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하늘의 이변이 여러 번 일어나므로, 신들은 외람되이 정승이 자리에 무릅쓰고 머물러 있을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여러 차례 사피(辭避)하였으나 윤허를 받지 못하였는데, 어제 또 우레와 번개가 크게 일어났으니, 더욱 두렵습니다. 신들은 이처럼 중요한 자리를 무릅쓰고 앉아 있을 수 없으므로 감히 사직합니다.”( 중종 80권, 30년, 1535년)
영의정 김근사와 좌의정 김안로는 중종에게 사표를 낸다. 듣던 임금은 마땅한 후임이 없었는지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 때아닌 서리·우박·눈 등 기상이변은 성종(1457~95) 시기 3번, 연산군(1476~1506) 시기 9번 발생했지만 중종(1506~44) 때는 79번, 명종(1545~67) 때는 40번으로 기록된다. 61번이라고 기록된 현종(1659~74) 재임 중 경신대기근은 참혹했다.
1670년(경술년) 7월에 우박이 내렸고 우역이 돌아 소가 죽어나갔다. 역병이 도는 중 8월 전라도에 닷새간 서리가 내렸고, 9월 강원도에 물난리가 났다. 못 먹은 사람들은 유민이 되었고, 1671년(신해년) 전염병은 쉽게 전국을 물들였다. 궁궐 군인도 궁녀도 전염병으로 죽어나갔다.
이 날씨가 흉흉하던 시절은 전세계가 공통이었다. 영국 템스강은 얼어붙었고, 스코틀랜드가 1년 내내 눈으로 덮였다. 날씨가 흉흉하니 민심 또한 그러했다. 마녀사냥이 행해지고 각종 봉기가 줄을 이었다. 시기는 1400~1850년으로 추려진다. 논란은 있지만 ‘소빙하기’다. 이때 명태가 왔다.
명태는 한류성 어류로 러시아 인근의 오호츠크해가 꽁꽁 얼어붙는 겨울에 남하한다. 그 남하선이 소빙하기 시절 함경도, 그 이후 강원도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본 적 없는 물고기가 잡히지만 어부들은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름 없는 물고기는 먹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해도 해도 너무 많이 잡혔다. 누군가 먹어보았을 것이요, 먹을 만했을 것이요, 그러니 누군가 이름을 공식적으로 얻어올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이런 신화가 탄생한다.
“명천(함경도)에 사는 어부 중에 태씨 성을 가진 자가 있었다. 어느 날 낚시로 물고기 한 마리를 낚아 고을 관청의 주방 일을 보는 아전으로 하여금 도백에게 드리게 하였는데, 도백이 이를 매우 맛있게 여겨 물고기의 이름을 물었으나 아무도 알지 못하고 단지 ‘태 어부가 잡은 것이다’라고만 대답하였다. 이에 도백이 말하기를 ‘명천의 태씨가 잡았으니, 명태라고 이름을 붙이면 좋겠다’고 전하였다.”(이유원, ) 탕으로 먹었는지 구워 먹었는지 알 길 없으나, 부경대 사학과 김경혜는 조선 중기 이미 명태요리법이 발달했고 관청으로 상납되는 단계였다고 해석한다().
그 출현이 어찌나 홀연하였는지 공식적인 자리를 늦게까지 얻지 못했다. “박물원에 있는 어족의 설치를 보건대 홀로 북어만 보이지 않으니 저들도 말하기를 없는 것은 이것(북어)뿐이다.”(김기수, 제3권, 1877)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참고 문헌: 국학자료원, 2009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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