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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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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까지 날아간 새

붉은가슴도요의 비밀과 경이로움, 필립 후즈의 <문버드>
등록 2015-06-07 09:48 수정 2020-05-02 19:28

붉은가슴도요는 봄과 여름만을 산다. 매년 10~2월은 아르헨티나 최남단 리오그란데 해변에서 지낸다. 남반구인 그곳의 계절은 여름. 남반구에 가을이 오면 북반구로 여름을 찾아간다. 3~6월 아르헨티나에서 캐나다 북극권까지 여행한다. 6월 북극에는 여름이 오고 있다. 극지방의 가공할 추위를 피하기 위해 겨우내 얼음 아래 몸을 꽁꽁 숨겼던 수천 종의 생명체는 기지개를 켜고, 거의 하루 종일 태양을 볼 수 있다. 북극에 겨울이 찾아오는 8월이 되면 다시 아르헨티나를 향해 떠난다.

캐나다 토론토대학의 앨런 베이커 연구팀은 1995년 붉은가슴도요의 가느다란 발에 밴드를 묶어 추적 연구하는 계획을 세웠다. 붉은가슴도요가 매년 어떻게 길을 잃지 않고 목표 지점을 향해 날아가는지, 쉬지 않고 최대 8천km를 나는 힘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였다. 1995년 2월 수백 마리의 붉은가슴도요를 그물로 포획해 검은 밴드를 묶은 뒤 다시 날려보냈다. 2001년 다시 붉은가슴도요들에게 밴드를 묶는 과정에서 검은 밴드를 지닌 새 한 마리가 발견됐다. 2번 연속 과학자들의 눈에 띈 새의 식별번호는 B95. 처음 발견된 때로부터 12년이 지난 2007년, B95는 또다시 앨런 베이커 박사와 만났다. 앨런 박사의 머리는 희끗희끗해졌지만 B95는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 같았다. 몸무게는 적당하고 깃털은 훌륭했다. “세 살짜리 새처럼 다부졌어요. 내 손에 있는 새는 슈퍼버드였던 겁니다.” B95, 문버드는 2015년 3월 최근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23살의 나이에도 건재함을 드러내, 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전설’이 되고 있다. 1년 이동 거리 2만9천km. 20년간 날았으니 지구에서 달까지 갔다가 다시 절반 정도 돌아오는 거리(58만km)를 이동했다. 이 ‘대단한 여행자’의 별명은 그래서 ‘문버드’.

문버드의 ‘생존’이 경이로운 것은 1995년만 해도 15만 마리였던 붉은가슴도요가 최근 2만5천여 마리로 80% 넘게 줄었기 때문이다. 붉은가슴도요가 중간에 쉬며 영양 보충을 해야 하는 ‘정거장’이 훼손되어서다. 8천km 비행노동을 한 뒤 내려앉아 다음 비행을 위해 붉은가슴도요가 마음껏 먹어야 하는 투구게 알이 사라져버린다. 인간이 투구게를 멸종시키듯 잡아들여서다.

논픽션 작가 필립 후즈는 (김명남 옮김, 돌베개 펴냄)에서 B95의 일생에 숨결을 불어넣으며 붉은가슴도요의 비밀과 경이로움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붉은가슴도요가 2만9천km 비행을 위해 나는 기계로 변신하는 과정은 경이롭다. 먹고 또 먹어 몸을 지방으로 가득 채워 포동포동해진 뒤 이륙 직전엔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장·간은 물론 다리근육까지 쪼그라뜨려 몸무게의 30%를 줄인다. 이륙 직전엔 부드러운 먹이만 먹어 모래주머니까지 작게 만들고 깃털마다 피를 채워 빳빳한 비행깃으로 날개를 정비하는 깃털갈이를 한다. 이 ‘경이’는 붉은가슴도요 앞에 놓인 멸종이라는 단어 앞에 인간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이 ‘매혹적이고 아름답기까지 한 생명체’와 같이 살아나가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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