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지구의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한 채로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마음먹기에 따라 벽이 되기도 길이 되기도 하는 신비한 공간, 내가 바다를 자주 찾는 것은 변덕스러운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유년 시절, 바람을 타고 물 위를 가르는 세일링(sailing)을 시작한 뒤 나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 지금은 찾아보기도 힘든 목선(木船)은 낡고 무겁고 느렸지만 바람을 거슬러 올라가 끝내 내가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그때 느낀 기쁨은 수영 안전선 안쪽에서 튜브를 탄 채로 파도에 떠밀리며 느끼는 수동적인 기쁨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 위에서 순위를 겨루는 요트 경기는 재미있지만 쉽지 않았다. 재능이 없다는 것도 순위를 통해 알게 되었다. ‘즐길 수 없으면 피하라.’ 패배를 합리화하기 위해 효율보다는 낭만을, 성공보다는 성취를 추구하는 삶을 살겠노라 변명하며 바다의 경쟁에서 도망쳐 나왔다.
바다에서 얻은 야망, ‘마음만 있으면 결국 느리게라도 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나는 결국 바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되었고, 2010년에는 두 친구(박효준, 임재환)와 24피트 돛단배로 바람만을 이용해 전국 연안일주를 하게 되었다.
경기도 화성 전곡항에서 제주도, 부산, 울릉도, 독도를 거쳐 강원도 양양의 수산항까지, 물도 전기도 부족한 원시적인 생활, 바람이 불어올 때 달리지 않으면 바람이 불지 않을 때에는 달리고 싶어도 달릴 수 없는 작은 돛단배에서 보낸 67일의 시간, 사진과 영상을 잘 찍어두고도 팔릴 만한 대의나 명분을 붙이지 않았다.
아마 ‘최연소’나 ‘모험’ ‘꿈’ 같은 거창한 단어를 쓰며 성공을 구걸했다면 좀더 유명해지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워졌겠지. 하지만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다. 오늘같이 봄바람이 불어올 때면 그때의 낭만의 향기가 코끝에 스치는 것 같다.
낭만보다는 효율과 성과를 강요하고, 욕망과 경쟁을 부추기는 분위기 속에서 주목받는 것은 늘 승리자다. 꿈은 논리로 포장되고 승자의 이야기는 팔리기 좋게 미화된다. 그런 사회의 교육은 깎아내리기식 비교와 승리를 위한 집념의 주입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인공지능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쟁의 효율성이 과잉 주입된 인간 지성을 두려워해야 하지 않을까?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할까? 바다에서 얻은 사소한 성취를 낄낄대며 나누고 싶다. 낭만의 계절 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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