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이라는 꽃. 2016년 7월 하와이. 김울프
“오른손 엄지를 평생 움직이지 못할 수도 있어요. 원한다면 장애 판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사고로 받은 몇 달간의 휴가. 하지만 오른손잡이는 카메라를 쥘 수도, 숟가락으로 밥을 뜰 수도 없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할수록 마음은 헝클어졌고 희망과 절망이 구분되지 않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기분, 불안했고 초조했다. ‘사람들의 참견으로부터, 도시의 경쟁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 내게는 섬이 필요했다. 그리고 별생각 없이 제주도에 도착해서 월세 30만원짜리 방을 구했다. 제주에 간 이유는 저가항공사의 표가 싸서였다. 나의 충동이란 겨우 그 정도 수준이었다.
‘해야만 하는 삶’으로부터 도망 나오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 ‘다음달 월세는 어떻게 마련하지?’ 같은 생각은 들지 않고 오히려 제자리로 찾아온 듯한 안도감을 느낀다. 작은 섬에선 사방에 둘러싸인 바다가 커 보여 갇힌 느낌을 받는데, 제주도에서는 바다가 바라보기 좋은 크기로 보인다. 섬 전체가 잘 지은 하나의 성처럼 느껴졌다. 몇 달간 이곳에 살 것이다.
해가 뜨면 해를 보고, 달이 뜨면 달을 보고, 별을 보거나 파도를 보고, 구름이 지나가는 것으로 바람을 느끼고 바다에 몸을 담그고, 비가 오면 비를 맞는 것, 제주에서는 그래도 된다. 섬 전체가 관광지이므로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전에는 알지 못했다. 오히려 성공하기 전에는 그러면 안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 경지에 도달하기는 쉬웠다. ‘그냥 하면 되는 것임을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걸까? 왜 모든 것을 배우고 나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아무도 막아서지 않았는데 나를 막고 서 있었던 건 나 자신이었다. 10년 전, 8개월 동안의 제주살이. 이룬 건 하나도 없지만 많은 것이 변했다. 느긋한 마음은 아무 데에서나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순간이 있다. 해변으로 돌아가려 계속 헤엄쳐도 제자리이거나 해변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상황처럼, 노력한 만큼 지치기만 하고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것은 조류 때문이다. 그것은 누군가의 잘못도 아니고 이겨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조류로부터 벗어나는 법은 조류에 몸을 맡기고 흐르는 방향을 살피고,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 아닌 옆 방향으로 빠져나와야 한다. 먼 길을 돌아가는 게 사실은 유일한 길일 수도 있다.
나는 지금도 살아내야 하는 삶의 조류로부터 벗어나 태평양 한가운데 외딴섬에 머물고 있다. 8월 말 개인 전시회를 빌미로, 가진 모든 것을 털어서 겨우 도착했다. 매 순간 열심히 사진을 찍어도 모자랄 판에 카메라를 내려놓고 해와 달, 바람과 파도나 멍하게 보고 있다. 스스로 한심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좋다. 어쩌면 이 순간이 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리라. 그리고 나는 바다에 왔다.
*‘김울프의 바다가 부른다’ 연재를 마칩니다. 좋은 글과 사진 보내주신 필자와 아껴주신 독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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