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우종 기자
만화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직접 만화를 그려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현직 의사가 만화를 그리거나, 혹은 의사가 만화를 그리다 아예 직업을 만화 쪽으로 바꿨다면? 지난 11월26일 만화를 그리는 의사 만화가 3명을 동시에 만났다. 서로 연락은 하고 있었지만 그들도 10년 만에 모인다고 했다. 정민석 아주대의대 해부학교실 교수는 해부학을 배우는 학생들을 위해, 박성진 내과 전문의는 인턴과 레지던트(전공의)가 써야 할 항생제 사용법에 대해 만화를 그렸다. 정희두 헬스웨이브 대표이사는 한 일간지에 의료 현장에 대한 만화를 그리다가 지금은 질병 및 수술법에 대해 환자에게 쉽게 알릴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회사를 차렸다. 이들이 만화를 그리게 된 사연과 만화를 통해 그들이 꿈꾸는 세상 이야기를 들어봤다.
해부학 설명하려 야한 만화 쓰기도
사회: 의사는 병원에서 살다시피 할 정도로 다들 바쁘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한가하게(?) 만화를 그리게 됐나.
정민석(이하 정): 의대생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것이 해부학이다. 사실 해부학처럼 그림을 많이 그리는 학문도 없다. 칠판에 그림을 그려서 설명해야 하는데,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해 만화처럼 그리게 됐다. 2000년부터 아예 만화로 해부학을 설명하기로 하고 만화를 그렸다. 직업이 취미를 만든 셈이다. 사실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기 때문에 만화가 좀 엉성해 보이기도 하는데, 그러다보니 나를 닮은 만화 캐릭터를 만들기도 했다. 어려운 해부학을 설명하고, 공부라기보다는 재밌게 즐기라는 의미로 야하게 쓰기도 했다.
박성진(이하 박): 의대를 1986년에 들어갔다. 잘 알다시피 당시는 대학교가 학생운동으로 꽤나 시끄러웠던 시절이다. 대자보가 많이 나붙었는데, 글로 쓰는 것보다 만평을 그려 붙이는 것이 인기가 높았다. 호응이 좋아서 꽤나 많은 만평을 그렸다. 1989년 본과 2학년 때는 내친김에 만화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했다. 그러다가 전공의 3년차 때 후배들의 요구로 를 그리게 됐다. 감염 환자를 치료할 때 어떤 항생제를 어떤 방법으로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만화로 그렸다. 이 책은 에서 화백으로 활동했던 박재동씨가 추천사를 써주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전문적인 내용이라 의대생이나 인턴, 전공의들에게 많이 팔렸다. 10쇄를 찍었으니까 많이 나간 셈이다. 이후 한 일간지에 의료 현장에 대한 만평과 대한의사협회에서 내는 신문에 만평을 그렸다. 강원도 춘천에서 개원의로 일하고 있는데, 틈틈이 시간을 내어 의료 현장의 문제를 담은 만화를 준비하고 있다.
정희두(이하 희): 1990년에 의대에 들어가 학생회에서 홍보 일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홍보물에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후 2000년에 의사나 의대생이 보는 한 의학전문지에 만평을 그리면서 본격적인 만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만평이 인기를 얻어 한 일간지에 병원의 진료 현장을 꼬집는 만평을 그리게 됐다. 2003년 보건소에서 근무할 때, 전공이 외과라 이에 대해 일러스트를 그려보려 했는데 만화로는 도저히 수술 장면 등을 표현할 수 없어 애니메이션에 뛰어들게 됐다. 이후 아예 회사를 만들어 지금은 직원이 17명에 이른다. 각종 외과 수술 과정에 대해 의사들이 환자에게 쉽게 설명하고, 환자나 보호자가 봐도 이해할 수 있도록 5~10분짜리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다.
수술 소개하는 애니메이션 제작, 직원만 17명
사회: 만화책을 내거나 아예 만화 사업가로 뛰어들 정도였다면 어릴 때 만화나 그림을 제대로 배운 적이 있나.
희: 만화를 그리다보니 본격적으로 배워볼까 하는 욕심이 들었다. 그래서 만화 학원을 다닐까 생각도 해봤는데, 유명한 만화가 밑에서 배우면 그림 모양이 비슷해져 나만의 개성을 살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나만의 캐릭터로 그림과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다.
정민석 아주대의대 해부학교실 교수의 만화 〈꽉 선생의 일기〉(왼쪽)와 의학 전문 애니매이션 회사를 차린 정희두 헬스웨이브 대표이사의 만화 중 한 장면. 정민석, 정희두
정: 두 분은 정말 만화를 잘 그린다. 내가 그린 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나는 그림을 못 그리더라도 만화를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역시 그림 공부를 따로 해본 적은 없지만, 만화 그리기는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 지금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역설하고 다닌다.
박: 그림 공부는 물론이고 학교 다닐 때 미술 쪽에서 상을 받거나 무슨 대회에 나가본 적도 없다. 처음에 워낙 별 생각 없이 만평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남들이 관심을 가지니, 만화를 그리면서 이렇게 여러 고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사회: 의사가 만화를 그린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 재밌다거나 호기심을 많이 보일 것 같은데.
정: 아니다. 주변 동료 의사들은 의사의 품격을 떨어뜨린다고 욕하기도 했다. 해부학 이야기를 재밌게 그리려다보니, 술 이야기도 있고 남녀 연애 이야기도 있고, 음담패설에 가까운 이야기도 넣고 그랬으니 욕먹을 만하다. 하지만 만화는 재밌어야 하지 않은가? 소신대로 그렸다. 사실 재밌으려면 누군가를 망가뜨려야 한다. 환자를 망가뜨릴 수 없으니 의사를 재밌게 그렸다. 의사가 환자는 물론 일반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주변에서 욕을 하니 답답하다.
희: 의사들이 보는 전문지에 본격적으로 만화를 그릴 때 진짜 많이 힘들었다. 의사들의 공격을 아주 많이 받았다. 2000년 의사 파업을 할 때 만화를 그렸는데, 의료 현장에 대한 풍자 만평이다보니 동료 의사는 물론 대선배까지 전화해서 호통을 치곤 했다. 이후에는 의학 정보를 담은 만화를 그렸는데, 사실 풍자 만평에 대한 마음이 간절하다. 정보 만화라고 해도 재밌게 그리고 싶다. 예를 들어 엽기토끼 같은 캐릭터를 넣어서 재밌게 그리고 싶다. 그런데 걱정도 된다. 암환자를 위해 암에 대한 정보를 넣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인데, 당장 심각한 질병에 걸린 환자나 보호자가 엽기토끼 같은 것을 보고 웃고 싶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박: 한 일간지에 의료 현장에 대한 만평을 그릴 때, 조건이 굉장히 까다로웠다. 정치적·시사적이어서는 안 되고, 그러면서 웃겨야 하고, 의학적인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그런 만화가 어디 있겠는가? 아무튼 당시 의사가 너무 권위적이라고 생각해서 의사를 웃긴 캐릭터로 만들었다. 예를 들어 배에 수술 자국이 있는데, 그 옆에 ‘k’자를 한 개 그려놓았다. 환자가 궁금해하자 의사는 자신의 사인이라고 말하는 만평을 그렸다. 웃자는 그림이었는데, 의사를 바보로 만들었다고 비판받기도 했다. 사실 만화는 권위적이지 않은데, 만화로 보지 않고 너무 진지하게 바라보는 데서 시작된 오해다.
동료로부터 쏟아진 욕·공격·비판
사회: 뜻밖이다. 굉장히 인기가 많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비난을 받고 힘든 점도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도 만화를 놓지 않을 그 무언가가 있을 것 같다.
박성진 내과 전문의의 만화 〈즐거운 당뇨 닥터〉.
박: 의대 하면 막대한 의학지식을 외우는 것 아닌가. 그림이 있으면 잘 외워진다. 그림은 우뇌, 글은 좌뇌가 담당하는데, 만화에는 글과 그림이 함께 있으니 그런 것이다. 그만큼 소통도 잘된다. 환자와 의사뿐만 아니라 의사와 사회, 그리고 사회와 사회도 소통이 된다.
정: 단순하다. 재밌어서다. 개인적으로 자랑하고 싶은 일은, 해부학 만화를 펴내고 이 만화가 가지는 교육적 효과에 대한 논문을 써서 국제 학술지에 내기도 했다. 의사 중에 만화로 논문 내는 사람이 있겠나. 그 자체가 즐겁다.
희: 외과 전문의까지 마쳤는데 만화나 애니메이션 사업을 하고 있다면 사람들이 놀란다. 하지만 우리 회사가 만든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환자들이 자신이 받을 수술법을 알게 되고 안심하는 등 환자를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면 뿌듯하다.
사회: 의대생 하면 다른 대학생들과 달리 성적에 목숨을 거는데, 학교 다닐 적에 만화에 관심을 갖다보니 성적은 안 좋았을 것 같다. 그래도 지금 다들 잘 사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 어땠나.
정: 의대가 6년제라는 사실은 잘 알 것이다. 하지만 나는 1년 더 다녀 7년을 다녔다. 사실 7년 만에 끝낸 것도 다행이다. 학생 때 성적이 좋지 않았던 것이 지금 교수로 학생을 가르치는 것에 더 도움이 된다. 왜냐면 더 쉽게 그리고 학생들이 잘 이해할 수 있게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만화도 그런 목적에서 시작됐다. 의대생도 대학생인 만큼 스스로의 인생과 가치관을 돌아보면서 살았으면 한다. 지금 의대생들이 해부학 등 기초의학이나 특정 과를 기피하는 현상이 있는데, 인기를 좇지 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희: 나도 학교를 7년 만에 졸업했다. 예과 2년을 마치고 본과에 올라와서 고3 학생처럼 공부하다보니 정말 기운이 다 빠져 휴학을 했다. 당시 낮밤이 바뀌고 불면증이 생겼을 정도로 힘들었다. 쉴 때 깨달은 것이 ‘안 되는 것이 있구나’였다. 환자도 중대한 질병을 진단받고 치료도 잘 안 되면 얼마나 답답해할지를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박: (웃음) 난 두 분과 다르다. 중·상위권이었다. 내가 내과 전공을 할 때만 해도 상위권이어야만 지원할 수 있었다. 도 후배들 교육용으로 내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만화에 대한 열정 꺽을 수 없어”사회: 앞으로 만화에 대한 계획은?
정: 해부학 만화를 영작해서 해외에 수출하려는 작업을 하고 있다. 글은 영어로 번역하는 것이 무척 힘들지만, 만화는 그렇지 않다. 만화 그림 자체로 웃길 수 있다. 대신 영어를 쓰는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 그들의 유머 코드를 배우고 있긴 하다.
희: 지금 각종 수술법이나 질병에 대한 5~10분짜리 애니메이션을 1200개 정도 만들었다. 예를 들어 유방암이나 갑상선암 수술법을 볼 수 있다. 이런 동영상을 스마트폰으로 전송해줘서 환자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기반도 구축했다. 각종 의학회들과도 같이 작업해 외과 이외의 여러 분야로 확대할 계획이다.
박: 지방 소도시에서 개원했는데, 하루에 환자를 80~100명 정도 진료하고 나면 녹초가 된다. 책도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만화에 대한 열정은 꺾을 수 없어 최근에 다시 만화 작업을 시작했다. 정보성 만화에서 이제는 이야기를 넣고 주제를 담은 의학 만화를 그리려 한다. 현재 의료 현실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 이야기나 의사들의 진료 현장을 그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공식 인터뷰보다는 술자리에서 더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만화를 그리는 특이한 취미처럼 재밌는 얘깃거리가 많았다. 술자리에 그리고 그들의 얘기에 집중한 나머지 기록 못한 부분이 있을 것 같다. 아쉽지만 이들이 또 다른 만화를 펴냈을 때를 기약하기로 한다.
사회·정리 김양중 사회정책부 기자 himtrain@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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