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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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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은 왜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됐을까

노동운동 출신 김창우의 <애도하지 마라 조직하라>
등록 2020-03-24 10:23 수정 2020-05-02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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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에 백만 조합원 시대가 열렸다는 소식을 전하는 기사는 “강성투쟁 일변도에서 벗어나 제1노조 위상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19년 12월25일치)고 썼다. 제1노조의 위상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이란 대체 무엇일까.

보수언론이 질색하는 민주노총의 총파업이 국민적 지지를 받을 때가 있었다. 1996년 12월26일 새벽 신한국당이 단독으로 국회를 열어 노동법을 날치기 통과시켰을 때다. “6월 항쟁 당시의 초기 양상이 나타난 셈”( 1997년 1월13일치)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국민이 지지하고 시민사회가 연대한 총파업을 민주노총은 어떻게 활용했을까. 정치권을 압박해 개악된 노동법을 무효화했을까. 민주노총은 1월17일 돌연 총파업 중단을 선언했다. 김수환 추기경을 통해 청와대와 협상한 결과였다. 3월8일 민주노총 합법화 말고는 개악안과 크게 달라진 게 없는 노동법 재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민주노총은 왜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었을까. 총파업 같은 과격한 투쟁을 일삼다가 그리된 것일까. (회화나무)의 저자 김창우는 “역사적 진실은 오히려 이와 반대”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1996~98년 주요 노동운동 세력의 내부 자료를 토대로 투쟁보다 협상을, 현장 조직화보다 국회 로비에 힘을 쏟았던 민주노총의 ‘오판과 실기의 역사’를 복원한다.

1996~98년 ‘두 번의 결정적인 계급투쟁’이 벌어졌다. 경제권력이 늘 우위에 있던 평시와 달리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부패한 정치·경제 권력이 지목되면서 역전의 기회가 마련됐다는 뜻이다. 첫째는 앞에서 말한 ‘노동법 개악 국면’이었고, 둘째는 김대중 정부 출범 뒤 있었던 ‘노사정위 참여 국면’이었다. 민주노총은 두 번 다 졌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일까. 저자는 당시 민주노총 지도부의 오판은 국민 여론을 의식했다기보다 온건타협적인 운동노선에서 비롯됐음을 새롭게 밝혀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총파업을 해야 한다는 현장의 요구를 무시한 채 노사정위에 들어가 “노동계가 요구한 대기업 총수 퇴진, 국제통화기금(IMF) 재협상, 경제청문회, 경제 파탄 책임자 규명과 처벌은 아예 제외된 반면… 정리해고제의 도입을 기정사실화”한 합의문에 서명한다. 내부의 비판에 대해 당시 배석범 위원장 직무대행은 “당선자가… 민주노총에서 추천한 사람들 중에서 노동부 장관으로 앉히고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답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뒤 첫 조각 때 김영삼 정부에서 임명된 경제관료 출신 이기호 노동부 장관을 유임시켰다.

국민총소득(GNI)에서 기업소득 비중은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3.9%에서 2017년 24.5%로 거의 두 배 늘었는데, 같은 시기 가계소득 비중은 72.8%에서 61.3%로 줄었다. 민주노총의 실기가 가져온 결과라고 하면 너무 가혹할까. 저자는 과오를 들추기 위해, 과거를 애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제1노조의 위상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또다시 ‘계급투쟁의 적기’이기 때문이다.


진명선 팀장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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