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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장수의 시선으로 읽는 중국 근현대사

20세기 전반 도시 하층민의 삶을 세밀하게 보여주는, 신규환의 <북경 똥장수>
등록 2014-06-06 14:54 수정 2020-05-03 04:27

20세기, 중국 베이징에 똥을 치우고 파는 ‘똥장수’가 있었다. 수세식 화장실이 부족한 시절, 도시의 쾌적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남들이 꺼리는 ‘냄새나는’ 일을 했지만 천대의 시선을 받았다. 일은 고되고 생활은 궁핍했다. 임금이 적어 식비와 연료비에 쓰고 나면 병원비나 약값에 사용할 수 있는 돈은 거의 남지 않았다. 기생충병이나 하지정맥류 등 직업병에 걸려 고통을 받기도 했다. 그들은 도시의 소수자이자 하층민이었다.

‘자본가-분도주-노동자’ 철저한 계급사회

푸른역사 제공

푸른역사 제공

(푸른역사 펴냄)은 베이징 똥장수를 중심으로 20세기 전반 중국 근현대사를 되짚는다. 1950년 4월 베이징 똥장수의 지도자 격인 위더순과 쑨싱구이를 반동 혐의로 체포한 특별조사부 책임자의 회고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동아시아 의학사와 도시사회사를 연구한, 지은이 연세대 의사학과 신규환 교수는 “똥장수 중에는 문맹인이 많아 그들이 남긴 기록이 거의 없었다. 어렵게 발견한 신문에 기고한 똥장수의 글과 시정부의 보고서 등을 참고 자료로 삼아 글의 뼈대를 세웠다”고 말했다.

책은 철저한 계급사회인 똥장수의 세계를 세밀하게 보여준다. 자본가인 분창주(분뇨창고 소유주), 분도를 소유한 분도주(분뇨채취구역 소유주), 임대 분도에서 일하는 똥장수 노동자로 구성돼 있다. 최하층에 자리잡은 ‘똥 푸는 노동자’의 삶은 가장 열악했다. 분뇨를 보관하는 분창에 딸린 숙소에서 먹고 잤다. 악덕 분창주를 만나면 임금 체불, 협박과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임금을 받지 못한 이들은 시민에게 웃돈을 받아 챙기기도 했다.

똥장수의 사회에는 이주민의 애환도 서려 있다. 베이징 똥장수는 대부분 산둥성 황허 이북의 서북 지역 출신이다. 황허의 범람, 자연재해, 전쟁 등을 피해 베이징으로 삶터를 옮겼다. 새로운 사회에 진입한 그들은 ‘산둥인은 가난하고 무식하고 신뢰성이 없다’는 편견 때문에 배척당했다. 동향 조직도 견고하지 않아 각기 외로운 섬처럼 지내야 했다.

책은 그들의 임금체계와 일상생활에서 더 나아가 베이징의 공간 구조, 환경 인프라, 질병 관리와 의료 시스템까지 입체적으로 다룬다. 사진·지도 등 다양한 시각물과 함께 똥장수 단속 통계표, 베이징시 빈부 가정의 분포표 등 사료를 곁들여 당시 시대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개혁과 혁명보다 생계와 복지를

일본 점령기와 국공내전, 신중국 건설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중국 근현대사를 살았던 똥장수들은 정치적인 세력으로부터 중국 혁명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할 것을 강요받았다. 권력자들에게 그들은 포섭과 개조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개혁과 혁명이라는 거대 담론이 아닌, 현재의 생계와 복지였다.

신 교수는 “권력자와 지식인 위주에서 벗어나 주목받지 못했던 하층민의 목소리와 일상을 복원하는 게 책을 쓴 목적”이라며 “그들이 한 달에 얼마를 벌었고 어떤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았는지, 무엇을 하면서 소일거리를 찾았는지 등 일상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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