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1주 만에 손익분기점을 ‘탈출’하고 2주 만에 6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완등”을 향해가는 는 조정석의 간절한 맨손과 임윤아의 뚝심 있는 달리기로 완성된 영화다. 이 영화에서 대학 산악부 출신의 현 ‘백수’ 용남(조정석)은 손에 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애인도 없고 직장도 없고 장가도 못 간 그는 누가 봐도 사회가 만들어놓은 고지에 오르는 데 실패한 인물이다. 아직도 등반 꿈을 버리지 못한 용남을 누나는 “심마니 할 거냐”며 등짝을 후려치고, 어머니 고희연에서 만난 사촌 동생은 “오빠는 하루 종일 먹고 싸는 갓난아기” 같다고 빈정댄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온몸을 소품으로 쓰는 배우</font></font>
그러나 도심 거리를 뒤덮은 유해가스 때문에 높은 곳으로 이동해야 하는 재난 상황이 닥치자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던 용남의 능력은 마침내 빛을 발한다. 그리고 취준생의 짠내와 짜증을 동시에 방출하던 고달픈 얼굴과 음성에 집중하던 배우 조정석의 연기 역시 그 시점을 중심으로 박자감 있게 달리고 나르고 구르는 육체를 향한 ‘시프트 키’(Shift key)를 누른다.
“어린 시절부터 성룡의 열성 팬”이었다는 조정석은 자신의 우상이 그랬던 것처럼 온몸을 소품으로 도구로, 때로는 무기로 쓰는 데 능한 배우다. 재난 상황에 대한 짜증과 공포는 쭈뼛거리는 몸짓과 후들거리는 다리를 타고 흐르고, 그러한데도 멈출 수 없는 무모한 용기는 건물 외벽의 간판과 조형물을 꼭 움켜쥔 간절한 손과 팔뚝, 짧은 보폭으로 최대한 재빠르게 구르는 다리로 표현된다. 맨몸에 밧줄만 묶고 건물과 건물 사이를 점프하는 아슬아슬한 도약, 위험이라는 사자에게 무력하게 잡아먹히는 대신 사자상의 이빨을 잡고 더 높은 곳을 향해 한발 한발 구체적으로 옮기는 조정석의 피, 땀, 눈물은 별다른 대사가 필요 없이 용남이라는 캐릭터의 본질을 느끼게 만든다.
용남은 아이언맨 같은 슈퍼 히어로도, 의 에단 헌트 같은 비장한 첩보요원도, 혹은 의 필립(조지프 고든레빗) 같은 예술가도 아니다. 그저 처음엔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의 생존을 위해 위험에 뛰어들었다가 나보다 약한 이들의 안전 역시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상식적인 시민일 뿐이다.
하지만 땅에 붙은 캐릭터의 현실감과 달리 클라이맥스에 다다를수록 용남이 통과해야 하는 미션은 점점 높은 곳으로, 다분히 영화적 과장을 동반한 상황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이때 조정석은 용남의 몸짓을 의도적으로 단순화한다. 마치 모험 만화나 단계를 깨나가며 “점프하는 즐거움”을 안겨주었던 2D 게임 ‘슈퍼 마리오’를 보는 것처럼 무해하고 신나는 방식으로 불가능해 보였던 미션을 수행한다. (늘 빨간 모자에 멜빵바지만 입던 슈퍼 마리오처럼 용남 역시 영화 내내 어머니 칠순잔치를 위해 빼입은 흰 셔츠를 벗지 않는다.) 그래도 캐릭터가 납작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2D의 단순화된 움직임과 움직임 사이를 입체적으로 잇는 배우 조정석의 탁월한 리듬감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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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 곡예를 볼 때 관객이 가장 집중하는 순간이 있다. 바로 앞 그네를 떠나 공중을 향해 날아간 곡예사가 맨손의 찰나를 지나 다음 그네를 정확한 타이밍으로 잡아내는 순간이다. 조정석은 이 리듬을 파악하는 본능과 구현하는 기술이 남다르게 발달한 배우다. 여전히, 그리고 아마도 영원히, 배우 조정석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영화 의 ‘납뜩이’는 그런 면에서 최적의 예가 될 것이다.
주인공 승민(이제훈)의 사랑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골목에서 불현듯 나타나는 친구 납뜩이는 이 영화의 웃음과 위로를 책임진다. 1994년을 배경으로 다소 레트로한(복고풍) 복장으로 등장하지만, 어쩐지 납뜩이는 21세기 유튜브 시대에 어울리는 친구다. 그는 사랑에 접근하는 방법을 문학적이고 추상적인 조언 대신 시청각적이고 구체적인 재현으로 보여준다. “음… 키스라는 건 말이야~ 봐봐. 자, 니 입술이랑 붙잖아~ 걔 혀, 니 혀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들어온다고. 스르르 들어오는 거야, 뱀처럼. 알지? 스네이크….” 제아무리 대사와 호흡 하나하나를 글로 옮겨 쓴다고 해도 절대 그 느낌이 전달되지 않을 만큼, 조정석은 말맛과 손맛을 총동원해 움직이고 들리는 매체에 최적화된 방식으로 영화의 재미를 강탈해버린다.
7년 전, 뮤지컬 무대를 떠나 빠르고 성공적으로 영화에 입산한 배우 조정석은 때론 난코스를 만나기도 하고, 때론 평평한 바위 위에서 한판 신나게 놀기도 했다. 부터 그리고 까지, 단순히 흥행 결과만 놓고 보았을 때 관객은 ‘익살스럽거나 짠한 조정석’을 ‘번듯하거나 슬픈 조정석’보다 더 선호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단순히 장르나 역할에 대한 호오는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이 배우가 스스로 구현할 수 있는 리듬이 허락된 영화였는지 혹은 배우 스스로가 자신의 박자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는지에 따른 결과처럼 보인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달변의 육체’가 산을 오르는 법</font></font>
영화 도입부는 ‘루트 파인딩’(길찾기)을 설명하는 대학 산악부의 풍경으로 시작된다. “미리 오를 곳을 상세히 관찰하여 등반 가능성, 오르는 방법, 난이도, 탈출 조건, 안전성, 사용할 장비 등을 분석하고 판단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기본 기술”인 동시에 “등반 도중 길을 잃거나 기상 급변으로 계획된 등로를 변경하거나 탈출하고자 할 때도 필수적”(, 이용대)이라는 이 기술은 등반뿐 아니라 일과 삶에도 적용될 방식이다.
오를 대상에 대한 상세한 관찰과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지만, 추락하지 않는 안전한 길만 선택하기보다는 가장 흥미로운 루트를 계속 찾아나가는 배우 조정석. 때론 길을 잃거나 계획이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향한 이 배우의 등반은 계속될 것이다. 그것이 를 통해 이 달변의 육체가 다시 한번 관객을 납득시킨 점 이다.
<font color="#A6CA37">이 배우의 비트</font>
<font size="4">영화 팽헌의 막춤
‘같이 추는 춤’이 만들어낸 거대한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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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석은 단독 배우로서 많은 재능을 가졌지만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더 크게 빛나는, 빛을 내주는 배우다. 영화 은 한 뼘 얼굴 안에서 운명이 결정됐다 믿었던 삶이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역사의 파도 속에 길을 잃는 이야기다. 이후 에서 각각 ‘마약왕'과 그를 쫓는 ‘검사’가 되어 반목하던 조정석과 송강호의 호흡은 사실 관상가 내경(송강호)과 그 옆을 지키는 처남 팽헌(조정석)으로 만난 에서 이미 완성됐다. 언뜻 티격태격하는 듯 보이는 매형과 처남은 함께 무언가를 참 많이도 먹는다. 두 사람은 ‘밥정’에 그치지 않고, 나란히 누워 작전을 짜고 무려 백허그(뒤에서 껴안기) 동침까지 선보이는 긴밀한 ‘와식’ 연기에 이른다. 이 천상의 듀오(짝)는 나라와 운명이라는 거대한 무게가 짓누르고, 역모와 권모술수의 날카로운 칼이 오가는 에서 유일하게 숨통을 틔워주는 기분 좋은 한 패다.
특히 연홍(김혜수)의 기생집에서 내경과 팽헌이 함께 춤을 추며 등장하는 비트는 근본 없는 기괴함으로 웃음을 자아낸다. 시대도 형태도 가늠할 수 없는 막춤이지만 어쩐지 두 배우는 같은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인다. 각각 하늘로 땅으로 향하던 손동작은 갑자기 파도처럼 함께 출렁인다. 누가 누구의 리듬에 춤을 추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조정석과 함께 만들어낸 작은 파도들이 모여, 영화 후반부 거대한 파도 앞에 선 내경의 얼굴, 송강호의 스펙터클이 완성됐음은 확실하다.
<font size="2">*비트란 연기 행동(action)의 최소 단위다. 배우의 성취를 집중 조명하는 이 연재에서는 연출과 카메라, 편집의 개념인 숏(shot) 혹은 신(scene) 대신 ‘비트’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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