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생 시인은 이태 뒤 고희에 이른다. 최근 그는 섬진강을 끌어안은 고향 진메마을(전북 임실군)에 돌아왔다. 대표작 이 쓰인 곳이다. 이후 3년 만에 낸 이번 시집 (창비 펴냄)의 정서 또한 서정이다. 시인의 소박한 언어는 서정으로 가는 징검다리. 그 언어는 섬진강 여울에 길들어 몽글몽글해진 조약돌을 닮았다. 시인의 언어가 날카롭지 않고 부드럽게 독자의 마음에 전해지는 연유일 것이다.
문학평론가 김수이는 시집에 쓴 해설에서 “‘살다’의 활용에 의한, ‘살다’의 활용을 위한 시집”이라고 평했다. 삶이 익어감을 느끼며 아버지를 이해하는 마음 또한 서정의 본류가 아닐 수 없다. “속셈 없는 외로움이 사람을 가다듬는다. 강가가 차차 환해진다. 아버지에 대한 시를 쓰면서 편안함을 얻었다. 홀로 멀리 갈 수 있다.”(책 뒤 ‘시인의 말’ 부분)
시간은 시인이 가장 즐겨 찾는 시의 질료 가운데 하나다. “나는/ 어느날이라는 말이 좋다.// 어느날 나는 태어났고/ 어느날 당신도 만났으니까.// 그리고 오늘도 어느날이니까.// 나의 시는/ 어느날의 일이고/ 어느날에 썼다.”(‘어느날’ 전문) 아련하지만 손에 닿을 듯한 날들을 시인은 ‘어느날’이라는 낱말로 호명한다. 그 ‘어느날’ 시인은 아버지를 생각한다. “내가 산 오늘을/ 생각하였다.// 해 넘어간 물가에/ 천천히 무거워지는/ 바위들처럼/ 오늘은 나도 쉽게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하루가 길고/ 무겁다.”(‘아버지의 강가’ 전문)
서정은 순간을 응시하고 순간을 사유할 때 흔히 빚어진다. ‘어느날’과 ‘아버지’, 그리고 ‘섬진강’을 품은 자연이 만나 이뤄진 김용택 시의 한 절정은 이러하다.
“어둠이 오면 잔물결들은/ 살얼음이 되어/ 강을 단단히 조인다./ 처마 밑으로 싸락눈이 들이친다./ 목숨을 매단다. 옥수수야,/ 씨앗들은 모든 걸 바람에게 주고/ 스스로 고립한다./ 고립 속에는 수분이 없다./ 빈곤이 단 것은 곶감뿐이다./ 살얼음 주름에 싸락눈이 모여들어 강이 희미해졌다./ 갈라진 발뒤꿈치 틈으로 외풍이 찾아드는지/ 어머니의 발이 자꾸 아랫목 콩자루 밑을 찾는다./ 굳은살 박인 아버지의 복사뼈 절반이 밖으로 밀려났다./ 산이 눈을 감는다.”(‘아버지의 복사뼈’ 전문)
무엇보다 김용택의 시에 자갈처럼 깔린 것은 따뜻함이다. 서정의 보편성은 온화한 정서에서 흔히 잘 드러난다.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엉덩이 밑으로 두 손 넣고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 되작거리다보면 손도 마음도 따뜻해진다. 그러면 나는 꽝꽝 언 들을 헤매다 들어온 네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다.”(‘울고 들어온 너에게’ 전문) ‘서정의 온도’가 이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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