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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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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비위를 맞추는 낙천주의자

리어카만 한데 침대 시트만 한 돛을 단 작은 배 ‘옵티미스트’, 큰 배가 명예를 가져다주지만 작은 배가 진짜 항해를 한다네
등록 2015-10-08 21:11 수정 2020-05-03 04:28

날이 어둑어둑해지는가 싶더니 비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바다는 순식간에 변했다. 몇m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자 곧 방향감각을 잃었다. 리어카만 한 배에 침대 시트만 한 돛이 달린 작은 배를 탄 꼬마들에게는 쉽지 않은 순간, 모두 홀로 각자의 배를 몰며 배 길이의 반만 한 너울을 넘으며 제자리를 맴돌았지만, 누구도 포기하지 않았다. 겪어보지 못한 난관이지만 헤쳐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겁이 났지만 잘해내고 있는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비를 피할 곳도, 멈춰서 울 만한 여유도 없는 바다 한가운데에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나는 10대 시절의 몇 년을 바람으로 바다를 가르는 작은 배 위에서 보냈다.

길이 2.3m, 폭 1.13m, 선체 무게 35kg, 돛 면적 3.3㎡ 크기의 작은 배. ‘옵티미스트’(OPTIMIST). 바람만을 이용해 움직이는, 16살 미만의 아이들을 위한 1인승 종목. 쉽고 재미있게 만들어진 어린이용 장난감이 아닌,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어진 배. 네모난 선형의 배는 뒤집히고 나면 힘들여 다시 세워야 했고, 세우고 나면 배 안은 목욕탕처럼 변해 한참을 물을 퍼내야만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돛의 면적을 늘이기 위해 장착된 봉(sprit)이 빠지거나, 돛(sail)을 돛대(mast)에 고정하는 끈(tie)은 바람이 세면 터져나가는 등 곳곳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미리 예측해 대비를 해야 했다. 배는 바다의 비위를 맞춰야만 조금씩 나아갔다. 매 순간 적극적으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많은 문제를 직접 경험해봐야만 했다. 바닷사람을 만들어내기 위한 어린이용 배의 이름이 ‘낙천주의자’(OPTIMIST)라니 그럴싸했다.

‘낙천주의자.’ 지금의 시대에 얼마나 생소한 단어인가. 어려서부터 외워야 할 것이 가득한 환경. 순위로 평가받으며, 경험보다는 학습을 강요받는 삶, 해야만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가득한 세상. 불필요한 많은 정보들, 삭막한 위계질서, 과대포장과 거짓말들, 도시의 삶의 무게가 견딜 수 없이 무거울 때면 휴가를 내어 자연을 찾는다. 그중에서도 바다는 가장 크고 어디에나 있다. 육지에서 먼 바다를 바라만 보아도 좋지만, 직접적인 관계를 가질 때 삶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바다에서 육지를 바라보는 풍경, 그리고 바람으로 바다를 가르는 그 자체다(사진).

바람으로 바다를 가르는 것에는 즐거움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바람을 거슬러 올라갈 때 느껴지는 힘, 뒤집힌 배를 세울 때의 노력, 배 위에서 흘리는 땀과 달리면서 맞는 바닷물, 조류와 바람을 읽는 법, 푸른 하늘과 투명한 바닷빛, 규칙을 따르되 자신만의 길로 나아가는 것. 이런 것들을 직접 경험하고 나면 복잡했던 세상이 꽤 단순해지기 시작한다.

추종하면서 사는 것, 남을 비판하거나, 환경을 비관하는 것, 그러한 것들 모두 바다 위에서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 배를 몰고 있는 것은, 여기에 남아 있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현재를 대하는 태도다. 나는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큰 배가 명예를 가져다주지만 작은 배가 진짜 항해를 한다.” 무섭고 겁이 나지만 잘해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한 기분에 피식 웃음이 난다.

김울프 프리랜서 사진가

■‘낙천주의자’(OPTIMIST): 낙관주의자 혹은 낙천주의는 비관이나 우울함, 불행, 이기주의, 외로움 등과는 반대되는 개념이지만 모든 것을 긍정만 하는 것과는 차별된다. 어려운 환경이나 스트레스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내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행동하는 긍정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 ‘김울프의 바다가 부른다’는 파도 속에서 사진을 찍는 ‘바다사진가’ 김울프가 바다에서 즐기는 스포츠를 이야기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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