 병원의 도움과 약 처방 없이 혼자 힘으로 우울증을 이겨낸 눈물겨운 투쟁의 기록. 자신을 사랑하고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게 최선의 치료라고 말한다. 설령 상처를 주고받더라도 주변 사람이 곧 구명보트다.




인간은 왜 잔인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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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낯선 이들과 공감과 협력을 할 뿐 아니라 악행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동물이다. 특히 집단생활에서 타인을 멸시하고 학대하는 ‘대상화’ 행동을 보이는 이유를 미국 심리학자가 학술적으로 분석했다. 인간이 지닌 선악의 양면성은 곧 인간의 본질적 한계와 가능성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페니스, 그 진화와 신화

에밀리 윌링엄 지음, 이한음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 2만2천원
미국 여성 과학자가 동물 수컷 생식기의 발생과 진화부터 짝짓기 경쟁, 오늘날 왜곡된 상징권력과 젠더 담론까지 전 과정과 의미를 설명한다. 자칫 민망하게 여길 소재가 생물학, 해부학, 문화적 기호(코드) 등 관련 분야의 치밀한 연구와 설문조사에 힘입어 흥미롭고 진지한 인문·과학 융합 교양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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