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노벨문학상은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에게 주어졌다. 1931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나 20대 초반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60년째 시인으로 살고 있는 분이다. 해외 언론에서는 노벨위원회가 자국의 시인에게 상을 준 것에 시비를 거는 의견들도 있는 것 같지만, 나는 ‘복지’ 앞에 ‘망국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나라의 독자로서, 지구상에서 가장 모범적인 복지국가의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하는 착잡한 부러움에 잠겼다가 책을 펼쳤다. 시선집 (이경수 옮김, 들녘 펴냄, 2004)에서 한 편 소개해드린다.
“좀처럼 가지 않는 어두운 숲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죽은 자와 산 자가 자리바꿈하는 날이 오리라. 숲은 움직이게 되리라. 우리에겐 희망이 없지 않다. 많은 경찰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장 심각한 범죄들은 미결로 남으리라. 마찬가지로 우리 삶 어딘가에 미결의 위대한 사랑이 있는 것이다. 나는 어두운 숲을 물려받았지만 오늘은 다른 숲, 밝은 숲을 걷는다. 노래하고 꿈틀대고 꼬리 흔들고 기는 모든 생명들! 봄이 왔고 공기가 무척 강렬하다. 나는 망각의 대학을 졸업하였고, 빨랫줄 위의 셔츠처럼 빈손이다.”(‘소곡’ 전문)
시인이 물려받았다고 말하는 “어두운 숲”은 죽음의 세계일 것이다. 그러나 첫 문장을 쓰자마자 시인은 ‘하지만’이라고 말하며 전혀 다른 얘기를 들려준다. 죽음과 삶이 자리를 바꾸며 숲은 다시 움직이게 될 것이라는 것. “우리에겐 희망이 없지 않다.”(We are not without hope.) have 동사가 아니라 be 동사다. 희망은 언제나 ‘있는’ 어떤 것이다. 그 희망을, 영구 미결 범죄와 나란히 놓고, “미결의 위대한 사랑”(a great unsolved love)이라고 표현한 것이 매력적이다. 으레 ‘미스터리’ 같은 단어에나 어울릴 수식어를 ‘사랑’ 앞에 얹었다.
그런 희망을 시인은 봄이 올 때마다 본다. 봄의 생명들은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가 비로소 풀리듯 풀려나온 사랑들이다. 그 사랑 앞에서 시인은 잊어야 할 걸 잊고 버려야 할 걸 버린 채로 행복하다. 인상적인 마지막 문장이 이 기분을 요약한다. “나는 망각의 대학을 졸업하였고, 빨랫줄 위의 셔츠처럼 빈손이다.” 1990년대 초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몸이 불편한 노시인이 그런 와중에 쓴 시임을 고려한다면 이 시는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유산을 물려받고서도 현재의 생을 긍정하는 데 성공한 어떤 정신의 나지막한 찬가로 읽힌다.
고작 한 편을 읽었을 뿐이지만 이 시만으로도 “그의 압축적이면서도 반(半)투명한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현실에 신선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된다”라는 노벨상위원회의 공식 코멘트가 그저 그런 말을 늘어놓은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정확한 요약에 근접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시는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우주적’이다. 노벨위원회 사무차관 페테르 엥글룬드는 “그는 큰 질문들에 대해 쓴다”라고 말하며 ‘죽음·역사·기억’ 등의 소재를 거론했는데, 이 ‘큰’ 소재들은 어디까지나 ‘작은’ 개인의 자리에서 다루어진다.
그런데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우주적이라는 것은 그 중간 규모의 층위, 즉 ‘사회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이 점은 그의 시에 종종 의구심이 제기되도록 하는 빌미가 된 것 같다. 는 기사 말미에 이 시인의 작품에는 최근의 수상자들과 달리 ‘사회적 논평’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의문을 제기하는 비평가들이 있음을 언급했고, ‘위키피디아’도 1970년대에 고국에서 그가 사회적 이슈를 다루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판받았음을 빼놓지 않고 적어두었다. 자, 시인에 대한 객관적인 소개는 여기까지.
주관적으로 한마디 덧붙이며 끝내자. 시인이 단지 어떤 것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아도 되는 것일까? 나는 수전 손태그가 예루살렘상 수상 연설에서 소개한 일화를 떠올렸다. 인종주의를 비판하는 시를 쓰지 않는다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비난받던 미국의 한 흑인 시인은 이렇게 응수했다고 한다. “작가는 주크박스가 아닙니다.” 어떤 시인의 사회적 발언을 지지하는 것과 어떤 시인이 특정한 내용을 쓰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일이다. 후자는 어떤 문화적 폭력의 은밀한 시작일 뿐이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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