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2월21일 역사문제연구소가 설립되고, 그 이듬해 9월 연구소의 기관지로 (1988년 여름호부터 계간지가 된) 무크 (이하 )이 창간됐을 때, 이 연구소와 잡지가 이렇게 오랫동안 한국 역사 대중화 학술운동의 중심 기지로 튼튼히 자리잡을 것이라고 확신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신자유주의 시장 논리 연구 생태계 파괴”
그동안 는 공식 역사를 전복하고 그 빈칸을 메우며 새로운 역사 인식을 공급해왔다. 만약 한국 사회의 역사 인식이 한 뼘이라도 깊고 넓어졌다면, 그 자양분의 한 시원을 에서 찾을 수도 있다. 가 100호를 맞았다는 사실은, 반동의 풍파 속에서 역사문제연구소가 세운 실천적 역사학의 기둥과, 가 올린 역사 전문 대중지의 서까래가 나름 견고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95호부터 편집주간을 맡고 있는 정병욱(46)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부교수(한국근대사)를 만나 100호의 회고와 전망을 들었다. 정 주간은 “진보담론의 후방기지 구실을 하면서도 대중과의 소통을 잃지 않는 더 젊은 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100호를 맞는 소회가 어떤가.먼저 지금까지 적자를 무릅쓰고 를 맡아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특히 장두환 전 사장은 10여 년 동안 잡지 출판을 지원했다. 이런 분 덕분에 오늘의 가 있다고 생각한다. 25년이란 역사를 생각하면 영광이어야 할 텐데, 시대도 학계도 잡지도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라 마음이 무겁다.
역사, 특히 현대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예전만 같지 않다.그래선지 1990년대 후반부터 독자가 조금씩 줄고 있다. 인문학 책이나 잡지의 일반적인 현상이기도 하지만, 로 좁혀서 보면 변화된 세상과 대중에 맞게 바꾸지 못한 건 아닌가 한다. 역사비평사의 담당자께 독자 감소의 그 이유를 여쭤봤더니 “대중은 역사를 통해서 미래지향적인 대안을 원하는데, 잡지는 과거를 복원하는데 머물러 있다”고 하더라. 귀담아 들어야 할 의견이다.
이번호 특집과 인터뷰에서 초대 편집주간인 서중석 교수(성균관대 사학)가 후학들이 극우세력과의 역사전쟁과 기억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고 비판하던데.현실 비판이나 개입의 힘이 떨어진다는 비판은 맞다. 다만 그렇다고 이 문제를옛날의 전선적(戰線的) 방식으로 풀어갈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변화된 현실에 맞게 나름의 스타일을 개발하여 정착시키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사회문제에 대한 역사학계의 대응력이 떨어지는 배경에는 연구자들의 열악한 연구 환경이 자리하고 있다는 견해도 있던데.옛날이나 지금이나 연구환경은 열악하다. 다만 달라진 지금의 상황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식 시장 논리에 침윤된 학계와 대학의 성과주의, 철저한 승자독식과 위계적 학문사회가 연구 생태계의 파괴를 가져왔다. 1987년 무렵 유행했던 ‘학문·학술 공동체’란 말이 사라졌다. 학계 내부에서 그 원인을 찾으면 젊은 세대보다는 나를 포함해 선배 세대들의 책임이 더 크지 않을까. 또한 폭넓은 실천 차원에서 보면 걱정스러운 것은 ‘현장성’의 상실이다. 현장을 진득이 응시할 수 있는 연구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제 진보도 작은 곳에 임할 필요”민중과 계급 중심에서 일상과 문화로 진보 역사학의 관심이 이전한 것도 사실 아닌가.
거대에서 미시로, 사건에서 일상으로, 정치에서 문화로 연구 초점의 이동이나 다양한 방법론의 수용 같은 변화가 전통을 희석시키기보다 풍요롭게 한다고 생각한다. 많이 변한 듯하지만 앞선 세대가 민중이나 계급을 생각하는 정신이나 젊은 세대가 약자·소수자·개인 등을 생각하는 정신이 크게 다른 것이 아니다. 민중에서 개인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자신의 삶을 옥죄는 억압과 종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평등한 삶의 주체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신은 대동소이하고, 이를 위해 역사학은 현실 비판의 임무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강약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하다. 이제 진보도 작은 곳에 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작은 곳에서 작동하지 않는 진보가 큰 곳에서 제대로 작동할 리 없지 않은가.
앞으로 가 나아갈 방향은.는 다양한 진보 담론의 ‘후방 진지’ 구실을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가 처음에 표방한 ‘역사 전문 대중지’, 즉 역사를 전문으로 하면서 대중과 소통한다는 목표가 마음에 든다. ‘전문’과 ‘대중’이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것은 어렵기는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세상에는 그런 논문과 책이 적지 않다. 한국사에 관해 그런 글이 드문 것은 한국사가 특별히 어려워서가 아니라 전문가가 그런 데 무관심하거나 무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전문가를 둔 대중은 불행하다. 계몽이 필요한 것은 대중이 아니라 전문가의 태도와 글쓰기가 아닐까. 물론 하루아침에 전문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추기는 어렵겠지만, 는 언제든지 그런 시도를 반길 것이다. 101호부턴 젊은 필자를 많이 발굴해서 더 젊은 가 되려 한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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