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하고 재능 있는 청년이 부모의 나라로 돌아와 세상에 자신을 내보이지만 거부당하고 상처 입는다. 언어·규범·편견의 장벽에 가로막혀 떠난 그는 ‘다른’ 자아로 돌아오지만, 이번에는 계약의 족쇄에 붙들린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화려한 무대와 먼 삶을 살아가던 그를 다시 대중 앞으로 소환한 것은 유튜브라는 새 시대의 플랫폼이다.
“수입 오렌지족 입장 사양”데뷔한 때부터 30년이 지나, 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무대에 선 그는 젊은 날의 자신을 향해 말한다. “네 뜻대로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내가 알아. 하지만 걱정하지 마. 모든 것은 완벽하게 이루어지게 될 수밖에 없어.” 그는 이 말이 “원하는 것을 내려놓으면 마무리가 된다”는 의미였다고 설명했지만, 불과 한 달 사이 양준일은 쫓기듯 떠난 과거와 달리 뜨겁게 환대받으며 한국에 돌아왔다.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새롭게 시작된 것이다.
재빠르게 움직인 것은 물론 광고업계다. 최근 한 광고는 1990년대의 자유로운 문화를 상징하는 온라인 밈(인터넷에서 유행하는 특정한 문화 요소와 콘텐츠) 가운데,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젊은 여성이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좋거든요)”라고 말하는 뉴스 영상을 패러디하며 양준일의 를 배경음악으로 썼다.
그러나 실제 1990년대 초반의 한국은 어땠을까. 지난해 말 양준일이 출연한 JTBC 에서 손석희 앵커는 “당시 굉장히 젊은 재미교포라는 존재는 한국 사회에서 또 다른 의미에서의 소수민족일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차별받았다고 생각한다”고 했지만, 좀더 정확히 말하면 당시 재미교포라는 지위는 소수이되 오히려 선망받는 특권 계층이었고, 질시 어린 미움을 받는 쪽에 가까웠다. 1994년 놀이공원 서울랜드 게시판에는 ‘수입 오렌지족의 입장을 사양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그 내용은 “말꼬랑지 머리를 한 남자, 뒷주머니에 미국 여권을 찔러넣고 다니는 사람, 영어 반 우리말 반 섞어 쓰는 사람, 20대면서 외제 고급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 등이었다. 다분히 편견에 기인한 문구였지만, 당시 기사에 따르면 관리소에는 “과감하고 시원한 결정을 내렸다”는 격려 전화가 빗발쳤다고 한다.
양준일을 ‘다른’ 존재로 만든 것은 국적만이 아니었다. 1991년 6월21일치 는 “예쁘장한 얼굴에 긴 커트머리 탓인지 여성 같은 느낌을 주는 양준일”을 소개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양준일은 자신의 분위기가 지나치게 여성적이 아니냐는 얘기에 대해 ‘어릴 때부터 여자 같다는 얘길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때는 속이 상하기도 했지만 커서 생각하니 오히려 그것이 장점이 되더군요. 이번에 짧은 시일 내에 팬들의 머리 속에 파고든 것도 외모의 특징 때문이라고 봐야겠지요’라며 당당한(?) 표정이다.”
‘자기 삶’을 사는 게 어려운 사회‘여자 같다’는 말을 애써 부인하지 않는 남자, 그것을 자신의 개성으로 받아들인 남자에겐 (양준일의 표현을 빌리면) ‘퀘스천 마크’(물음표)가 붙었다. 양준일은 에서 자신을 둘러싼 부정적 시선을 “아으, 밥맛 떨어져. 왜 이렇게 머리가 기냐? 어쭈, 귀걸이까지 했어? 야, 남잔지 여잔지 모르겠다”는 가사로 표현했다. 1992년 한 가요 프로그램에서는 남성 가수 네 명을 모아 ‘예쁜 오빠상’ 후보에 올렸는데, ‘예쁘다’는 얘기를 들어봤냐는 질문에 다른 이들은 모두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지만 양준일만은 “그런 얘기 많이 들었다”며 활짝 웃었다. 당시 한국 사회에서 용인되던 남성상과 전혀 다른 모습을 태연히 드러낸 그는 종종 누군가의 심기를 거스르는 존재였다. 그런 그에게 “생각이 어리다”며 면박 주던 사회자, 무대에 돌을 던진 관객, “너 같은 사람이 한국에 있는 게 싫다”며 비자를 갱신해주지 않은 공무원이 1990년대의 한국이었다.
JTBC 를 통해 돌아온 양준일이 ‘탑골 GD의 귀환’을 넘어 하나의 신드롬을 일으킨 것은, 그의 이야기가 이방인 눈으로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경험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우리’에 속하는 이들에겐 풍요와 다양성의 시대로 기억되지만 타자에겐 편협한 야만성을 드러냈던 시대를 겪은 이가, 그럼에도 훼손되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모처럼의 희망을 보여준다. 견고한 이성애 가부장제 사회에서 이단아적인 면모로 배척됐던 그가 “겸손한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라는 계획을 말하는 가장이 되어 돌아왔고, 자신을 내쳤던 한국 사회를 원망조차 않는다는 사실은 양준일에게 죄책을 느낀 이들을 빠르게 안도시켰다. 하지만 이 모든 드라마는 양준일이 과거를 견뎌냈고, 자신을 지켜냈고, 마침내 돌아왔기 때문에 아름다울 수 있다.
에프엑스(f(x)) 멤버였던 엠버는 최근 미국 (CBS) 방송 과의 인터뷰에서 고 최진리(설리)에 관한 기억과 그를 둘러싼 환경을 언급했다. “난 항상 사람들이 설리를 그냥 내버려뒀으면 했다. (중략) ‘설리가 이번에는 무슨 행동을 했다’라는 기사를 볼 때마다 ‘이게 왜 이렇게 큰일인 거지? 이건 그냥 어떤 여자애가 자기 삶을 사는 모습일 뿐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2020년이 시작되자마자 코걸이를 한 여성 배우와 온라인 유행어를 사용한 여성 아이돌이 또다시 악성 댓글에 시달리고 ‘논란’ 기사의 타깃이 되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삶’을 사는 모습을 그냥 내버려두자는 사회적 합의는 여전히 멀어 보인다.
‘시간여행자’가 던지는 중요한 질문양준일은 JTBC 에서 “살면서 머릿속의 쓰레기를 많이 버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의 과거를 보면 그게 미래로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 자신에 대한 편견을 버리는 노력을 생활처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긴 고통에 관해 구구절절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우리에겐 과제가 남았다. 지금 양준일에게 열광하는 한국 사회는 과거의 양준일이 배척당한 이유였던 ‘다름’을 정말 수용하는 사회일까? 30년 뒤 우리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미안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 미안해할 기회라도 얻을 수 있을까? ‘시간여행자’ 양준일의 귀환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최지은 칼럼니스트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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