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살 사형수 장화사(김해숙)와 36살 변호사 을지해이(김희선)는 어느 날 일어난 감전 사고로 영혼이 뒤바뀐다. 연인을 살해한 죄목으로 34년째 수감 중이던 장화사에게 남은 것은 무기수로 감형받아 가석방되어 노모의 임종이라도 지키고 싶다는 소망뿐이고, 출세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을지해이에게는 장화사의 감형을 무산시킴으로써 국내 최고 로펌의 시니어 파트너 자리에 오르겠다는 야망이 있다. tvN 드라마 의 시작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뒤바뀐 영혼 속 강렬한 열망</font></font>사실, 두 사람의 영혼이 서로 뒤바뀐다는 설정은 한국 드라마에서 더는 신선한 이야기가 아니다. SBS , KBS 등 10여 년에 걸쳐 꾸준히 등장한 ‘영혼 체인지’는 타임슬립이나 인조인간만큼 식상한 소재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창작자들의 필독서 (데이비드 하워드·에드워드 마블리 지음)에서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주인공이 하고자 하는 일을 성취할 수 있을까에 대한 관객의 흥미는 바로 주인공 자신이 그 일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열망에 비례한다.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이 과연 사회적으로 바람직한지, 도덕적인 것인지 부도덕한 것인지, 정의로운 것인지 부당한 것인지, 이타적인 것인지 이기적인 것인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주인공에 대한 관객의 정서적 태도를 결정짓는 것은 그가 얼마나 강렬하게 그것을 원하고 있는가이다.”
은 이 지점에서 강력하게 시청자를 끌어들인다. 감형 심사위원들을 향해 “희망을 주실 게 아니라면 이제 정말이지 죽여주세요”라던 장화사의 비장한 결의만큼, 두 주인공의 목표에는 목숨이 걸려 있다. 을지해이는 언제 사형이 집행될지 모르는 장화사의 몸에서 벗어나야 자신의 인생을 되찾을 수 있고, 장화사는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뒤 재벌 회장 기산으로 살아온 옛 연인 추영배(이경영)에게 복수하기 위해 을지해이의 몸이 필요하다. 상반된 목표를 가진 두 사람이 완전히 다른 입장에 서서 다시 갈등하지만, 각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힘을 합칠 수밖에 없는 상황은 강렬한 긴장감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서로의 ‘몸’을 가지고 싸우며 말투, 표정, 손동작 하나까지 상대의 것을 가져와 자신의 몸에 입히는 김해숙과 김희선의 연기 또한 흥미롭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서사 중심에 선 여성 주인공</font></font>두 여성이 이야기의 양쪽 기둥을 맡아 서고 장화사의 어머니 김말분(손숙)에 대한 애틋함, 장화사와 감방 동기 감미란(김재화)의 자매애, 장화사와 을지해이 사이에서 아직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사연 등 여성 간의 관계가 중첩되면서 의 여성 서사는 좀더 풍부해진다. 반면 장화사의 결백을 밝히려다 검사직에서 물러났던 을지해이의 아버지 을지성(강신일)과 기산의 이복동생으로 살아온 을지해이의 연인 기유진(김영광)에게는 분노를 폭발시키거나 구구절절한 자기연민에 빠질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모든 사건의 시작이자 주인공들이 끝까지 맞서야 할 악인 추영배 또한 장화사와 을지해이의 뒤를 쫓을 뿐, 이야기의 중심에 서지는 못한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 시리즈를 원작으로 각색한 SBS 역시 공교롭게도 갇혀 있던 여성으로부터 시작된다. 은 딸을 잔인하게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수감되었던 여성(김윤진)이 탈출해 ‘미스 마’라는 별명의 추리소설가 마지원으로 살아가며 역시 미스테리한 여성 서은지(고성희)의 조력을 받아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해결하는 이야기다. 책에서 오려낸 글자로 협박 편지를 보내는 범죄는 21세기의 방식이라기엔 어색하고, 극 초반 여러 사건이 얽히며 전개가 어수선해진 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인상적인 것은 주인공의 캐릭터다. 철저한 준비 끝에 탈옥에 성공한 미스 마는 자신을 추격해온 형사 한태규(정웅인)를 제압하고 잠겨 있던 유리문을 부수고 도주한다. 한 팀장은 뒤늦게 그가 치료감호소에서 범죄, 심리학, 인간의 내면에 대한 책을 탐독하고 일부러 독방에 수감되어 몰래 운동하며 근력을 키워왔음을 알게 된다.
감옥에 갇힌 주인공이 능력을 업그레이드해 복수를 꾀한다는 ‘암굴왕’식 서사는 오랫동안 남성의 몫이었음을 비추어볼 때, 두뇌 회전에서는 물론 육체적 힘으로도 건장한 남성을 능가하는 여성 주인공의 등장은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한태규를 위협하며 미스 마의 결백 가능성을 언급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부장검사 양미희(김영아) 캐릭터도 신선하다. 냉혈하고 권력욕이 강하며 타인을 자신의 출세 도구로 삼으려는 고위 공무원 역시 주로 남성들이 연기해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관행 깬 여성 캐릭터의 등장</font></font>이처럼 욕망이 뚜렷한, 목표가 분명한 여성 캐릭터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가는 방향으로 극 전체를 이끌고 남성들을 주변화하는 여성 캐릭터는 여전히 귀하고 더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과 속 여성들의 성취를 강렬히 원하고 그들을 응원한다. 사실은 원한 지 오래됐고, 이제야 그들을 만났다는 게 더 정확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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