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의 딸이라고 했을 때, 연좌제가 연상돼 그 비난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시 유신시대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을 때,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그렇게 되겠냐며 반문했다. 순진했다. 그는 독재자의 딸을 넘어 스스로 독재자의 길을 가고 있고, 오늘 유신은 버젓이 되살아났다.
박근혜, 집권하자마자 말기적 증상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교양학부)의 (한겨레출판 펴냄)은, 이처럼 유신시대의 야만과 시대착오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음을 뼈아프게 고발하는 책이다. 와 를 통해 역사 대중화와 현실 참여에 매진해온 한 교수는 ‘걸어다니는 한국 현대사’라는 별명에 걸맞게, 책의 서문에서 유신시대와 오버랩되는 박근혜 1년을 이렇게 평가한다.
“불행하게도 박근혜는 집권하자마자 말기적 증상을 보이고 있다. 1979년 8월 박정희 정권은 야당인 신민당의 김영삼 총재가 유신체제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자 신민당 총재 권한정지 가처분 신청을 통해 야당의 발목을 조였다. 박정희가 총에 맞기 두 달여 전의 일인데, 박근혜 정권은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을 청구해놓았다. 총재 권한을 정지당한 김영삼 의원이 계속 유신체제를 비판하자 국회에서 김영삼 의원을 제명해버렸다. 박정희가 총에 맞기 딱 3주 전 일인데, 새누리당은 부정선거로 당선된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장하나 의원이나 박근혜가 총에 맞아 죽은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는 고언을 한 양승조 의원을 제명하기 위해 펄펄 뛰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보고 배운 롤모델로서의 박정희는 집권 말기의, 가장 나쁜 모습의 박정희였다. 1970년대의 박정희는 ‘근대화’와 경제발전에 따라 복잡해진 사회 구성을 더 이상 최소한의 형식민주주의를 유지하는 방식으로는 이끌어나갈 수 없었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로의 ‘퇴행’은 박정희가 체질에 맞지 않는 미국식 민주주의의 틀을 벗고 젊었을 때부터 익숙한 일본식 모델을 ‘한국적 민주주의’로 포장해 들여온 것을 의미했다. 유신시대는 김근태와 그 벗들에게 내란음모라는 어머어마한 죄목을 뒤집어씌운 자들이 일으킨 ‘진짜 내란의 시대’였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시대였다.
사실 유신은 ‘일제의 아들들’이 만든 체제였다. 박정희를 원수로 한 병영국가는 그가 청년기를 보낸 만주국의 국방 체제, 일본의 총동원 체제와 소름 끼칠 정도로 흡사했다. 저자는 “이 시기를 친일 잔재 청산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 친일 잔재를 청산하려던 세력이 거꾸로 친일파에게 역청산당한 것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참혹하게 보여준 시기였다”며 ‘친일파’ 박정희의 진면목은 청년장교 시절보다도 만주국이나 쇼와유신의 실패한 모델을 다시 살려낸 데서 찾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박정희 없는 박정희 체제’의 지속김대중의 돌풍과 신민당의 약진으로 박정희 장기 집권에 대한 위협이 커진 1971년의 대선과 총선에서부터 1979년 10월26일 김재규에 의한 박정희의 죽음까지. 나아가 이후 ‘박정희 없는 박정희 체제’의 기틀을 마련한 전두환의 내란과 1980년 5월 광주까지를 특유의 입담과 시선으로 풀어낸 이 책을, 저자는 ‘유신시대를 제대로 장송하지 못한 구세대 역사학도가 드리는 미안한 마음이라고 했다. 그 ‘미안함’이 대를 잇지 않도록 이제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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