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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셔라, 그 사랑

수많은 애칭
등록 2014-08-08 17:46 수정 2020-05-03 04:27
한겨레 박종식 기자

한겨레 박종식 기자

엄마의 몸속에서 태명을 얻는다. 태어나 정식으로 이름이 등재된다. 부르기 좋게 아명을 붙인다. 하는 짓에 따라 별명이 붙는다. 뒤에서 수군거릴 때 ‘욕명’이 있다. 자기나 남이 자나 호를 짓는다. 연애를 하다보면 속닥거리는 이름이 생긴다. 결혼을 하면 애칭이 생긴다. 낙관을 찍을 요량으로 아호를 만들고 집을 지어 이름으로 삼는다. 아기가 태어나면 아이 이름으로 불린다. 다른 지역으로 시집가면 이웃집 어른이 태어난 곳 ‘댁’으로 부른다. 일을 하다보면 직책으로 불린다.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너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된다고 한다. ‘꽃이 된다’를 욕으로만 읽지 않는다면, 사랑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가로 판단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애기, 허니, 귀요미, 토깽이 등 닭살 돋는 애칭을 부르는 이들에게서는 특히 두드러진다. 명태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물고기다. 형태와 행적마다 이름이 붙었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지는 무수히 많은 물고기 사이에서 명태는 존재가 가지를 흔든다.

(이름을 열거하는 것만으로 지면을 채우는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 어떤 크기냐에 따라 왜태(아주 큰 명태), 애태(작은 명태), 막물태(마지막 어획기에 잡는 작은 명태), 언제 잡느냐에 따라 월별로 일태, 이태, 삼태, 사태, 오태,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망태(그물로 잡은 것), 조태(바늘이 많이 달린 낚시인 연승으로 잡은 것)로 불린다. 이런 이름은 명태 어획지인 함경남도에서 주로 발달했다. 함경남도에서는 이런 전문어도 등장한다. 음력 10월 보름부터 내유하는 은어를 쫓아오는 은어바지, 음력 11월 보름부터 내유하는 동지바지, 음력 12월 초열흘께부터 내유하는 섣달바지. 각각 명태 포획의 1기, 2기, 3기에 해당한다.

강원도 말에는 어획과 제조가 동시에 존재한다. 강원도에서 잡히면 강태, 11월께 강원도 간성 연해에서 어획돼 동건된 것은 간태, 상인들이 신선한 명태를 부를 때는 선태다.

명태가 건조되면서 유통될 때에야 ‘북어’라는 말이 생겨났다. 혹자는 제사상에 올리기 위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이근우). 고기에도 벼슬이 있어서 한가락한다(비늘이 있는 생선)는 뜻의 ‘어’가 붙어야 제사상에 오른다 한다. 비늘이 없기는 매한가지인데 낙지와 비슷하지만 문어, 삼치와 비슷하지만 고등어, 한치와 비슷하지만 오징어 등은 제사상에 올릴 수 있다.

이름은 유통 상태와 질에 따라서도 다르다. 북어(동건태), 동태(얼린 상태), 강태(빛이 검은 상태 안 좋은 북어), 더덕북어(최상급 북어).

이렇게 다양한 명태가 다른 나라에서는 이름이 하나다. 심지어 명태에서 유래했을 법한 이름이다. 일본인은 생선으로 먹지 않고 명란젓만 이용하는데 ‘멘타이코’(明太子)라 부르고, 중국은 ‘밍타이’라 부른다. 명태가 유래하는 러시아에서도 ‘민타이’다. 고향을 떠나 입양된 명태가 한국에서 받은 사랑은 이렇게 눈부시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참고 문헌 (국학자료원·2009), (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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