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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에 관한 연대기

옛 ‘만도기계’ 출신 네 노동자의 삶 통해 기업의 성장과 해체·재구성 되돌아본 사람 매거진 <나·들> 3월호
등록 2013-03-09 04:03 수정 2020-05-03 04:27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제2 한강의 기적’을 만들겠노라고 역설했다. 그의 취임 일성은 어느 누구에게는 ‘복원’을 향한 비장함으로 다가올 테지만, 다른 누구에게는 ‘퇴행’에 대한 두려움으로 닥쳐올 것이다. ‘제2 한강의 기적’은 확실히 향수 어린 수사 그 이상이다. 지금의 정책과 제도, 문화에까지 구석구석 삼투해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한강의 기적’으로 상징되던 한국의 압축 성장기를 정확한 사실과 관점에 입각해 복기할 이유는, 지금 필요하고도 충분해 보인다.

한국 노동운동이 맞닥뜨릴 내일

사람 매거진 3월호는 때맞춰 한국 기업들의 성장과 해체·재구성 과정을 노동자의 관점에서 되돌아 보고 있다. 처음에 ‘만도기계’라는 자동차부품사에서 똑같은 일을 했으나, 지금은 소속사 이름과 소재지는 물론 자본의 국적까지 모두 다른 사업장에서 일하는 남성 노동자 네 명의 ‘디아스포라’(이산)에 관한 연대기다.

이 각별히 옛 만도기계 출신 노동자들을 조명한 이유는 그들의 ‘기원’과 ‘전개’가 한국 경제와 노동운동의 그것과 일정하게 동행하면서도 그들만의 고유함이 무척 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고유함은 차별성을 넘어, 한국 경제와 노동운동이 맞닥뜨릴 내일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라그룹 주력 기업이던 만도기계는 한국 자동차 산업의 물마루를 타고 성장 가도를 달렸다. 노조도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조직력을 탄탄히 다져왔다. 만도기계가 그렇듯 노조도 대공장에 가려 큰 주목을 끌지 못했지만, 내실에서는 대공장 노조를 압도했다. 그러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를 맞으며 기업도 노조도 여러 개로 분할됐다. 기업의 새 주인들은 하나같이 외국 자본이었다.

2008년,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은 이들 기업 가운데 일부를 신출귀몰한 방법으로 그룹에 재편입시켰다. 그 뒤 정 회장은 체계적인 매뉴얼로 기존 노조 조직을 파괴하고 노골적인 친회사 성향의 기업 노조를 세운다. 그러나 정 회장의 노조 적대는 개인 품성을 넘어서는 문제다. 여전히 외국 자본이 소유한 옛 만도 계열사에서도 한두해 사이에 판박이처럼 똑같은 절차와 방식으로 노조 파괴가 이뤄졌다. 그동안 끈끈한 연대를 유지하며 싸워온 옛 만도 출신의 네 남자도 비슷한 처지로 내몰렸다.

은 그룹 복원을 향한 정 회장의 집념도 밀도 있게 다룬다. 그것은 ‘한강의 기적’을 복원하려는 박 대통령의 그것에 기시감을 던진다. 또한 한국의 자본주의가 더는 노조와 공생하며 성장할 수 없는 현실을 방증한다. 지금은 성장이 아니라 자본 증식만 있는 시대다. 노조가 물러지는 동안 자본들은 내적 모순을 타개하려고 국적을 넘어 단결했다. ‘제2 한강의 기적’ 프로그램이 노조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지, 나아가 성장의 기적을 다시 일으킬 수 있을지 의문을 품게 한다.

스스로 생산·유통 통제하는 사람들

성장 시대와 달라진 게 체제 조건만은 아니다. 사람과 문화도 확연히 달라졌다. 새벽종이 울리면 너도나도 일어나 일사불란하게 체제에 복무했던 그 사람들의 문화적 취향이 아직 ‘케이팝’ 안에 성장의 판타지로 숨 쉬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미 일부 대중음악가들은 홍익대 앞 ‘인디신’마저 넘어서 스스로 음악 생산과 유통을 통제하겠다고 나섰다. 은 인디밴드들의 자치 조직인 ‘자립음악생산조합’ 음악가들을 만난 뒤, 그들이 꿈꾸는 음악 생태계의 모습을 세묘해 보여준다. 그들의 꿈은 대공장 남성 정규직 노동운동이 나아갈 방향을 지시하고 있기도 하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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