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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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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돌고래는 함께 숭어를 사냥했다

2천 년간 지속된 공동사냥…

인간이 막대기로 바다를 두드리면 고래가 숭어를 몰고 나타나
등록 2019-01-26 17:51 수정 2020-05-03 04:29
모리타니의 수도 누악쇼트와 누아디부 사이의 어촌마을 부족들이 공동 어업을 한다. 먼바다에서 돌고래가 몰아오면 어부들은 그물을 던져 꽤 큰 크기의 숭어를 잡는다. 르네 뷔스넬 뉴욕 과학아카데미 제공

모리타니의 수도 누악쇼트와 누아디부 사이의 어촌마을 부족들이 공동 어업을 한다. 먼바다에서 돌고래가 몰아오면 어부들은 그물을 던져 꽤 큰 크기의 숭어를 잡는다. 르네 뷔스넬 뉴욕 과학아카데미 제공

1971년 프랑스의 동물음향학자 르네 뷔스넬은 로마 시대의 학자 플리니우스의 (Natural History)를 읽고 있었다. 37권의 대저작 중 9권에 있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뷔스넬을 사로잡았다.

에 기록된 ‘사이먼’ 외침

“프랑스 지중해 나르본 해안가의 한 호수. 간조가 되어 바닷물이 빠져나가면 석호에 들어왔던 숭어들이 좁은 물길을 통해 돌아나가려고 한다. 이때 사람들이 소리친다. ‘사이먼’(Simon)! 이 외침이 바람에 실려 바다로 퍼지면, 먼바다에서 돌고래들이 헤엄쳐 온다. 돌고래들은 석호의 통로를 막고 물고기 떼를 얕은 물가로 몰기 시작한다. 그제서야 어부들은 그물로 에워싸고 작살로 물고기 잔치를 벌인다. 사냥이 끝나면 어부들은 돌아가 생선을 분류하고, 돌고래는 하루를 더 기다린다. 이튿날 어부들은 돌고래들에게 생선을 나누어준다. 와인에 적신 빵도 선사 한다.”

사실일까? 플리니우스가 를 쓴 게 서기 77년이니, 거의 2천 년이 지난 일이다. 뷔스넬은 세계 각지의 어업 현장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불과 몇 년 전인 1967년 인류학자 라파엘 앙토니오가 쓴 민속기술지를 발견한다. 지금도 서아프리카 모리타니의 엘멩가 마을 어부들이 돌고래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는 곧 이 사하라사막 연안의 작은 마을로 향한다.

언뜻 봤을 때 돌고래가 살 것 같지 않은 바다였다. 마을 앞에는 모래사장이 펼쳐졌고, 수심은 2m 이내였다. 얕은 바다는 돌고래가 암초에 얹힐 수 있어 위험하다.

그러나 먼바다의 푸른빛이 검푸르게 변해 움직이고, 이내 구렁이처럼 수평선을 휘감자, 상황은 바뀌었다. 숭어 떼가 마을 앞바다를 통과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때 어부들은 배를 타고 나가지 않았다. 한 어부가 긴 막대기를 들고 물속으로 걸어 들어갈 뿐이다. 그는 막대기를 들어 바닷물로 된 북을 치듯이 바다를 내리쳤다. 리듬감 있는 북소리가 3~5분 동안 열대의 바다를 울렸다.

그때였다. 수천 마리의 숭어 떼가 성난 사자처럼 파도를 일으키며 몰려오고 있었다. 마술에 걸린 바다가 성난 물고기를 토해내자, 비로소 어부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60명이 바닷속으로 걸어 들어가 일렬로 선 뒤 침착하게 그물을 던졌다. 뷔스넬은 “숭어 수천 마리가 물 위로 뛰어 몰려오는 환상적인 장면”이라고 말했다.

야단법석이 난 숭어 떼의 뒤에는 돌고래들이 있었다. 돌고래는 적을 때는 한두 마리, 많을 때는 열 마리까지 이 사냥에 참가했다. 어부들이 건져올리는 그물에는 숭어들이 팔딱거렸고, 돌고래는 난장판을 헤집으며 도망가는 숭어들을 낚아챘다. 허공에 뜬 숭어를 돌고래가 튀어올라 낚아채기도 했다. 어떤 숭어는 도망가다가 해변 모래밭에 떨어지기도 했는데, 돌고래는 주둥이를 뻗어 모래 위에서 팔딱거리는 숭어를 가져가는 위험천만한 행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숭어가 뛰면 망둥이도 뛴다’처럼 찰싹찰싹

뷔스넬은 1973년 에 이 사실을 흥분에 찬 어조로 보고하며 “플리니우스의 기록이 현대의 모리타니에서 사실로 확인됐다. 인간과 야생 돌고래가 공동의 사냥감인 숭어를 상대로 공동 이득을 취하며 공진화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두어야 할 것은 ‘신호’다. 사건은 어부가 막대기로 바다를 찰싹 때리는 것으로 시작됐다. 플리니우스가 기록한 로마제국의 바다에서도 ‘사이먼’이라는 신호가 방아쇠였다. 두 신호는 주파수가 있는 ‘소리’(acoustic signal)다. (사이먼이 당시 무엇을 뜻했는지 알 수 없다고 뷔스넬은 적었다.)

재미있는 것은 현대의 돌고래 수족관에서도 이 소리가 쓰인다는 점이다. 돌고래 조련사는 손바닥으로 물 위를 툭툭 친다. 이것은 돌고래에게 ‘이리 오라’는 소리로 이해된다. 뷔스넬은 숭어 뛰는 소리도 이것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숭어가 뛰니까 망둥이도 뛴다’는 속담처럼 숭어는 잘 뛰는 생선이고 그래서 시끄러운 생선이다. 아주 오래된 옛날, 돌고래는 수면을 찰싹 때리는 소리를 먹잇감이 있다는 소리로 해석했고, 인간은 역사의 어느 시점에 그것을 흉내 내었고, 인간과 돌고래의 공동 어업이 시작된 것이다.

지금 와서 돌고래와 인간이 사냥을 함께 시작한 최초의 순간을 완벽히 복원할 수 없지만, 아마도 우연에 우연을 거듭하여 시작했을 것이다. 인간이 바다를 탁탁 쳤고, 돌고래는 한번 가보곤 숭어 떼가 일으킨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이내 깨달았겠지만, 서로 다른 두 종이 소통하는 신호가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알았을 것이다. 대개 소통은 이런 시행착오와 반복을 통하여 정착된다.

나중에 뷔스넬의 조사 말고도 세계 각지에서 인간과 돌고래의 공동 어업이 보고됐다. 브라질 라구나 마을의 큰돌고래, 버마(미얀마)의 이라와디 강돌고래, 아마존강의 강돌고래 보토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모레턴 베이의 남방큰돌고래 등 고대 로마에서 이뤄졌던 공동 사냥이 2천 년 뒤에도 진행되고 있었다. 아마 공동 어업은 로마 시대보다 훨씬 전에 시작됐을 것이다. 어떤 곳에서는 명맥이 끊겼을 것이고, 어떤 곳에서는 최근에야 시작됐을 것이다.

이 중 가장 자주 연구되는 사례가 브라질 라구나 마을이다. 30년 이상 동물행동학자들은 공동 어업에 참여하는 돌고래들을 연구해왔다. 이 집단의 사회구조와 행동을 연구해 꽤 흥미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일단 라구나 돌고래 무리 중 공동 어업에 참여하는 것은 전체 50여 마리 중 20여 마리 수준이다. 즉, 같은 지역에서도 자기 종의 전통적 방식을 고집하며 자립자족하는 돌고래도 있다는 것이다.

대를 이어 사냥을 학습시키는 돌고래

그리고 공동 어업의 기술은 ‘학습’되는 것처럼 보였다. 1994년 연구원들은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했다. 어미 돌고래 한 마리가 여섯 달 된 새끼를 데리고 나타났는데, 맨 처음에는 새끼가 뒤에서 어미의 공동 어업을 지켜보더라는 것이었다. 그다음에는 어미 곁에 바짝 붙어 어미의 숭어 떼 몰이에 함께했다. 마지막 사냥에서는 드디어 새끼가 혼자 나섰다. 새끼는 숭어 떼를 인간 쪽으로 가져다주었고, 어미는 뒤에서 이를 지켜봤다.

사실 돌고래 입장에서 인간과 같이 일하기란 쉬운 게 아니다. 제한적이지만 인간과의 소통 기술이 있어야 하고, 숭어 떼를 잘 몰 줄 알아야 하며, 얕은 바다에서 그물에 걸리지 않도록 지형지물에 익숙해져야 한다. 어미가 이런 기술과 행동을 자식에게 가르쳐 대대로 전승됐을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라구나 마을 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적어도 삼대 이상 돌고래와 함께 숭어를 잡아왔고 자식들도 대를 이어 돌고래와 일했다. 인간과 동물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역사를 만들어온 것이다.

런던=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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