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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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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식탁은 충분히 풍족하지 않은가

인간의 이기심으로 기이하게 성장한 식품 생산·가공 시스템에 경고를 울리는

폴 로버츠의 <식품의 종말>
등록 2011-01-20 15:45 수정 2020-05-03 04:26

무려 150만 마리다. 그런데 지금 마감하는 845호가 독자에게 도착할 시점에는 앞의 문장은 구문이 돼버릴지도 모르겠다. 잡지가 유통돼 누군가의 손에 쥐어지는 순간마다 그렁그렁한 눈을 한 소와 영문 모를 돼지들은 계속 차가운 땅속에 묻히고 있을 테니까. 150만이란 도대체 얼마만큼인가. 계산을 해봤다. 거칠게 셈을 해보니 살처분된 소와 돼지를 한 마리씩 줄 세운다 치면 서울∼부산 450km를 왕복하고, 한 번 더 부산까지 일렬종대하고도 넘칠 수다.

가축 성장 가속화 뒤에 숨은 비밀

11일 오후 경기 이천시 대월면 군량리의 한 구제역 발생 농가에서 돼지 살처분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이천/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11일 오후 경기 이천시 대월면 군량리의 한 구제역 발생 농가에서 돼지 살처분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이천/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구제역은 동물 바이러스 중 가장 다루기 어렵다고 한다. 정확한 발병 원인 또한 알 수 없다. 하지만 생물학적 영역을 넘어 구제역 발병 원인을 찾는다면, 구제역은 인간에게서 비롯했다고 할 수 있다. 을 통해 에너지 위기를 경고했던 미국의 저널리스트 폴 로버츠가 이번엔 (민음사 펴냄)로 먹을거리 위기에 사이렌을 울린다. 그는 인간의 이기심을 기반으로 성장한 식품 생산·가공 시스템이 결국 인간에게 불안감과 당황스러움, 죄의식을 안겨준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곡물, 고기, 과일, 채소를 어느 때보다 많이 생산하고 많이 섭취한다. (지상의 모든 나라가 그렇진 않겠지만) “이전 세대가 어리둥절할 정도로 다양하고 편리하게 생산”하고 있는 기름진 시대다.

‘육류 혁명’이라 불릴 정도로 우리 식탁에 지방과 단백질이 넘쳐나는 이유는 멀고 먼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설명된다. 최초의 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채집을 통해 배고픔을 해결했다. 손이 닿는 곳에 나무 열매가 있었다. 그러나 여러 차례 기후가 바뀌면서 인류의 조상은 더 적은 음식을 먹고 더 높은 열량을 얻을 필요가 생겼다. 인류학자들은 이를 ‘최적 수렵 행동’이라고 하는데, 모든 생명체가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칼로리를 얻으려 한다는 뜻이다. 식물성 칼로리 획득이 어려워진 우리 선조는 자연스럽게 동물성 음식에 눈길을 돌렸다. 사실 육식의 시작이 인류에 기여한 바는 지대하다. 자신의 몸짓보다 큰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도구를 사용해야 했고,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선사시대 인류는 겨울이 춥고 1년 내내 먹을 식물이 부족한 유럽이나 아시아에서도 살 곳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만겁의 세월이 흐르며 인간의 ‘최적 수렵 행동’은 기이한 방향으로 성장한다. 지금 우리 식탁은 먹을거리로 풍족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꾸만 욕심을 낸다. 더 많은 고기를 부르짖는다. 많이, 더 빨리, ‘효율적’으로 고기를 생산할 방법이 없는지 궁리한다.

1945년 미국인의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은 평균 56kg이었는데, 1980년 미국인들은 무려 88kg의 고기를 먹어치웠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2008년 환경운동연합이 밝힌 한국인의 육류 소비량은 35.4kg으로, 1983년보다 3배 넘게 증가했다.

인간은 어떻게 이다지도 많은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됐을까? 닭의 사육에서 출발한다. 로버츠는 1970년대 고기용 닭이 10주가 지나야 도살 가능 체중에 도달했다면 현대 사육 품종은 40일이면 충분하다고 밝힌다. 요리에 많이 쓰이는 닭가슴살을 많이 얻기 위해 학자와 축산업자는 협심해 근육 덩어리가 가슴 부위로 몰리도록 닭을 유전적으로 개량한다. 더불어 곡물이 근육으로 전환되는 속도가 빨라지도록 개체를 조작했다.

양계업이 성장하자 돈육 생산자들도 저비용 대량생산에 몰입한다. 시간당 2천 마리의 돼지고기를 가공할 수 있는 대규모 도살장을 짓고, 생산적인 품종 개발에 골몰한다. 돼지의 성장 속도는 빨라졌고 개량 전 10여 마리의 새끼를 낳았던 암퇘지는 평균 20마리의 새끼를 잉태한다. 암퇘지 한 마리가 매해 2t에 달하는 고기를 생산하는 셈이다.

육류 혁명의 종착점은 소다. ‘소 풀 뜯어먹으며’ 한가하게 방목되거나 넓은 축사에서 사육되던 소의 생애 역시 저가격 대량생산의 기치에 휘말린다. 축산업자들은 소의 몸무게를 늘리고, 고기가 연해지고 지방이 늘어나도록 사료를 가공하고, 운동할 수 없는 좁고 갑갑한 육사에서 소를 길러낸다. 이윤이 높은 부위인 갈비·허리·허벅지 부분에 살이 피둥피둥 붙는다.

폴 로버츠의 <식품의 종말>

폴 로버츠의 <식품의 종말>

구제역·AI 확산 원인은 인간의 이기심

뚱뚱해진 닭·돼지·소들은 밀집 사육 시설에서 집중적으로 키워진다. 대규모 질병이 발생해도 피할 곳이 없다. 한국의 소·돼지의 입술과 발굽에 수포처럼 엉겨붙은 구제역 바이러스는 누군가의 몸 혹은 어떤 이의 자동차 바퀴에 묻어 전국으로 퍼지기도 했겠지만, 다닥다닥 붙어 지내는 대규모 사육장에서는 경각도 지체하지 않고 확산됐을 것이다.

조류인플루엔자(AI)도 마찬가지다. 인간에게도 검은 손톱을 들이미는 AI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데 인간의 이기심 또한 일부 기여했을 것이다. 로버츠가 이유를 말한다. “근육이 많은 조류는 항체 생산이 부족해 밀집한 조류 사이에서 발생하는 풍토병 등에 쉽게 감염됐다.” 더 많은 고기를 얻기 위해 인간은 가축을 살찌우고, 비대해진 동물들은 자신이 쉬이 병이 걸리는 이유도 모른 채 그렇게 픽픽 쓰러졌을 것이다.

비문 한 줄 없는 무덤 속에 갇힌 이 땅의 소와 돼지들 또한 제 몸이 왜 캄캄한 지하에 갇혀야 하는지, 물음표 섞인 울음을 꽥꽥 울고 있을 것이다. 안쓰럽게도 그들은 무덤조차 너른 공간을 가지지 못하고 다른 개체들과 빠듯하게 몸을 붙여야 한다. 이런 악다구니 속에서도 일부 사육자들의 정신은 여전히 온전하지 못한 것 같다. 이들은 어떻게 하면 가축을 건강하게 사육할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는다. 좁은 사육장의 울타리 안에서 키울, 질병 저항성이 강한 품종을 개발하려고 노력 중이다.

로버츠는 경고한다. “수세기를 궁핍에서 벗어나려 식량 경제 건설에 힘쓴 우리는 이제 앞으로 몇십 년은 그 승리의 대가를 치러야 할지 모른다.” 식량 위기의 해결책으로 어류 소비에서 대안을 찾는 그는 육류 소비량을 줄이고, 경제 모델에 내맡긴 식품 통제권을 환수하자고 힘주어 말한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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