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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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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생 개띠들에게

쉰, 아직 한창 클 나이
등록 2018-12-15 13:27 수정 2020-05-03 04:29
중장년 채용기업 박람회에 참석한 이들의 모습. 한겨레 자료

중장년 채용기업 박람회에 참석한 이들의 모습. 한겨레 자료

해가 바뀌면 나이 앞자리가 달라지는 70년생 개띠들이 주변에 많다. 나는 71년생 돼지띠인데 학교를 일찍 들어가긴 했지만(학창 시절 친구들 소식은 도통 모른다. 내 친구 ‘황소’야 연락 좀 다오), 우연이다. 개돼지끼리 통하는 게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출판계나 공연계 등 여러 분야 기획물에는 ‘마흔’을 주제로 한 것이 참 많다. 그런데 ‘쉰’을 주제로 한 것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공공기관 일자리 알선 프로그램이나 인생 이모작 독려 자기계발서 정도가 있으려나. 쉰은 그렇게 묻어가는 나이다.

나는 이런 맹물 같은 나이를 앞둔 것이 은근 설렌다. 이제 오버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은, 깨달음을 도모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편안함이 슬쩍슬쩍 부푼다. 사실 별다른 의미를 부여할 거리도 없다. 굳이 꼽자면 ‘징징댈 수 없는’ 나이랄까.

마흔이 모든 것에서 익스큐즈(양해) 받기는 힘든 나이라면, 쉰은 아무것에도 익스큐즈(양해) 받기 힘든 나이다. 내 표정과 몸과 태도와 관계에 살아온 내력이 고스란히 담겼다. 어떤 핑계도 변명도 갖다 붙이기 힘든 ‘빼박 나’인 나이인데, 심지어 주목조차 받지 않는다. ‘50대 패션’이나 ‘50대 스타일’이라고 들어보았나. 최대 소비 집단이지만 소비자 대접도 그다지 못 받는다. 유권자 여론조사에서 ‘부동층’으로 분류될 때가 유일한 존재감이다. 마흔은 앓기라도 하고 예순은 국민연금이라도 당겨 받을 수 있다만, 쉰은… 놀아도 눈치, 일해도 눈치, 아파도 눈치 보인다.

우물쭈물 그런 애매모호한 나이대에 진입하는 남편과 친구들을 격려하고 싶다. 내 50대를 한발 앞서 가늠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돌아보니 나의 40대는 해마다 1㎏씩 꼬박꼬박 몸을 불려 어디 가서 피부 좋다 소리 들으며 동안으로 행세할 수 있었던 시기다. 이제 그것이 ‘허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 시작하니 대략 난감하다. 50대가 되기 전에 40대 내내 불린 만큼은 아니라도 그 절반은 감량해야 한다. 아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처신에 게으름 피워도 괜찮던 시절도 다 지났다. 더 이상 애 타령을 할 수가 없다. 극성 엄마이거나 아이와 이유 못하는 껌딱지 엄마로 보이기 십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쉰은 ‘지나치게’ 이해받는 나이이기도 하다. 회식에 빠져도 술을 마시지 않아도 ‘전립선이 좀…’ ‘임플란트…’ 여기까지만 말하면 어느 누구도 더는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더 놀자고 붙잡지도 않는다. 오히려 일찍 들어가시라 등 떠밀린다. 슬픈가. 그래도 남성들은 비가임 인구로 분류되지는 않지 않는가. 대체 왜 내 가임 가능성을 인구통계가 분류해주는지 참으로 유감이다만, 어린 시절에 가임여성이나 출산력이 뭔 소리인가 한참 생각하다 욕이 나온 적도 있다만, 이제 그마저 투덜댈 수가 없다. 그런 시대착오적인 표현을 바꾸지 못하고 나도 나이만 먹었으니 말이다. 세상 탓도 세월 탓도 할 수 없이 다 내(우리 세대) 탓이라니. 어우 썅~젤리제. 그러니까 우리는 이렇게, 난데없이,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술자리에서 과년한 여성분에게 ‘까였’다고 슬퍼하는 어른이 오빠야, 고소당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으로 여겨라. 쳐다만 봐도 느끼하다고 욕먹는 나이이다. 언제 만날 수 있느냐고 자꾸 물어보는 어른이 언니야, 나는 더 이상 언니랑 만나기 싫은 것이다. 50대에는 거울을 봐야 하지만 거울(에 비친 내 모습)만 봐서는 곤란하다. 생애도 그렇듯이 관계에도 기승전결이 있고 흥망성쇠가 있다. 우리 자기 객관화는 하며 살자. 쉰. 아직 한참 클 나이이다.

그리고 우리, 어려운 일이 있다면 용기 내어, 못하겠다고 하자. 아무도 우리의 성장과 성숙을 지켜보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저 하루하루 알아서 잘 크고 잘 살면 된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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