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든 일에 게을러지자. 사랑하고, 술 마시는 일만 빼고. 그리고 게을러지는 것 그 자체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일에 대해.” 18세기 독일의 극작가이자 계몽사상가인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의 이 언명이 지금껏 회자되는 이유가 있다. 카를 마르크스의 둘째사위이자 프랑스의 혁명사상가인 폴 라파르그가 1883년 펴낸 자본주의적 노동윤리에 대한 비판서 의 머리말에 이 문장을 따다 썼다.
채무 앞세워 애먼 복지를 때리다
게으름은 죄악이다. 부지런함이 미덕이다. 그렇게 가르친 것이 멀게는 사유재산, 가깝게는 자본주의다. 즐거워야 할 노동은 그렇게 고역이 됐고, 인류는 시시포스의 천형을 감내해야 했다. (이하 ) 한국판 3월호가 특집으로 다룬 ‘긴축, 그 회개의 윤리학’을 보면, 21세기에도 사정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유럽연합(EU)은 지난 2월21일 그리스 정부에 대한 추가 지원을 결정했다. 물론 기다란 ‘꼬리표’가 달려 있다. 꼬리표에 등장하는 낱말은 대체로 이런 식이다. ‘긴축, 절약, 헌신, 희생, 규율, 엄격한 규칙, 고통스러운 조처….’ 곧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로 몰린 이유도 ‘공개’됐다. 바로 ‘게으름’이다. 정치인과 언론은 지치지도 않고 이렇게 주장해댄다.
“게으른 유럽인들이 무사태평하게 낭비를 일삼았기 때문에 경제위기라는 천벌을 받았고 이제 속죄할 때가 왔다.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고 절약과 저축이라는 전통적인 미덕을 되찾아야 한다.”
한마디로 그동안 게을렀던 사실을 ‘회개’하라는 게다. 현실성을 결여한 이런 비상식적인 주장이 유럽, 아니 지구촌 전체에서 여전히 먹히는 이유가 뭘까? 는 “지배계급의 이익에 봉사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막대한 국가채무를 내세워, 애먼 사회복지제도를 때려대는 논리와 마찬가지다. 대체 뭘 얼마나 잘해줬다고. 는 이렇게 물었다.
“가난하든 부유하든 양심의 가책 없이 휴식을 취하거나 삶을 즐기는 것, 다시 말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경건주의를 창시한 (17세기의) 루터교 신학자 필리프 야코프 슈페너는 ‘남들보다 서둘러 은퇴하려는 자들’을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했다. 오늘날은 과연 이때와 얼마나 다른가?”
한국판 특집은 ‘탈핵’이 화두다. ‘후쿠시마의 고난’을 지켜보고도, ‘원전 수출’을 부르짖는 이들에게 이원영 수원대 교수(도시계획)는 “탈핵은 무엇보다 양심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 교수는 ‘손에 잡히는 현장, 독일을 가다’란 글에서 “독일에서 핵발전소는 부모 세대의 자식 세대에 대한 반인륜적 행위이자 치명적인 윤리 문제”라며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정치적 장점은, 탈핵 정책을 17명으로 구성된 ‘윤리위원회’가 결정하도록 하는 요구를 수용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50년 걸린 선출직 여성의원 5명
역시 한국판 기사로 올라온 유정미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의 ‘여성할당제, 남성정치를 바꿔라’도 눈길을 끈다. “제헌의회 선거에 입후보한 951명 가운데 2.3%에 불과한 22명의 여성 후보가 전원 낙선했다”거나, “2000년에 열린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성 의원 수가 5명으로 증가했으니, 한국에서 선출직 여성 의원이 5명이 되기까지 50년이 걸린 셈”이라는 지적이 새삼 뼈아프다. 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공천 과정에서 여성할당제에 반발해 기자회견을 하며, 떼지어 울먹이던 남성 정치인들의 얼굴을 새겨 기억해둘 일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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