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노스쇼어의 일몰 직후 풍경. 김울프
고등학교 3학년 6월, 극적으로 부모님을 설득해, 입시 미술학원에 가는 첫날, 나는 처음으로 내 삶의 온전한 주인이 된 기분을 느꼈다. 야간 자율학습을 하지 않고 교문을 나오면서 보았던 해가 지는 풍경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이후로도 나는 하루의 시간 중, 해 질 녘을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지만 아무렴 어떤가, 아름다운 순간을 마주했는데.
바라던 나의 길, 하지만 보잘것없는 재능이 느껴질 때면 마음이 헝클어졌다. 그럴 때면 바다로 갔다. 안 가면 후회할 것 같아서 빚을 내어서라도 충동적으로 찾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뚜렷한 직장도 소득도 없는 내게는 매 순간이 경제적으로는 결정적 위기이지만, 자유롭게 주어진 많은 시간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위기라고 합리화를 했다.
바다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 점이 묘하게도 위로가 됐다. 내가 걸어온 길은 작은 발자국 몇 개, 그조차도 금세 파도에 씻겨나갔다. 그것이 아까워 사진을 찍고, 물속에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먼바다로 나와 홀로 둥둥 떠 있을 때면 나의 보잘것없음을 매번 느낀다. 스스로에게 떳떳할 만큼 남은 모든 것을 버린 적 없고, 그렇다고 이것을 놓아버릴 용기조차 없이 간신히 버티고 있는 모습이 바다에 비친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바다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파도 속에서 몇 장의 사진을 얻는 동안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물속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쉽지 않았다. 카메라값보다 비싼 방수 장비는 강한 파도에 휩쓸려 몇 번이나 부서졌다. 큰 파도 속에서 한참 수영을 하고,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불편한 옷을 입어야 했다. 이안류와 조류에 휩쓸리더라도 당황해서는 안 되고, 카메라의 안전에도 신경 써야 했다.
운이 좋을 때면 몇 장의 좋은 사진을 얻었고, 운이 나쁠 때면 몸과 장비가 망가졌다. 촬영 환경은 물놀이보다는 생존훈련에 가까웠고,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육체적·정신적 준비가 필요했다. 준비가 철저히 되어 있더라도 사고는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바다로 가는가?’ 수없이 되뇐 질문에 한 번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바다로 가야만 하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어쩌면 쓸데없는 개인 작업. 10년 동안 ‘바다 사진’을 찍으면서 겨우 알게 된 것은, 쉽지 않다는 것, 많은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운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 많다는 것. 하지만 해낼 수 있다/해낼 수 없다는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단지 하고 싶다/하고 싶지 않다 정도만이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아마 인간이 동물보다 바보 같은 점이 있다면, 별다른 이유 없이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며 계속해서 고민한다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집착과 고민을 하는 것이 ‘하고 싶다’에 대한 충분한 이유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혼자서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 파도 속의 가장 큰 매력은 자신의 두 팔과 두 다리 이외에는 자신을 도와줄 어떠한 기계도 사용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자본력으로부터의 정치, 적당한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 환경은 내가 꿈꾸는 유토피아다. 그 속에서 사고를 당하면서 힘도 많이 빠졌지만 여전히 나는 파도 속에서 살고 싶다. 쉽지 않기에 천천히 끝까지 가보려는 마음이 자라나게 되었다.
2014년 가을, 하와이 노스쇼어, 천천히 끝까지 가기 위해 편한 마음으로 며칠 정도 카메라를 놓고 서핑만 하며 ‘힐링’하다가, 카메라를 잡은 날, 해가 질 때까지 물속에 있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나 먼 곳에서, 빚을 내어가며, 이 짓을 하고 있나?’를 생각하다가 문득, 고등학교 때 보았던 그 빛을 다시 보았다. 해는 지고 갈 길은 멀지만 아무렴 어떤가, 아름다운 순간을 마주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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