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시작은 ‘늑대 사냥 열풍’에서 비롯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북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대대적인 늑대 사냥이 벌어졌다. 목장주들은 엽총을 들고 늑대를 겨누었다. 어린 양을 훔쳐가는 도둑을 징벌하는 일이 정의의 실현이라고 생각했다. 약한 동물을 위한 정의의 실현, 그리고 사람을 위한 정의의 실현.
1872년 세계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옐로스톤에서도 늑대는 천덕꾸러기였다. 옐로스톤의 마지막 늑대는 1926년 사살됐다. 늑대를 죽인 건 사냥꾼이 아니라 국립공원 관리요원이었다. 당시 볼거리였던 엘크(말코손바닥사슴)와 영양을 ‘보호하기 위해’ 늑대를 정기적으로 솎아낸 것이다. 늑대굴을 찾아 허물고 새끼들을 도살했다. 옐로스톤을 마지막으로 늑대는 미국 땅에서 사라졌다.
다시 들여온 늑대 31마리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늑대가 사라진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땅과 나무 그리고 강이 피폐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복잡한 생태계 그물에 거대한 변화를 일으킨 것은 엘크였다. 늑대들은 원래 황소만 한 덩치를 가진 이 사슴을 사냥해 먹고 살았다. 늑대가 없어지자, 엘크의 개체 수는 고삐 풀린 것처럼 늘어나 언덕과 초지의 풀과 나무를 먹어치웠다. 어린 사시나무와 버드나무가 자라질 않았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풀숲이 없어진 강둑은 무너지기 일쑤였고, 물고기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큰 나무가 줄어들자, 비버는 댐을 만들 나무가 없었다. 옐로스톤은 ‘엘크 천국’이 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과밀해진 엘크가 필사적으로 생존경쟁을 벌이다 도태됐기 때문이다. 엘크의 개체 수는 폭증하다가 한계선에 이르면 폭락했고 다시 폭증하는 술 취한 자동차처럼 움직였다.
사람들은 알아차렸다. 엘크의 개체 수를 적정하게 유지하는 포식자 동물이 필요하구나! 초기에는 인간이 늑대를 대신하기도 했다. 엽총을 들고 엘크를 솎아냈다. 캐나다 등으로 ‘이민’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방식이 아니었다. 결국 늑대를 다시 들여오기로 했다. 긴 논란과 준비 끝에 캐나다에서 데려온 늑대 31마리를 1995~96년 라마계곡에 풀었다.
늑대는 생육하고 번성했다. 복원 초기, 가장 유명한 늑대는 이민자 늑대들의 2세인 21번이었다. 한 번도 싸움에 진 적이 없고, 한 번도 패배자를 죽이지도 않으며 자신의 무리를 37마리까지 불린 그는 ‘완벽한 늑대’로 불렸다.
과학자들은 밤낮으로 늑대의 생태를 관찰했다. 아프리카 곰베 강가에서 침팬지와 함께 살며 동물에 대한 편견을 벗겨준 제인 구달이 있었다면, 옐로스톤에는 늑대들을 따라다니며 가족관계와 행동을 기록한 수많은 중견 학자가 있었다. 과학자들은 동화 속 늑대 신화가 잘못된 것임을 알려주었다. 늑대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 아니었고, 무자비한 가축 살육자도 아니었다. 알파 수컷과 알파 암컷을 중심으로 팩(pack)이라는 대가족 무리를 이루고, 새끼가 성장할 때까지 수컷이 함께 돌보는 등(인간을 제외한 동물에서는 이런 경우가 흔치 않다) 인간과 비슷한 면이 많았다. 사냥과 돌봄의 분업이 존재하고, 큰 동물을 대상으로 고도의 전략적인 사냥을 벌였다.
과학자들의 관찰을 바탕으로 21번 늑대 같은 많은 늑대 스토리가 탄생했다. 그야말로 늑대 왕국의 중흥기가 찾아왔다. 늑대 수는 빠른 속도로 회복됐고, 엘크 수는 반비례해 줄어들었다. 나무들은 크고 무성해졌으며, 비버는 댐을 만들었다. 옐로스톤의 늑대 복원 사례는 야생동물 재도입으로 야생을 복원하는 모범 사례가 되었다.
사냥꾼 총에 쓰러진 6번 늑대그러나 간과한 게 있었다. 옐로스톤 생태계 행위자에는 인간도 있다는 사실. 그것도 피라미드 최고층에 사는 가장 파괴적이고 우발적인 행위자였다. 미국 환경 당국은 2012년 늑대 개체 수가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면서 늑대를 멸종위기종에서 제외했다. 이는 늑대가 먹이를 찾으러 옐로스톤 국립공원 경계 밖으로 빠져나가는 겨울에는 사냥꾼들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즈음 6번 늑대가 명성을 얻고 있었다. 2004년 죽은 21번의 손녀로, ‘드루이드 피크’ 무리에서 막 빠져나와 홀로 방랑하고 있었다. 기존 무리를 빠져나와 독립한 늑대들은 보통 다른 무리의 일원과 싸움을 벌이거나 합쳐서 새로운 무리를 만든다. 하지만 빨리 터전을 잡지 않으면 수적으로 열세인 싸움에서 져서 죽을 확률이 커진다. 그런데 6번 늑대는 수컷과 짝짓기만 할 뿐 정착하지 않고 외인으로 사는 것이었다. 게다가 인간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논픽션 작가 네이트 블레이크슬리는 2018년 펴낸 에서 이렇게 말한다.
“6번에게 도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차나 사람에게 다가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피해서 돌아가지도 않았다. 그녀에게 자동차는 천적이나 사냥감도 아닌 그냥 경관의 일부였다. 마치 바위나 나무, 들소처럼 말이다.”
이 말은 중요한 변화를 함축한다. 늑대와 인간의 관계가 달라졌다는 것이고, 한편으로 늑대에게 인간을 움직일 수 있는 잠재력이 생겼다는 얘기다. 6번 늑대의 초연한 태도 덕에 늑대를 보러 오는 관광객들이 생겨났다. 게다가 6번 늑대는 멋진 싸움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나이가 두 살 어린 변변찮은 754번과 755번을 알파 수컷으로 받아들이며 ‘라마 무리’를 만들었다. 라마 무리야말로 정말로 외인부대였다. 캘리포니아 바다에 고래 관광이 있다면, 옐로스톤에는 ‘늑대 관광’이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늑대가 멸종위기종에서 제외되자마자, 초기 희생자는 라마 무리가 되었다. 755번이 2012년 10월 사냥꾼 총에 쓰러져 죽었다. 두 달 뒤, 6번 늑대가 국립공원 경계부에서 죽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늑대의 죽음을 전하는 기사가 각 신문에 실린 것은 물론이었다. 사람들은 슬퍼했다. 이제 늑대에게는 친구들이 생겼고, 정부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인간 정치학과 과학, 그리고 동물동물의 몸은 인간 욕망의 전쟁터다. 참과 거짓, 선과 악, 확신과 비관으로 무장한 정치학이 동물의 몸을 가로지른다. 미국에서 만만치 않은 로비력을 지닌 각종 사냥협회와 주변 대농장주들은 늑대의 사냥 재허가를 요구했다. 이들은 늑대가 적정 수로 회복됐거나 적어도 멸절 위험을 벗어나 지속가능한 개체 수 수준으로 늘어났다고 주장했다. 환경단체는 그렇지 않다고 맞섰다. 둘 다 과학의 논리를 폈다.
어쨌든 2012년 이후 늑대는 국립공원 밖에서 무장해제됐다. 국립공원 안에서 사냥은 불법이지만, 밖에서는 합법이다. 늑대는 보호구역 안에서 최고 포식자 지위를 누리지만, 밖에서는 총 한 방에 날아가는 전리품에 불과하다. 옐로스톤의 늑대가 복잡한 인간 정치학과 생물학의 결과로 나온 규범을 알아채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런던(영국)=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이 기존 구독제를 넘어 후원제를 시작합니다. 은 1994년 창간 이래 25년 동안 성역 없는 이슈 파이팅, 독보적인 심층 보도로 퀄리티 저널리즘의 역사를 쌓아왔습니다. 현실이 아니라 진실에 영합하는 언론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투명하면서 정의롭고 독립적인 수익이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의 가치를 아는 여러분의 조건 없는 직접 후원입니다. 정의와 진실을 지지하는 방법, 의 미래에 투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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