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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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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났다, 임신했다

아기들에게 큰 관심을 가지지 않던 나, 아이가 생기면 모성애도 생겨나는 걸까
등록 2015-08-20 18:43 수정 2020-05-03 04:28
임신 6주차 초음파 사진. 여름이(태명)의 존재가 처음으로 밝혀진 날. 송채경화 기자

임신 6주차 초음파 사진. 여름이(태명)의 존재가 처음으로 밝혀진 날. 송채경화 기자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나는 친구들과 제주도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바다에서 스노클링도 하고 한라산 산림욕도 하고 오름 꼭대기에 올라가 점프질도 했다. 그런데 불과 1년 뒤 지금 나는 자기가 까마귀 새끼인 줄 알고 까악까악 울어대는 작은 생명체와 함께 방구석에 처박혀 있다. 억울하다 억울해. 그렇다고 이 까마귀를 다시 뱃속으로 집어넣을 순 없으니 나는 당분간 세상을 등지고 나 자신과 까마귀에 대해 열심히 탐구해보기로 했다.

한 달 하고도 일주일 전, 한 인간이 뱃속에서 세상으로 나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나를 엄마로 맞이하는 숙명을 타고났다. 그러니까 나는 모성애라는 것은 애초에 내 두뇌나 심장에 탑재돼 있지 않다고 믿어왔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엄마로 두다니. 아이의 운명도 참…. 그냥 삼신할머니가 랜덤으로 엄마를 골라주는 과정에서 약간 재수가 없었다고 마음 편히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살다보면 재수가 좋은 날도 오겠지.

난 항상 궁금했다. 모성애라는 것은 아이가 생기면 본능적으로 따라서 생기는 것인지. 가끔씩 다른 사람들의 아기를 보게 될 때마다 귀엽다고 느끼긴 했지만 그리 큰 관심이 가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아기보다는 강아지나 새끼 고양이가 더 귀여웠다. 내가 그런 인간이라는 것을 느낄 때마다 두려웠다. 언젠가 나에게 아이가 생긴다면 다른 엄마들처럼 희생과 헌신으로 그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나 자신보다 소중한 게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내가 이렇게 생겨먹은 데에는 세상이 여성에게 던지는, 모성에 대한 강요된 시선도 한몫했다. 엄마라면 당연히 이래야 한다는 수많은 요구 조건들은 나를 숨 막히게 했다. 이에 대한 저항이 의식적으로 모성애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아이를 위해 무언가를 희생하지 않으면 ‘비정한 엄마’ ‘이기적 엄마’로 낙인찍는 사회에서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내가 지금껏 쌓아올린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아이를 안 낳겠다고 하면 사람들은 또 손가락질을 해댔다. 너 편히 살자고 아이를 안 낳는 것은 정말 이기적인 짓이라고. 이러한 시선은 또한 얼마나 폭력적인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내가 덜컥 임신을 했다. 그래서, 없던 모성애가 임신과 동시에 생겼느냐고? 그럴 리가. 임신 사실을 확인하고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했던 첫마디는 “언니, 나 축하해줘”가 아니라 “언니, 나 큰일났어”였다. 기자생활 7년차에 한창 일할 맛이 나던 때였고 결혼생활도 충분히 행복한 상황에서 이 모든 것이 무너져내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것이 임신에 대한 내 첫 느낌이었다. 물론 마냥 우울했던 것만은 아니다. 내가 한 생명을 품고 있다는 것, 나를 닮은 아이가 조만간 세상에 나온다는 사실 그 자체가 주는 기쁨과 설렘이 분명히 있었다. 다만 그 기쁨이 나의 모든 불안을 덮어줄 정도로 압도적이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이후 수많은 걱정에 휩싸였던 나는 나보다 1년 앞서 출산을 한 회사 동기에게 물었다. “아무개야, 아이를 낳으면 자동으로 모성애가 생기는 거니?” 아무개가 대답했다. “아니, 안 생겨.” 이 대답은 묘하게 나를 안심시켰다. 그래,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자동으로 모성애를 장착하고 있는 건 아니구나. 주변의 시선, 아이에 대한 미안함, 죄책감 등을 벗어던지고 진짜 모성애에 대해서 한번 솔직하게 얘기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 자신을 흥미롭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엄마가 될 것인가.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송채경화 기자*‘모성애 탐구생활’은 뮤지션과의 사이에 아이가 생긴 송채경화 기자의 육아 칼럼입니다. 하어영 기자, 양선아 기자도 번갈아 육아 칼럼 필자로 참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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