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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외환시장이야

다국적 투기자본의 금융시장 유린을 막기 위한 토빈세의 중요성,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10월호
등록 2012-10-20 14:26 수정 2020-05-03 04:27

지난 10월9일(현지시각) 룩셈부르크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재무장관 회의에서 투기자본 규제를 위한 오랜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EU 11개 회원국은 이날 주식·채권·파생금융상품 등의 거래에 부과하는 세금(금융거래세)을 신설하기로 합의했다. 1972년 미국 경제학자 제임스 토빈이 국경을 통과하는 모든 돈에 세금(토빈세)을 매기자는 제안을 내놓은 지 약 40년 만의 일이다. 위기가 부른 결단이었다. 등 외신들은 안드레아시 시더 오스트리아 재무차관의 말을 따 “참여한 11개국에는 작은 발걸음에 불과하지만, 유럽 전체로 보면 엄청난 도약”이라고 전했다.

“세금 제대로 매겨야 할 곳은 외환시장”

(이하 ) 한국판 10월호는 발행 4돌을 맞아 최근 방한한 베르나르 카상 프랑스 파리8대학 명예교수와 한 인터뷰 기사를 머리에 올렸다. 그는 범지구적 반세계화 운동단체인 ‘국제금융관세연대’(ATTAC)의 초대 의장을 지냈으며, 다국적 투기자본의 금융시장 유린을 막기 위해 1990년대 말부터 토빈세 도입 운동을 주도해왔다. 카상 교수는 “금융거래가 10억유로라면 외환거래 시장은 1천억유로로 그 규모가 훨씬 크다”며 “세금을 제대로 매겨야 할 곳은 (주식 등 금융거래가 아니라) 외환시장”이라고 말했다. 토빈세 부과로 ‘더 나은 세상’이 가능하다는 게다.

특집으로 마련한 ‘미국 대통령 선거 현장을 가다’는 경제위기 속에 인종·계층으로 갈라선 미국 사회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미 남부 조지아주 매킨토시 카운티의 소도시 대리엔의 상황이 그 전형이다. 섬유산업이 위기를 겪으며 이미 큰 피해를 입은 대리엔 주민 2천여 명은 비우량주택담도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직격탄까지 맞아 휘청이고 있단다. 마을 주택 1090채 가운데 292채가 빈집이고, 10%를 넘는 실업률 속에 2007년에 견줘 연평균 소득도 4천달러나 감소했단다.

“지난 4년 동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우리에게 해준 건 아무것도 없어요. 비록 가난하지만 전 공화당을 지지해요. 민주당은 저 같은 백인 빈곤층에게는 신경도 안 쓰죠.” 는 대리엔의 한 모텔에서 청소일을 한다는 주민 제나 스탠턴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새겨들어야 할 사람이 어디 재선 도전에 나선 오바마 대통령뿐일까? 재정적자 감축을 내세워 복지예산 삭감을 벼르고 있는 공화당을 지지하겠다는 미국 빈곤층 유권자의 ‘계급 이반투표’ 성향은, 정치권에 환멸을 느낀 유권자에게서 나타나는 지구촌 공통의 현상이다.

한국판 특집으로 꾸민 ‘문제적 인간 2제’도 눈길을 끈다. 동양철학자 김용옥이 최근 펴낸 책 에 등장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관한 평가와 회고담을 요약한 ‘변절에서 최후까지 박정희, 그 내면의 풍경’은 배반과 변신으로 점철된 독재자의 삶을 적나라하게 들춰낸다. 또 문화평론가 박정진은 최근 숨진 ‘20세기 이후 등장한 세계 최대의 신흥종교’인 통일교 창립자 문선명 총재가 어떻게 서구를 매혹, 아니 미혹시켰는지를 동학과 기독교의 통합이라는 종교인류학적 관점에서 풀었다.

‘집시는 유랑 민족이 아니다’

이 밖에 앙리에트 아세오 프랑스 국립 사회과학고등연구원 교수가 쓴 ‘로마족은 유랑 민족이 아니다’도 흥미롭다. 로마족이 ‘집시’로 불린 것은 애초 이집트 출신으로 잘못 알려졌기 때문이란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유럽 전역에서 최소한의 기본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로마족이 유럽과 발칸반도에서 정주 생활을 해온 세월이 무려 400년을 넘었다는 사실도 새삼스럽다. 아세오 교수는 “초국적 소수민족인 로마족을 통합하려는 시도의 핵심에는 저들의 역사성을 거부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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