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자와 예술가가 함께 쓴 총천연색 ‘창의력 도감’.
(쌤앤파커스 펴냄)는 ‘뇌과학계 칼 세이건’이라는 데이비드 이글먼, 예술과 과학을 접목해 인간 정신을 탐구하는 작곡가 앤서니 브란트가 창의성이 작동하는 원리를 크게 셋으로 정리한 책이다. 그것은 바로 휘기(Bending), 쪼개기(Breaking), 섞기(Blending). 저자들은 인간의 인지활동 틀이자 모든 아이디어가 진화해가는 핵심 전략을 ‘3B’로 꼽고, 이 세 가지 정신활동이 각각 또는 조합돼 혁신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포착한다. 쪽마다 풍부한 사례, 방대한 양의 이미지와 인포그래픽이 읽는 재미와 함께 자료로서 소장 욕구를 더한다.
혁신의 문을 여는 첫 열쇠는 ‘휘기’다. “원형을 변형해 본래 모습에서 벗어나는 것”. 크기, 형태, 소재 등을 뒤틀어 자원을 리모델링한다는 의미다. 형태의 휨이 촉발한 아이디어로 저자들이 제시한 예시 가운데 하나만 소개하자면, 현대무용과 수소 엔진의 경우다. 고전발레 동작은 되도록 직선을 추구하는데, 20세기 초 현대무용의 개척자 마사 그레이엄은 근육의 수축과 이완으로 휘어지는 춤선을 안무하면서 무대의 판을 바꿔놓았다. 최근엔, 가솔린에서 수소 엔진으로 전환하는 데 걸림돌 중 하나인 연료탱크 크기 문제도 ‘휘는 상상’으로 해결됐다. 수소 연료탱크는 통 모양으로 큰 적재 공간이 필요한데, 탱크를 겹겹이 쌓는 모양으로 변형해 미래 자동차에 더 많은 연료를 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쪼개기’는 전체를 부분으로 해체해 창조의 재료로 삼는 과정이다. 휴대전화(Cellphone) 탄생이 대표적이다. 단일 통신 지역을 셀(Cell) 단위로 쪼갠 뒤 각 셀에 송신탑을 세우는 전략으로 서로 다른 공간에서 같은 주파수를 쓰는 것이 가능해졌다. 더 많은 사람이 동시에 통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고전음악의 걸작, 바흐의 ‘평균율’도 쪼개기가 부른 혁신이라고 저자들은 설명한다. 평균율 중 푸가 D장조 악보를 보면, 1악장 후반부의 주요 주제가 둘로 쪼개진다. 바흐는 주제 전체가 아닌 일부, 즉 마지막 네 음표의 중복 버전을 13차례 반복하며 “빠르고 아름다운 조각의 모자이크를 만들어냈다”.
‘섞기’는 두 가지 이상 재료를 합치는 “아이디어의 무한한 결합”이다. 기원전 이집트에서 인간과 사자가 합쳐져 스핑크스가 탄생했다. 거미줄로 만드는 방탄조끼도 ‘섞기’의 발명품. 대량으로 기르기 어려운 거미의 특성 때문에 유전학자 랜디 루이스는 거미의 디엔에이(DNA)를 염소와 접목했다. 이렇게 탄생한 ‘거미염소’ 프레클스는 생긴 건 염소지만 젖에서 거미줄을 분비한다. 일반 상대성 이론을 연구할 때 아인슈타인은 승강기와 천체 아이디어를 섞어 중력을 일종의 가속도로 취급할 수 있다는 등가 원리를 보여주기도 했다.
500만 년 인류 역사를 구원한 B의 의지, 휘고 쪼개고 섞을 수 있다면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고 책은 강조한다. “기존의 기억과 인상을 기반으로 발전”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는 “번개가 내리쳐 불타오르는 게 아니라 뇌 속의 거대한 어둠에서 번쩍이는 수십억 개의 미세한 불길에서 생겨난다”. 창의성도 결국 연습과 반복으로 성취될 수 있다는 뜻이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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