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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에 빠진 53년의 전통

폭행 논란으로 감독 물러난 우리은행 여자농구단… 구름 관중 몰고 다니던 인기는 사라지고 2000년대 이후 성추행 사건, 구단의 전횡 등으로 최악의 역사 쓰고 있어
등록 2011-12-16 11:04 수정 2020-05-03 04:26

우리은행은 1958년 국내 최초로 여자농구단을 만든 우리나라 여자농구의 효시다. 여자농구는 1960~70년대 전성기와 1980~90년대 농구대잔치, 2000년대 프로리그를 거치며 많은 팀이 생겼다 사라졌다. 하지만 우리은행은 성적이 좋건 나쁘건 53년 동안 한결같이 여자농구단을 지켜왔다. 변한 것이라곤 상업은행에서 한빛은행으로, 그리고 다시 우리은행으로 이름만 바뀌었다는 것뿐이다.

승승장구하던 팀에 드리운 비극
1960년대 상업은행 여자농구단은 박신자·김명자·김추자 등 스타 선수들이 구름 관중을 몰고 다녔다. 원로 농구인들은 “당시 여자농구가 펼쳐진 서울 장충체육관에는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고 회고한다. 이런 인기에 편승해 박정희 군사정권이 국민의 관심을 스포츠로 돌리려고 1963년 ‘박정희 장군배 쟁탈 동남아여자농구대회’를 만들 정도였다. 상업은행은 이 대회에서 일본과 대만(당시엔 자유중국) 실업팀들을 물리치고 5년 연속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1964년 4월 페루에서 열린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는 국가대표를 구성하지 않고 상업은행이 단일팀으로 출전했다. 그런데도 프랑스,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일본을 물리치고 8위에 올랐다. 1967년 5월 체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을 준우승으로 이끈 주역도 ‘삼보’(三寶)로 불린 상업은행의 박신자·김명자·김추자 선수였다.
1970~80년대 태평양화학과 한국화장품, 1990년대 코오롱과 선경의 라이벌 구도에서 상업은행은 늘 ‘변방’이었다. 이따금 결승에는 올라도 정상 문턱을 넘지 못했다. 1985년 전국체전 우승이 고작이었다. 그래도 팀을 해체하지 않았다. 1992년 농구대잔치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 SKC(SK의 전신)를 57-54로 꺾는 이변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당시 SKC에는 억대 선수가 즐비했지만 상업은행의 1년 예산은 SKC 선수 1명의 스카우트비 절반에도 못 미치는 4500만원이었다. 이 때문에 상업은행의 승리를 보도한 어떤 신문은 ‘돈만으론 이길 수 없다’는 제목을 뽑기도 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한겨레> 이정아 기자

1998년 프로리그가 출범한 뒤 우리은행은 2000년대 중반 네 차례나 정상에 올랐다. 그런데 2006년 당시 박명수 감독이 선수 성추행으로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에서 영구 제명됐다. 전지훈련지에서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선수를 감독 방으로 불러 강제로 추행한 사건이었다. 이 선수는 박 감독의 친딸과 같은 고교에서 함께 농구를 했던 사이로 알려져 더 큰 충격을 줬다.

이 사건은 어쩌면 2000년대 우리은행 여자농구단 비극의 시작이었다. 우리은행은 박 감독에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막강한 권한을 부여했다. 박 감독을 정규직으로 대우하고(프로 구단 코칭스태프는 모두 계약직이다), 선수 선발 및 연봉 협상권까지 줬다. 선수가 맘에 들지 않으면 경기에 기용도 하지 않고, 내쫓을 수도 있는 막강한 권한 앞에서 선수들은 ‘노예’나 다름없었다. 여기서 ‘성추행 사건’은 잉태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은행은 이후 박건연 감독을 선임해 팀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팀은 이미 엉망진창이었다. 상처받은 선수들은 팀을 떠났고, 성적은 바닥을 헤맸다. 사령탑이 정태균 감독으로 바뀌었지만 오합지졸의 팀에 묘수가 있을 리 만무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은행 구단은 지난해 봄, ‘결단’을 내렸다. 팀의 기둥 김계령 선수를 내보내고 젊은 선수들로 확 바꿨다.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대부분의 팀이 2명씩 선발했지만 우리은행은 4명이나 뽑았다. 당장의 성적보다 미래를 내다보는 ‘리빌딩’에 찬사가 이어졌다.

그러나 말뿐이었다. 우리은행은 지난 3월 정태균 감독과 재계약한 뒤 시즌(10월~이듬해 3월)이 시작되기도 전인 8월에 정 감독을 총감독으로 임명해 사실상 사퇴시켰다. 마치 시험도 치르기 전인 수험생을 불합격시킨 꼴이었다. “당장의 성적에 연연하지 않겠다”던 구단 방침은 공염불이었다. 이어 김광은 코치를 감독으로 승격시켰다. 김 감독이 연패에 빠지자 구단 임원은 “책임을 지라”며 사퇴 압박을 가했다.

김 감독은 12연패를 당하던 지난 11월27일, 로커룸에서 선수들을 호되게 야단쳤다. 이 과정에서 박혜진 선수 폭행 논란에 휩싸였다. 는 11월30일치에서 ‘친언니 보는 앞, 선수 벽에 밀치고 목 조른 여자농구 감독’이라는 제목과 함께 “김 감독이 박혜진을 구타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친언니는 같은 팀에 있는 박언주 선수이고, 이 사건의 제보자다.

그러나 당시 로커룸에 있던 조혜진 코치(감독대행)와 김은혜, 임영희 선수는 한결같이 “기사가 과장됐다. 폭행은 아니다”라고 증언했다. 이들은 “벽에 밀친 적도 목을 조른 적도 없다”고 했다. 특히 “박혜진이 울먹이자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등 폭력 행사를 계속했다”는 대목은 전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김 감독은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그는 휴대전화 바탕화면에 나온 두 살짜리 딸을 보며 “이 아이한테 나는 ‘폭력 아빠’가 됐다”며 울먹였다.

진상 규명 외면한 채 후임 물색에만 급급

우리은행 구단은 보도 내용이 사실인지 철저한 진상조사는 외면한 채 기사가 나가던 날 오후에 곧바로 김 감독을 ‘자진 사퇴’라는 명분으로 잘라버렸다. 다음날에는 경기도 구리체육관에서 기자들이 박혜진 선수에게 사실 확인을 요청하자, 박 선수를 이리저리 숨기며 기자들과 숨바꼭질을 했다. 이날 경기가 끝난 뒤 공식 인터뷰실에서 기자들과 인터뷰를 마친 조혜진 코치와 김은혜, 임영희 선수에게도 “어떤 말을 했느냐”며 꼬치꼬치 캐물었고, ‘입단속’을 지시했다.

우리은행은 요즘 발빠르게 후임 감독을 물색 중이다. 그런데 후보자 중에는 과거 성추행 의혹으로 다른 팀에서 물러난 감독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은행 여자농구단의 비극은 언제쯤 막을 내릴까.

김동훈 기자 한겨레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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