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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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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줄이고 물속에 오랫동안

공기통 없이 물속에서 호흡하는 프리다이빙 오로지 생을 갈구하며 명상에 빠져드는 시간
등록 2015-12-12 20:04 수정 2020-05-03 04:28

“좋아하는 음악 장르가 뭐예요?” 고속도로에서 운전 중 졸지 않기 위해 배경음악이 필요해서, 혹은 함께 차에 탄 그의 지루함을 덜어주기 위해 그의 취향을 물었다. 악기를 두 종류쯤 연주할 수 있는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보사노바도 좋지. 하지만 (남이 만들어낸 것을) 계속 듣다보면 결국엔 소음처럼 느껴져. 누구도 소음을 좋아하지는 않잖아.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은 잔잔한 바닷속의 고요함이야.”
그는 나보다 10살 정도 많은 재일동포로, 프리다이빙 훈련에서 룸메이트로 만났다. 인생의 쉼표를 위해,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찾아온 바다였지만 끊임없는 교육이 이어졌다. 다들 어려서부터 학원과 과외 등 사교육에 익숙해서인지, 레포츠조차 체험이 아닌 학습 쪽에 가까웠다. 큰 비용을 지급하고 과잉보호를 받으며 키워지는 것 같은 느낌, 최대 수심 기록을 경신하기 위해, 물속에서 조금이라도 숨을 더 참기 위해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진지한 사람들 속에서, 그를 만나게 된 건 행운이었다. 그의 여유로운 태도 덕분에 나도 조금 느긋해지는 느낌이었다.

김울프

김울프

프리다이빙은 공기통을 착용하고 물속에서 호흡하는 스쿠버다이빙과 달리 물 밖에서 들이마신 숨으로 물속을 유영하는 방식이다. 아무런 인공호흡 장비 없이 물속을 유영하는 단순함이 멋져 보이지만, 실제 물속에서 숨을 참고 유영할 수 있는 시간은 보통 2분 남짓. 무리해서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다가는 누구라도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위험한 활동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기록을 위해 도전하다가 사고를 당한다. 세계 기록은 11분 남짓, 수직으로 140m 정도 내려갈 수 있으며 수평으로는 220m 정도 갈 수 있다. (상상만으로도 대단한 수치이지만, 바다의 깊이와 너비에 비하면 초라한 수치이기도 하다.)

내가 프리다이빙을 좋아하는 이유는, 자신의 호흡으로만 해야 하고, 그 호흡량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뇌와 근육의 산소 소모량을 최대한 줄여야 하는 명상적인 운동이기 때문이다. 산소를 가장 많이 쓰는 장기는 심장이나 폐가 아닌 뇌이기 때문에 생각을 줄이는 것이 더욱 오래 숨을 참을 수 있게 해준다. 잡생각을 줄이고 행동을 늘리기 위해 명상이 필요하다.

물속은 명상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오감이 흐릿해지면서도 과장되는 장소, 그렇기에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달리 말하면, 호흡 욕구를 통해 생을 갈구하게 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 쓸모없는 모든 생각을 덜어내면, 초라하지만 제법 쓸모 있는 나 자신만 남는다. 스스로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게 되는 순간, 의식적으로 숨을 참고 버티다가 본능에 따라 들이마신 만큼 내뱉고, 다시 들이마시고 물속으로 향한다. 그러다보면 신기하게도 머릿속이 가벼워진다. 매번 물 밖으로 나올 때마다 새로운 생을 얻은 듯한 느낌에는 묘한 중독성이 있다. 숨이 탁 트이면서 지금 이 순간 삶을 다시 시작하는 느낌. 나는 그 느낌을 좋아한다.

물 밖의 세상은 필요하지 않은 소음으로 가득하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식의 조언과 첨언이 가득한 삶,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평가받고 평가하기에 바쁘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은 언제나 쓸쓸하다. 남들을 위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신기하게도 물속에서는 누군가가 바로 옆에 있어도 혼자인 느낌이 든다. 나를 구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나 자신,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을 것이다. 살아 있는 온전한 나 자신을 마주하는 순간, 바닷속의 고요함이 그립다.

김울프 프리랜서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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