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강창광 기자
난이 몇 개 들어왔다. 여차저차 ‘스리쿠션’으로 떠안게 된 것들인데 현관 앞에 두고 노려보는 중이다. 난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차라리 네가 쪽파나 부추라면 얼마나 좋겠니.
난을 선물하는 게 역사와 맥락이 있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난을 보내기로 결정하는 사람이 난을 직접 키우는 사람이 아니라서인 것 같다. 은근 손이 간다. 햇빛이나 통풍도 조절해줘야 한다. 손수 아끼고 돌보는 소수의 회장님, 사장님, 교수님도 있겠지만 대체로 비서나 조교가 때맞춰 화장실로 날라 물 주고 물 빠지면 다시 제자리에 갖다놓는다. 먼지도 세심히 닦아야 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주고받는 범위가 협소하다. 승진이나 발령 등 사회생활에서 그것도 일정 직급 이상 해당자에게 아는 척할 일이 생기면 그야말로 영혼 없이 보내는 관례적인 물품이 되어버렸다. 난은 난을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이 역시 그런 사람과 주고받는 게 좋겠다.
실용주의자이자 최소노동주의자인 어미를 둔 탓인지 내 아이도 참으로 알뜰하다. 생일에 멋진 카드 대신 만두 한 판 받는 것을 선호한다. 시험도 가성비를 생각하며 보는 것 같다. 초등 1학년 때 쓴 수학 답안지는 선생님의 배꼽을 잡게 했다. 풀이 과정 쓰는 난에 “곰곰 생각했다” “아까거(앞장에 나온 것)처럼 풀었다”고 적었다. ‘2학년이 되면 1학년 때처럼 열심히 풀었다고 쓰려나.’ 그때만 해도 맘 편히 웃었다. 공부는 학교 선생님들이 잘 시켜주시리라 믿었다.
초등 고학년이 되자 아이 친구 엄마가 “어떻게 그렇게 다 내려놓으실 수 있으세요?”라고 물어왔다. 나: 뭐, 뭘요? 그이: 아이 공부요. 나: 저 안 내려놨는데. 그이: …. 나도 아이가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이는 고학년이 되어도 한번에 10문제 이상 푸는 건 힘들어했다. 가령 14문제짜리 단원평가를 앞에 두고는 눈물까지 비칠 정도로 불행해하니, 나로서는 뾰족한 수가 없기도 했다. 학원에 보낸들 다를 게 있나. 대신 아이는 학교를 신나게 다녔다.
어느 날 알림장에 수학 시험 예고와 함께 “어려워하는 단원이라 복습을 하면 좋겠다”는 담임의 드문 권유가 적혀 있었다. 문제를 좀 풀어보라고 했더니 아이가 말하길, 선생님이 학습지를 내주셨는데 열 개 중 일곱 개 맞아서 괜찮단다. 아이고 그럼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하자 아이는 “왜? 60점 밑으로만 나머지공부 하고 가라고 하셨는데?”라고 말했다. 나는 80점 정도는 받아야 한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나보다. 그날 좌절과 환희가 동시에 찾아오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80점 받을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는 아이의 표정에서 ‘진심’이 읽혔기 때문이다. 너랑 공부로 씨름할 일은 없겠구나.
대신 학원에 갖다주지 않는 돈을 ‘체계적으로’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 이름으로 청약통장을 만들었다. 나중에 ‘내 집 마련’까지는 몰라도 ‘내 방 보증금’ 정도는 되었으면 해서다. 방 있고 튼튼하면 먹고는 살겠…지? 혹시라도 뒤늦게 문리가 트여 진학하거나 도전할 일이 생겼을 때 밑천이 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나로서는 비용과 시간 대비 답이 이렇게 나온다.
1% 혹은 4%에 불과한 특정 대학과 특정 고교 진학률에 너무 많은 아이와 양육자가 너무 일찍부터 매달린다. 꿈도 목표도 딱히 없다. 사교육의 트랙에 올라탄 이상 그냥 달리는 것이다. 그동안 달린 게 아까워서 제 발로 내려오지도 못한다. 어릴 때부터 해본 게 공부밖에 없으니 20대에도 30대에도 공부에 ‘몰빵’한다. 공부를 하거나, 하는 척하거나, 게을리하는 자신을 탓한다. 힘들게 알바하며 공부한다. 공부에 매여 산다.
공부는 난과 마찬가지다. 관행과 노동의 산물이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면 된다. 아닌 사람은 실속을 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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