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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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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이야기꾼들과 함께한 산책

문학 이상의 발언과 행보를 보이는 이들을 만나 기록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들의 인터뷰와 사진집 <16인의 반란자들>
등록 2012-01-06 16:31 수정 2020-05-03 04:26

노벨문학상 수상작이 세상에서 가장 탁월한 문학작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1901년부터 2011년까지, 108명의 수상자 중 81명이 유럽 작가들이다. 나머지 중 대다수는 미국 국적의 작가들이다. 스웨덴 한림원이 ‘유럽 편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서구의 문학관을 세계의 문학관인 것으로 각인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그러나 이들 수상자가 탁월한 이야기꾼, 또는 시대를 풍자하고 비유하는 뛰어난 노래꾼인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들의 소설이나 시를 한 편이라도 읽어본 이라면, 작가의 진짜 목소리를 한 번쯤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상류층의 경박함을 혐오하는 작가

토니 모리슨.

토니 모리슨.

세상의 독자들은 국경을 초월해 비슷한 생각을 하나 보다. 스페인 문학담당 기자인 사비 아옌과 사진기자 킴 만레사도 그랬다. 이들은 3년여 동안 노벨문학상 수상자 16명을 만났다. 이 인터뷰만을 위한 취재 준칙이 있었다. 작가가 실제로 거주하는 집을 직접 방문하되, 작업실만이 아니라 주방 등 내밀한 구석까지 살피기로 했다. 시계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는 것도 목표였다. 길게는 8일, 짧게는 6시간 동안 깊은 대화를 나눴다. 이야기를 나누는 곳은 작가의 집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의 어느 구석, 작품의 배경이 된 장소를 함께 찾아갔고, 그들의 가족을 만나기도 했다. 그렇게, 10여 년 동안 언론에 두문불출했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만났고, 임종 전의 조제 사라마구와 나기브 마푸즈를 만났다. 암살자들의 위협에 시달리는 오르한 파무크와는 짧은 산책에 나섰으며, 월레 소잉카와는 나이지리아 민주단체의 모임에 참석했다. 그리고 (스테이지팩토리 펴냄)을 펴냈다.

제목에 ‘반란자’가 들어간 이유를 저자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들의 대부분이 문학이

조제 사라마구.

조제 사라마구.

아닌 다른 어떤 이유로 사회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문화 너머에 있는 일들과 담을 쌓은 작가의 역할에 머물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작가들은 다양한 측면에서 사회에서 소외된 것들과 그 사회의 지배논리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들과 뜻을 함께했으며, 권력의 저변을 이루는 근본적인 속성에 맞서는가 하면,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많은 이데아를 품고 있었다.”

가령 이런 식이다. 오르한 파무크는 조국 터키의 정치가들을 경박한 자들이라고 일컫는다. “나는 경박한 자들을, 저 위에서 종교와 문화적 신념과 특권층이 아닌 계층들을 경멸의 눈으로 내려다보는 상류층을 증오해요. 나는 엘리트들의 오만함에 분노해요. 그들은 교만과 자존심으로 이 나라를 다스리고 민주주의와 문화를 파괴하고 있어요. 그건 서양이 이라크나 다른 나라들에게 저질렀던 어리석은 짓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어요, 세계를 지배하는 자들의 오만하고 천박한 행위 역시 마찬가지요.”

인종차별과 남성우월주의에 문제를 제기하고 꾸준히 목소리를 내온 토니 모리슨은 미국에서 흑인 여성으로 겪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스테이지팩토리 제공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스테이지팩토리 제공

이중의 억압을 겪어온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의 시선은 낮은 곳을 향한다. “내가 절도범이나 창녀 같은 평범한 이들에 대해 관심이 많은 건, 그들이 역사책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에요. 마치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처럼 말이에요. 나는 그들에게 삶을 돌려주고 싶었어요.” 사라진 노예제도에 대해서도 힘주어 말한다. “이제는 공식적이고 법적인 제도는 사라졌지만, 일을 하고도 돈을 못 받거나 자기 마음대로 일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해요.” 그는 지나간 이야기를 하는 작가가 아니라 다분히 “범세계적이고 현재성을 띠는 문제의식들을 제기하는” 작가인 것이다.

로 198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집트 작가 나기브 마푸즈와의 만남은 마지막이기에 조금 슬프다. 그는 생전에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과 각을 세웠다. 그는 여성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옹호자였다. 통합주의자들은 그런 그를 암살하려 했다. 1994년 10월14일 집을 나서던 나기브 마푸즈는 괴한들에게 습격을 당했다. 목에 비수가 꽂혔다. 생명은 건졌지만 오른손이 마비됐고 그 충격으로 눈이 멀고 듣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게 됐다. 신변 보호를 위해 집 근처 거리에는 항상 경찰들이 주변을 경계하고, 외출이라도 할 때면 첩보작전처럼 장소를 여러 차례 바꿔야 했다. 그는 이런 일상의 장애와 고통을 딛고 40여 편의 소설과 350점 이상의 단편과 에세이, 5편의 연극 작품을 남겼다. 나기브 마푸즈를 통해 서구 비평가들은 비로소 아랍 소설의 존재를 이견 없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두 저자는 나기브 마푸즈와 나일강변에서 나눴던 정담을 잊지 못한다.

한 번도 펜을 놓아보지 않은 일상

이들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참여자인 동시에, 성실한 직업인이기도 했다. “나는 하루 종일 계속해서 일을 하는 스타일이고, 항상 쓸 준비가 되어 있어요. …나는 식당에 가고 싶지 않고, 사람들을 보는 것도 싫어요, 내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글을 쓰는 거요.”(오르한 파무크) “나는 오전 7시에 일어나요. 아침은 거르지요. 네댓 시간 동안 일을 하고, 점심을 먹고 나서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다시 일을 해요. 저녁에는 수영장에 가지요. …나는 항상 이 테이블에서 글을 써요.”(오에 겐자부로) “2005년부터 안식년에 들어갔어요. …그러고 보니 2005년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낸 첫 번째 해가 될 거요. 그 전만 해도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일을 했는데…. 한 번도 손에서 펜을 놓은 적이 없어서 처음엔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어요.”(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하루에 두세 시간은 꼭 글을 써요. 그건 나한테 일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또 하나의 방식이거든요. 작가로서, 교수로서….”(토니 모리슨)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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