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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비걸’ 심정현이 구독자 50만 명일 때 유튜버 그만둔 이유

구독자 50만 명일 때 유튜버를 그만둔 ‘밤비걸’ 심정현
등록 2019-11-28 02:00 수정 2020-05-02 19:29
유튜브를 2년 쉰 뒤 올해 초 다시 ‘밤비걸’로 돌아온 심정현씨는 뷰티 대신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나누는 라이프스타일을 주제로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다. 밤비걸 유튜브 영상 갈무리

유튜브를 2년 쉰 뒤 올해 초 다시 ‘밤비걸’로 돌아온 심정현씨는 뷰티 대신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나누는 라이프스타일을 주제로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다. 밤비걸 유튜브 영상 갈무리

대한민국 남녀노소 모두가 달려간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라는 꿈을 향해. 6살 꼬마 보람이가 ‘먹방’으로 서울 강남 빌딩을 사고, 70대 박막례 할머니가 유튜브 최고경영자(CEO)에 이어 구글 CEO까지 만나고 광고까지 찍었다. 유튜브는, 학력·자본·경력 없이도 한 방으로 인생역전이 가능한 이 시대 최고의 ‘로또’다. 그런데 여기 50만 명이라는 ‘꿈의 구독자 수’를 달성하고 유튜브를 그만둔 이가 있다. 1세대 유튜브 크리에이터인 심정현(27·사진)씨는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밤비걸’이라는 뷰티 유튜브 운영 5년 만에 50만 구독자를 돌파했다. 어느 때보다 행복의 축배를 들어야 할 때 그는 돌연 유튜브를 그만두었다. “영상 속 나는 분명히 나였지만 내가 아니었다”며 “모두가 크리에이터로 뛰어드는 지금, 나는 이곳을 벗어나야만 했다”고 말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년간 쉬면서 학업과 상담으로 자신을 돌아본 뒤 올해 초 다시 유튜브를 시작한 그는, 최근 책 (위즈덤하우스 펴냄)에서 유튜버로서 성공 이면에 그늘졌던 마음을 털어놓았다. 성공할수록 ‘진짜 나’는 실종되고, 사랑받으려 애쓸수록 더 외로워졌다는 심정현씨는, 치열한 고민과 사색 끝에 구독자 수와 조회 수 대신 자신으로 사는 삶을 택했다. 그는 “요즘 조회 수 나오는 걸 보면, 예전 같으면 머리 박고 죽으려 했을 것”이라면서도 “확실한 건, 이전보다 행복하다”고 웃었다. 그와 인터뷰하는 내내 “진짜 인생에 눈뜨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어느 책 구절이 계속 떠올랐다.

악플에 댓글을 달자 돌아온 것

처음에 어떻게 유튜브를 시작하게 됐나.
대학 시절 쇼호스트가 꿈이었다. 파워블로거가 되면 쇼호스트를 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해 블로그를 시작했다. 화장에 관심이 많아 뷰티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사진 말고 영상도 올려야겠다 싶어서 영상을 제작했다. 영상을 블로그에만 올리기 아까워서 유튜브에도 올렸다. 블로그보다 유튜브가 더 잘되면서 본격적으로 유튜브를 하게 됐다.

유튜브로 많은 구독자를 확보하기 전까지, 이게 안정적 직업이 될 수 있을지 불안했을 것 같다.
어머니도 “오래 할 수 있는 일이냐” “교직을 이수했는데 선생님을 하는 게 좋지 않겠냐” 등의 말씀을 하면서 걱정하셨다. 그래서 자격증도 따고 인턴도 하고 토익 점수도 만들면서 어머니께 “취업 준비도 해놨으니, 유튜브를 딱 1년만 해보고 잘 안되면 취업하겠다”고 말하고 시작했다.

그 1년 안에 성공한 건가.
1년간 구독자 수가 5만~10만 명이 됐는데, 그렇게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미래가 보였다. 유튜브에서 받는 수익과 협찬 등으로 받는 수익을 합쳐 대기업 사원 정도의 수입이 생기면서 직업적으로 이 일을 해도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유튜브를 시작한 지 5년 만인 2017년에 구독자 수 50만 명을 달성하고 유튜브를 접었다. 왜 그랬나.
2016년부터 마음이 많이 불편해졌다. 인기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악플이 많이 생겼다. ‘화장을 잘 못한다’ ‘콘텐츠가 발전이 없다’ 정도의 문제제기는 조언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잘난 척한다’ ‘건방지다’ 등의 악플은 어린 마음에 큰 상처가 됐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래서 한번은 악플을 단 사람들에게 ‘보기 싫으면 보지 마세요’라는 댓글을 달았다가 ‘구독자 고마운지 모른다’ ‘싸가지가 없다’ 등 더 거센 악플 세례를 받았다. 악플이 힘들어서 티를 냈더니 더 많은 악플로 돌아오는 악순환이 됐다.

구독자 수가 50만 명 되면 수익은 어느 정도 되나.
유튜버에 따라, 콘텐츠 종류에 따라 워낙 수익 편차가 커서 일반화할 순 없지만, 내 경우 잘될 때는 한 달에 중형차 한 대 값을 번 적도 있다.

밤비걸과 인간 심정현의 거리

수익이 그 정도 되면 악플로 마음이 불편하다고 해서 유튜브를 접을 순 없을 거 같다.
한때 내 이름 ‘심정현’을 검색하면 ‘엄친딸’ ‘금수저’라는 단어가 연관 검색어로 뜰 정도로 인터넷 속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보고 있었다. 외국어고등학교를 나오고 유명 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그렇게 보는데, 이건 내가 생각하는 나와 상당한 괴리가 있었다. 나는 서울 구로동에서 자랐고, 부모님은 이혼하셨고, 아버지가 오랫동안 정신질환을 앓다 돌아가셨다. 금수저와는 거리가 먼 삶이었는데, 나를 그렇게 보니 이해가 안 됐다. 그런데다 인간 심정현으로 살면서 힘든 일도 매우 많은데 영상 속에선 늘 웃으며 멀쩡한 척해야 했다. 실제 나와 영상 속 나의 괴리감이 점점 커졌다.

사람들이 사랑하는 ‘밤비걸’과 인간 ‘심정현’은 너무나 거리가 있는 기분이었다. 많은 구독자가 ‘사랑해요’ ‘좋아요’라고 선플을 달아주지만, 그조차 저 사람들은 ‘밤비걸’을 좋아하는 거지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느낌이 들고, 내 진짜 모습을 알면 저들은 떠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기 싫으면 보지 말라’는 마음을 드러냈을 때 악플이 돌아왔으니까, 내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면 미움받겠구나, 사랑받으려면 내 모습을 드러내면 안 된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2017년 초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굉장히 힘들었는데, 영상 속 나는 계속 웃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인생인가 싶었다. 내가 사는 인생이 저 화면 속 웃고 있는 인생인지, 화면 밖 우울한 인생인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 이건 내 인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유튜브를 그만두게 됐다.

유튜브를 그만둔 뒤 뭘 했나.
경영대학원에 진학하고 상담을 받았다. 경영학에 관심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대학원을 진학한 이유 중 하나는 나 자신에게나 가족, 친구들에게 ‘너무 힘들어서 못 견뎌서 그만뒀다’고 설명하는 대신 ‘공부하고 싶어서 그만뒀다’고 설명하기 편한 것도 있었다. 또한 유튜버를 하며 정말 외로워서 사람들을 만나고픈 욕구도 컸다. 보통 일주일에 영상을 3개 정도 올렸다. 영상 1개 만드는 데 보통 10~15시간이 들기 때문에 일주일 내내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촬영과 편집을 무한 반복해야 한다. 집 밖에도 거의 못 나가고 혼자 매일 영상만 만들다보니 소속된 곳도 없고 굉장히 외로웠다. 인터넷 속 댓글들 말고 진짜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밤비걸이 아닌 심정현으로 알아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했다. 유튜브를 그만두던 즈음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과 이렇게 사는 게 의미 없다는 생각이 너무 들어서 상담도 받았다.

인기 유튜버라면 누구나 악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왜 유독 악플로 인한 상처가 컸을까.
악플로 힘들어하고 상담받는 유튜버가 많다. 한번은 학교 선배가 6살 남짓한 아들을 데리고 나를 찾아왔다. 아들을 주인공으로 유튜브를 제작하고 싶어 조언을 구하러 온 거였다. 초롱초롱한 눈빛을 가진 너무나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그런데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의 모습이 나를 고민스럽게 했다. 아이는 지금 그 자체로 너무나 사랑스러운데, 유튜브를 하는 순간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관심을 더 많이 받을지 고민해야 하니까 내가 괜히 슬펐다.

김진수 기자

김진수 기자

‘아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받아들이기까지

유튜브는 항상 구독자 수, 좋아요 수, 조회 수라는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결과에 직면해야 한다. 늘 ‘왜 이것밖에 조회 수가 안 나왔지?’ ‘이 영상은 왜 인기가 없지?’ 하는 의문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유튜버라면 그 사람의 성정이 어떠하든, 누구나 숫자로만 평가되는 결과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나는 완벽주의 성향이 강하다보니 스트레스가 더 컸던 거 같다. 상담을 통해 내가 나의 부족한 면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임을 알게 됐다. 뭐든 노력하면 좋은 결과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고, 결과가 좋지 못하면 내가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자신을 비난해왔다. 악플 역시 내 부족함의 문제라고, 노력하면 악플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런데 상담을 통해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고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걸, 잘 안 되는 것도 괜찮다고 받아들이게 됐다. 사실 유튜버가 아니라 다른 직업을 가졌어도, 나의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위기를 맞았을 것이다. 유튜브를 그만두고 인간 심정현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굉장히 감사하다.

유튜브를 접은 지 2년 만인 올해 초 다시 유튜브를 시작했다. 다시 시작한 이유는 뭔가.
나는 유튜브를 취미로 시작해 수익이 생기면서 직업으로 삼게 된 사례다. 처음에 좋아서 시작하다보니 ‘일’이라는 마인드도 없었고, ‘일’로도 대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영상 속 나와 실제 나를 분리하지 못했다. 내가 악플로 힘들어할 때 지인들이 “영상 속 밤비걸은 네가 아니야. 밤비걸은 일일 뿐이야. 네 인생은 따로 있고 영상 밖에서 잘 살면 돼”라고 말했지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밤비걸과 내가 다른 존재고, 그래서 영상 속 밤비걸이 진짜 내가 아닌 거짓이라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하는 생각만 들었다. 결국 그 괴리를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었는데, 상담을 받으면서 사람들이 직장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진짜 자기 모습이 100% 일치할 수도 없고, 꼭 일치할 필요도 없음을 알게 됐다. 그래서 밤비걸의 모습이 거짓도 아니고, ‘척’하는 것도 아님을 알게 됐다. 일과 삶이 어느 정도 분리되는 게 자연스럽고, 또 분리될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였다. 사람이 어떻게 일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다 보여줄 수 있겠나?

밤비걸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든 어떤 댓글을 달든 받아들이게 되었다. 예컨대 ‘아이폰’에 대해 누구나 이러쿵저러쿵 평가할 수 있지만, 그게 바로 인간 스티브 잡스에 대한 평가는 아니지 않은가? 사람들이 내 콘텐츠에 대해 평가하는 것을 ‘아,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라고 나 자신과 분리해서 받아들이면서 다시 유튜브를 할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일을 쉬면서 내가 이 일을 매우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좋아하고 또 잘했으니까 구독자 수를 50만 명까지 키울 수 있었던 거다. 힘들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니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예전 같으면 머리 박고 죽으려 했을 조회 수

다시 유튜브를 시작하면서 주제도 뷰티에서 라이프스타일로 바뀌었다.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20대 초반에는 화장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걸 주제로 했는데, 30살을 앞두니 화장이 예전만큼 재미가 없다. 나도 그렇지만 주변 친구들도 화장하고 화장품을 사고 모으는 재미가 다들 시들해졌다. 인생의 가치가 내적인 것으로 많이 바뀌다보니, 지금은 내가 사는 공간을 꾸미고, 여행하고, 맛있는 거 먹고 이런 게 좀더 많은 행복을 준다. 내게 행복을 주는 걸 나누고 싶다보니 유튜브 주제도 바뀌게 되었다.

예전 유튜브를 할 때와 다시 시작한 요즘 마음이 어떻게 다른가.
이제는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요즘 조회 수 나오는 걸 보면, 예전 같으면 머리 박고 죽으려고 했을 거다. (웃음) 요즘은 그럴 수도 있지, 잘되면 좋고 안되면 어쩔 수 없지 하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무서운 건 돈을 못 벌고 성공을 못하는 게 아니라, 몇 년 전 나로 돌아가는 거다. 나를 잃어버리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겠고 죽고 싶었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게 가장 무섭기 때문에, 지금은 나를 지키며 일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다시 유튜브를 하면서 굳게 마음먹은 건, 무엇을 하든 어떤 콘텐츠를 만들든 나 자신을 잃지 않는 거였다. 그래서 성과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한다는 것에 만족한다. 어떻게 보면 완전히 초심으로 돌아간 거다. 처음에 구독자 수 50만 명이 목표도 아니었고, 그저 좋아서 했던 그 시절로 말이다. 이전보다 확실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깨달은 행복의 정의가 있다면.
한창 유튜브를 하던 시절엔 남이 좋아할 만한 것을 찍고 그런 행동을 했다면, 지금은 나를 중심으로 인생을 새로 꾸려나가는 느낌이다. 내가 선택해서 내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행복하다. 즉, 나 자신으로 살게 됐다. 사실 요즘 겉보기에 딱히 잘되는 건 없다. 유튜브가 잘되거나 조회 수가 많지는 않지만, 모든 걸 내가 결정하고 선택해서 살아간다는 느낌이 드니 인생이 훨씬 편안하고 기분도 좋다.

남이 좋아하는 것 대신 내가 선택한 것

자신으로 산다는 것과 행복의 상관관계가 있다면.
나 자신으로 산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건 아니지만, 그렇게 살지 않으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고 본다. 행복해진다고 한들 내 인생이 아니지 않나.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비싼 옷을 입어도 내 인생으로 느껴지지 않으면 그건 결코 내 인생이 아니니까. 무엇을 해도 내가 선택한다는 느낌, 이게 내 인생 같은 느낌이 행복에 중요한 요소인 거 같다.

유튜버를 꿈꾸는 많은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면.
유튜브를 하면서 혼자 많이 있지 말라고 하고 싶다. 밖으로 나가서, 유튜브 속 내가 아닌 진짜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계속 만나라. 그렇게 함으로써 유튜브라는 일과 나 자신, 유튜브 속 나와 진짜 나를 분리하는 작업을 계속하라고 말하고 싶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93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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